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4)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4)
  • 임정진
  • 승인 200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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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14. 은주의‘홀로 된다는 것’



「파이브 콜라 레귤라, 파이브 치즈버거 플리즈.」

「파이브 콜라, 파이브 치즈, 땡큐.」

뿅, 뿅, 뿅, 뿅, 뿅. 다섯 잔의 종이컵 위에는 투명 플라스틱 뚜껑이 덮여져 있었고, 판매원은 날랜 손놀림으로 십자로 찢어진 곳에다 정확히 빨대를 꽂아 넣었다.

「자 먹자, 먹어. 금강산도 식후경. 배가 고프면 예쁜 여자도 켄터키 치킨으로 보이니까 먹어 두자, 이거야.」

달중은 네 명의 졸개(?)들에게 햄버거와 콜라를 안겼다.

「야, 그나저나 뭐 보러 가는 건데 그래? 뭐 미팅이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일일 찻집? 아니면 어디 좋은 그림 보여 주는 만화방이라도 알아 놨어?」

천재는 기대가 대단한 듯 달중을 다그쳤다.

「야, 넌 왜 그리 저질이야? 점잖게 극장가서 영화 보는 거야. 건전한 영화, <매춘>...」

「으흐흐~히히, 끽끽.」

달중은 영화 초대권 다섯 장을 꺼내 흔들어 일행의 환호에 답했다. 한 장씩 초대권을 나누어 주더니 달중은 가방을 들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야, 너만 이런 거 쓰면 어떡해?」

「치사한 자식.」

「요새도 가발 쓰고 극장가는 촌놈이 다 있네.」

달중은 모두의 야유를 받은 채 가발을 쓰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다른 넷은 학생 주임의 성화에 못 이겨 며칠 전 머리를 짧게 잘랐기 때문에 달중의 가발이 더없이 부러웠다.

「야, 근데 <매춘>보다 <변강쇠>가 더 야하지 않겠니? 저기 길 건너서 <변강쇠>하던데.」

봉구의 말에 달중은 이마를 찌푸렸다.

「얘가 김세게 왜 이래? 그럼 이 초대권 썩히냐? 내가 주간지 퀴즈 보내서 어렵게 탄 거야. <변강쇠> 보려면 돈이 들잖아, 돈이. 아버지가 힘들게 버신 돈, 그딴 영화에 Tm면 불효다, 불효.」

「그래, 달중이 말도 맞다. 시간 다 됐으니 우리 효도하러 가자. 출발.」

천재가 앞장서서 극장으로 들어갔다. 검표원을 지나서 다섯은 벽에 붙여 둔 포스터와 스틸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로 오더니 달중을 제외한 넷을 잡아끌었다.

「모두 여기에 서.」

극장에 들어갔다 스크린은 선도 못 본 채 넷은 출구로 나와 벽에 나란히 섰다.

「학교하고 이름 불러.」

달중은 극장 안에서 유유히 담배를 피우며 촉새, 종섭, 봉구, 천재가 이름을 대는 모습을 유리창으로 쳐다보았다.

「히힛.」

달중은 혀를 낼름 보이고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은 절반쯤 차 있었다. 더듬더듬거리며 화면이 잘 보이는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학생 주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입을 헤벌린 채 영화를 보았다.

은주는 오랜만에 소연과 운동장 가의 벤치에 나와 앉았다.

「은주야, 너 엉덩이 커지는 느낌 안 받니?」

「왜?」

「왜는, 하도 죽치고 앉아 있으니까 그렇지. 난 매일매일 엉덩이 지름이 1센티미터쯤 커지는 것 같아 아주 신경 쓰인다, 얘.」

「좀 퍼지기야 하겠지. 워낙 앉아 있으니까, 후후.」

은주는 엉덩이가 펑퍼짐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웃었다.

「너 그 얘기 들었어? 문도하고 민자.」

「아니, 누가 나한테 그런 얘길 해주니?」

「걔네 둘이 좀 만나고 그랬나 봐. 그런데 문도가 민자한테 5만 원짜리 목걸이를 사줬대. 뷔페도 데려가고.」

「무슨 학생이 그런 선물을 해.」

「문도, 걔 돈 쓰는 데 캡이야. 작년에 사귀던 여자애한테는 십만 원짜리 시계 사준 애야. 민자는 전번 애보다 못했나 봐. 안 그랬으면 반지, 목걸이, 팔찌 세트 해주고도 남을 애야.」

「거짓말 같다. 학생끼리 무슨 시계를 선물하니? 약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거지 뭐. 근데 더 우스운 건 목걸이까지 주고 나서 얼마 뒤에 헤어진 거야.」

「왜? 싸워서?」

「문도가 민자 본질을 안 거지. 뒤늦게.」

「본질? 그게 뭔데.」

소연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너 몰라? 민자 걔 외박 캡이야.」

「외박?」

「그래----.」

「휴-----. 그렇게 안 보이던데.」

「은주 넌 공부만 하느라 세상이 어떤지 너무 몰라. 민자도 민자지만 더 한심한 애도 있어. 성훈이 있지? 반장 짝꿍. 생긴게 반질반질하다 했더니 글쎄 여대생하고 여관에서 나오더래.」

「설마----.」

은주는 소연이의 말이 하나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애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한 교실에 앉아 영어를 배우고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넌 내 말 못 믿니? 내 참, 아는 애는 다 아는 얘기야. 괜한 헛소문이 아냐. 관두자. 너같이 순진한 애 물들까 무섭다, 무서워.」

소연은 들고 나온 워크맨의 스위치를 누르고 이어폰 한쪽을 은주에게 주었다. 둘은 햇볕을 쪼이며 음악을 들었다. 한 곡이 끝나자 은주가 물었다.

「이 노래 참 좋다, 제목이 뭐니?」

「몰라?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음, 난 처음 들어 봐.」

소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라? 이 노래 모르는 애가 없는데 너 진짜 FM도 안 듣는구나.」

「가끔씩 듣긴 하는데 클래식만...」

「가요나 팝송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난 클래식은 아는 곡이 별로 없는데, 모르는 건 들으면 따분해져.」

「아니야. 나도 가요, 팝송 좋아해. 어떤 땐 하루 종일 음악만 들었으면 할 때가 있어.」

「들으면 되잖아. 공부하면서 들어도 되고.」

소연이는 은주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짝이 되어 같이 생활한 지 두 달이 되었지만 이렇게 길게 얘기하긴 처음이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은주는 더욱 모를 애였다.

「엄마가 싫어해.」

은주는 기가 죽어 조그맣게 말했다. 소연이는 그제야 은주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구나. 이런 노래는 콘서트에서 직접 들으면 더 좋아. 라이브라는 게 사람 마음을 얼마나 휘어잡는다구.」

「콘서트? 그런 데도 가봤니?」

「그럼, 두 번이나 가봤는걸. <동물원>이랑 이문세. 변진섭 콘서트도 하면 꼭 가볼 꺼야.」

은주는 소연이 부럽기만 했다.

「좋겠다. 근데 니네 엄만 그런데 가도 아무 소리 안 해?」

「그게 뭐 어때서? 어쩌다 가는 거구. 그게 뭐 나쁜 짓 하는 것두 아닌데...」

은주는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소연은 은주가 조금 더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잔소리가 심하긴 하지만 캡이야. 너 우리 집 한번 안 갈래?」

「...가곤 싶지만 힘들 거야.」

「왜?」

「난, 내 맘대로 어딜 갈 수가 없어.」

소연은 은주의 대답을 듣고 은주가 생각보다는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은주는 엄마한테 대들지도 않고 죽어 사는 걸까 궁금했다. 가뜩이나 낙이 없는 우리에게서 도대체 음악까지 뺏어 가면 뭣이 남는다고...

소연이 잠자코 있자 은주는 조심스럽게 소연에게 물었다.

「애들이... 나 싫어하지?」

「아냐.」

소연은 은주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좀 가까이 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 네가 잘난 척하는 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생님들한테 알랑방구 뀌는 타입도 아니잖아.」

「...난 정말 아이들하고 친하고 싶은데... 같이 놀러두 다니구, 음악도 듣구, 영화도 보구...」

은주의 눈동자에 축축한 물기가 어렸다. 소연은 그런 은주가 가여워 워크맨 볼륨을 더 올리려다가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우스운 광경을 보았다.

「은주야, 쟤들 좀 봐. 학생 주임한테 걸렸나 봐, 히히.」



달중, 천재, 봉구, 종섭, 촉새가 운동장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바라보는 구경꾼은 은주, 소연만이 아니었다. 스탠드에 앉아 있던 4,50명의 아이들도 그들을 보고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달중은 가발까지 쓰고 있었다. 다섯을 일렬로 세운 박 선생은 야구 방망이를 허공에 한번 휘두르더니 소리쳤다.

「이 방망이는 내 의지나 인간성, 인격과 상관없다. 자, 손을 깍지 끼고 머리 뒤로 올린다. 쪼그려 앉아. 구호는 꽥꽥, 운동장 두 바퀴다. 시작.」

운동장을 반 바퀴도 못 돌았는데 다섯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동작 봐라, 방망이 안 보여?」

다섯이 꽥꽥거리며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도는 동안 박 선생은 뒤를 쫓아가며 계속 방망이로 위협을 했다. 봉구는 오리걸음 하기도 힘들지만 은주가 보고 있는 것을 알고는 죽고 싶기만 했다.

(아니 은주 쟤는 맨날 교실에 있더니 오늘따라 왜 운동장에 나와 있는 거야. 나란 놈은 뭐 제대로 되는 게 없어. 행운은 항상 나를 비켜 가고 불운은 내 뒤통수를 때리고. 에이--.)

점심시간이 다 끝날 때가 돼서야 다섯은 박 선생의 기합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수돗가로 가면서 봉구는 달중을 원망스레 쳐다보며 말했다.

「야, 영화도 못 보고 이게 무슨 꼴이냐?」

달중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야, 그 영화 정말 끝내 주더라, 오죽하면 칠뜨기가 다 보러 왔겠냐. 다음에 가서 꼭 봐.」

천재는 달중에게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

「임마, 내 말대로<변강쇠> 보러 갔으면 이런 일이 없잖아. 이게 뭐야 재수없게 여자애들 다 보는 데서.」

수돗가로 몰려가면서도 봉구는 은주가 앉았던 벤치를 계속 훔쳐보았다. 은주는 소연이와 무어라 얘기하면서 웃고 있었다. 봉구는 자기를 보고 웃는 것 같아 너무너무 속이 상했다.


서로의 옷을 끌어다가 손과 얼굴의 물기를 닦던 달중, 촉새, 봉구, 종섭은 천재가 우뚝 멈추어 서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그러나 앞을 보니 여선생님 세 분이 현관으로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섰던 천재는 봉구가 왜 그러냐고 툭 치자 서둘러 말했다.

「난 양호실 가서 치료 좀 받아야겠어. 니들끼리 교실로 가.」

「야,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왜 그래? 어디가 아픈데?」

「지금 갑자기 아파.」

오만상을 찌푸리며 현관으로 달려가는 천재를 넷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천재는 양호실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런데 양호실 문 앞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개 중대 인원이 될 법한 남학생들이 갖가지 아픈 표정과 몸짓으로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천재는 아이들을 헤치고 문을 향해 돌진했다.

「야, 이거 누구야, 질서, 질서. 문화 국민이 이러면 돼?」

「몰매 맞기 싫으면 맨 뒤에 서. 난 점심도 안 먹고 줄 선 놈이야, 이거.」

천재는 그 정도의 위협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삐뽀-----삐뽀, 응급환자 나가신다.」

천재는 화난 멧돼지 폼으로 아이들을 젖히고 양호실 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 선생은 상냥하게 웃고 있었고 침대에는 칠뜨기 박 선생이 어느새 와서 누워 있었다. 박 선생 팔에는 혈압계가 둘려져 있었고 박 선생도 벌죽벌죽 웃고 있었다.

「너 굴뚝이잖아? 어디 아프냐?」

「네, 기합 받다가 더위 먹었나 봐요.」

「젊은 놈이 그깟 것 가지고.」

「선생님은 요?」

천재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박 선생은 느긋하게 천재의 물음에 대답했다.

「난 네놈들 때문에 혈압이 올랐어. 그래서 안정중이다.」

강 선생이 혈압을 재더니 천재를 쳐다보았다.

「학생은 또 왔네? 몸이 약한가 보지?」

「아녜요. 강철같이 튼튼합니다.」 천재는 획 나가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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