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2)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12)
  • 임정진
  • 승인 200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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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12. 천재의 꿈에는 늘 양호선생님이 나온다



자율학습 시간이 되자 한 20명은 엎드려서 잠부터 잤다.

공부벌레 몇 명만 열심히 연습장을 채워 나갔고, 나머지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었다. 두어 명은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었고 주간지를 몰래 읽는 아이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가끔씩 와서 둘러보았지만 잔다고 깨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천재는 단연코 자는 쪽이었다. 천재는 꿈속에서도 양호실에 누워 자고 있었다.


강 선생은 양호실에 들어와 보고 천재가 침대 위에 그냥 있는 것을 보았다.

「얜 아직도 안 가고 있었네.」

강 선생은 혼잣말을 한 후 계속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옷걸이에 걸려 있던 화사한 빛깔의 원피스를 꺼내 들고 칸막이 뒤로 갔다. 천재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다 칸막이 뒤에 강 선생이 있음을 알고 다시 자는 척하고 있었다.

강 선생은 단정한 스타일의 투피스를 벗어 들고 원피스를 갈아입고 나왔다. 몸매가 드러나는 멋진 원피스였다. 천재는 실눈을 뜨고 강 선생의 몸매를 감상했다. 강 선생은 천재가 훔쳐보는 것도 모르고 의자에 걸터앉아 스타킹을 걷어 올렸다. 강 선생이 몸을 앞으로 숙이자 젖가슴이 슬쩍 보여 천재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스타킹을 다 매만진 강 선생이 일어나 천재 곁으로 오자 천재는 저절로 침이 꿀떡 넘어 갔다.

「이봐요, 학생.」

강 선생이 천재를 흔들자 그제서야 천재는 깨어나는 척했다.

「수업 시간 다 됐어, 들어가야지.」

「네.」

천재는 미적미적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막 문을 열려는데 강 선생이 천재를 불렀다.

「예? 선생님.」

「이리 좀 와 봐요.」

천재는 입이 헤- 벌어져서 얼른 강 선생 곁으로 왔다.

「야유 통통한 게 참 귀엽게도 생겼어.」

강 선생은 천재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쓰다듬어 주었다. 천재는 너무 좋아 하늘로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강 선생은 천재의 손을 잡아끌어 침대에 천재를 앉혔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댔다.

「이거 좀 올려 줄래? 손이 잘 안 닿아서...」

강 선생의 등이 벌어진 지퍼 사이로 보이자 천재는 당장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바쁘니까 얼른 좀 해줘.」

「예, 예.」

천재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간신히 진정을 하고 지퍼에 손을 대고 천천히 올렸다. 지퍼가 닫혀짐에 따라 강 선생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자 천재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거의 다 잠기자 천재는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고는 단숨에 지퍼를 쫙 내려 버렸다. 그리고는 계속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하였다.


봉구는 은주만 계속 쳐다보다 천재를 보고 낄낄 웃었다. 천재는 엎드려 자면서도 손은 계속 허공을 휘젓고 있었고 <으윽, 윽>하며 신음소리까지 냈다. 조금 있으니 더욱 손을 빨리 움직이는 것이었다. 봉구는 천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천재를 깨웠다.

「임마, 뭐 해?」

화들짝 놀라 깨어난 천재는 봉구를 보고 잔뜩 화를 냈다.

「야, 왜 깨우고 지랄이야?」

느닷없는 천재의 고함에 조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일시에 흔들렸다. 봉구가 오히려 놀라 천재를 쳐다보았다.

「천재야, 너 왜 그래? 애들 공부하는데 잘 때 자더라도 조용히 자야지, 신음소리를 내고 그러면 어떡해?」

「아휴, 너 때문에 산통 다 깨졌어. 그런 줄이나 알어.」

천재는 열이 나서 교실을 나섰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억센 손가락이 천재의 볼따귀를 잡아챘다. 담임이었다.

「야, 이놈아. 들어가 앉아 있어. 아직 쉬는 시간 안 됐어. 분위기 흩트리지 마.」

천재는 비실비실 다시 자기 자리로 와 앉아 교실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었다.



며칠 후 학교 소강당 앞에는 학부모들이 타고 온 자가용들이 늘어섰다. 소강당 안에서는 교장, 교감 그리고 선생님들이 진땀을 빼고 있었다.

「도대체 우열반 편성을 안 하는 이유가 뭡니까?」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섞어 놓으면 학습 능률이 떨어지는 건 뻔하잖아요?」

교감 선생님이 앞으로 나섰다.

「학교 측에서도 고려 안 해본 바는 아니지만 아이들 간에 상대적인 열등의식을 조장시키는 등 교육상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심사숙고 중입니다.」

그러자 번쩍이는 귀걸이와 목걸이를 흔들며 또 한 어머니가 일어섰다.

「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예요. 어차피 대학 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된 것이고 못 가는 학생들은 못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갈 수 있는 학생들이라도 잘못되는 일이 없게 확실히 지도해야 하는 거 아녜요?」

교감 옆에 앉아 있던 연구 주임이 일어서서 답변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엔 전교 50등 이상 하는 학생들의 어머니들께서 참석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공통된 관심사도 대학입시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긴 인간을 만들자는 학교지, 돈 받고 시험 기술 가르치는 학원이 아닙니다.」

잠시 말을 끊고 연구 주임은 어머니들을 둘러보았다. 저 어머니들이 왜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되었을까. 내 아이가 소중하듯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왜 잊고 사는 것일까. 연구 주임은 계속 말을 이었다.

「검정고시 학원에 안 보내시고 학교에 보내실 때는 시험 말고 그 외의 성장도 기대하셨을 겁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소중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우리에겐 역시 소중합니다. 그들에게도 분명 장래가 있고,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설계가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고등학교에서부터 좌절감과 패배 의식을 심어 줄 수는 없다는 게 교육자로서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생 주임은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교감 선생님이 덧붙여 얘기했다.

「하여튼 여러 학부형님들 입장도 모르는 바 아니니까 신중히 검토해 보도록 하죠.」

「그럼 보충수업은 어떻게 할 거죠?」

한 어머니의 느닷없는 보충수업 타령에 3학년 학년 주임이 일어섰다.

「지금 보충수업하고 있는데요.」

「1학년은 안 하잖아요. 그리고 2학년도 겨우 1시간밖에 안 하니 어디 되겠어요? 8학군 애들은 새벽에 한 시간, 오후에 두 시간씩 보충수업한대요.」

「그러게 말예요. 대학생 과외도 허용된 마당에 과외를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어디 대학생들이 선생님들만 하겠어요?」

「선생님들 성의가 부족한 거 아닙니까?」

3학년 학년 주임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대답을 했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사실 보충수업이란 게 그 효과도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업무인데 새벽에 강의하고 또 저녁에 강의한다는 게 무리입니다. 게다가 선생님들도 가정이 있고 사생활이 있는 생활인이라는 걸 알아주셔야죠.」

「아, 그래서 저희가 그만한 대가를 보장해 드리자고 이렇게 모인 것 아닙니까? 8학군만큼은 못 해드려도...」

「도대체 교사들은 뭘로 취급하시는 겁니까?」

학년 주임이 발끈하여 신경질적인 말투로 얘기하자 교감이 일어섰다.

「그만됐어요. 그 문제도 신중히 검토해 볼 테니까 다른 의견 더 있으면 말씀하시죠.」

「무슨 체육 시간이 일주일에 세 시간이나 되죠? 애들이 너무 피로해 해요. 저녁에 오면 공부도 못 하고 쓰러져 잔다니까요.」

「음악· 미술은 시험 과목에도 없는데, 빼는 게 어때요?」

「점심시간 50분을 20분쯤으로 줄이고 30분은 자율학습을 시켜 주세요.」

「학교 도서관 이용은 성적순으로 좌석 우선권을 줍시다.」

「학교 안까지 승용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8학군 쪽 학교들의 진학 지도 방법을 참고하는 게 좋겠어요.」

「자율학습 때 담임선생님이 딱 지키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들여다보셔 가지고 애들이 긴장이 되겠어요?」

교장 선생님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학부형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시간에 상담실에는 고3학생의 어머니가 최 선생 앞에서 울고 있었다.

「우리 상철이는 그런 애가 아니었어요. 착하고 순진했는데, 요샌 걸핏하면 나한테 대들고 지 동생을 무섭게 때리고, 흑흑---, 제가 무슨 말만 해도 신경질을 내니 제가 살 수가 없어요.」

최 선생은 이 어머니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암담했다. 다른 어머니들도 다 그런 일을 당하며 살고 있다는 걸 이 어머니가 믿어 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 그만 진정하세요. 시험 잘 봤냐고 물으면 신경쓰지 말라고 하죠? 대학 가도 내가 가고 못가도 내가 못가는 거라고. 자는 거 안쓰러워서 좀 더 자게 놔두면 안 깨웠다고 펄펄 뛰죠? 출출할 것 같아서 밤참 만들어 갖다 주면 정신 산란해지게 들락날락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고 소리 지르죠? 그리고 어떨 땐 텔레비전을 너무 보는 것 같아 공부 다 했니 하고 물으면 공부가 끝이 어딨냐고 내가 죽으면 끝난다고 화를 벌컥 내죠? 너무 공부만 하는 것 같아 좀 쉬어라, 운동이라도 좀 해라, 그러면 속 편한 소리 하지 말라고 악을 쓰죠?」

어머니는 놀라 최 선생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최 선생은 빙그레 웃었다.

「상철이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인문계 고3애들은 다 그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애가 아니라 상전이에요. 상전. 온 식구가 다 상철이 눈치만 보느라 집안 분위기까지 이상해졌어요.」

「고2 있는 집은 일년 내내 손님 초대도 못하고 여행도 못 가고, 텔레비전도 안켜는 집도 있는데요, 뭐.」

「저희 집도 텔레비전을 화면만 봐요. 소리나면 상철이 신경 거스릴까 봐.」

「어떤 집에서는 아버지까지 술을 끊으시고 집에 일찍일찍 오신다더군요. 술 먹고 늦게 오고 하다 보면 애 리듬 깨지고 부부 싸움 일어날 가능성도 많다구요.」

상철이 어머니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살짝 웃어 보였다.

「그건 애 아버지한테 얘기해야겠네요. 본받을 만하군요.」

「어머니께서 너무 긴장하신 탓도 있을 겁니다. 애가 고3 이라고 어머니가 오히려 먼저 지치시면 안 됩니다. 애가 초조해 할수록 어머니가 의연하셔야 아이도 걱정이 덜 될 거 아닙니까?」

「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직접 생각을 해보세요. 우선 상철이가 고3이라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그냥 상철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라고만 생각하시고 느긋한 마음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세요.」

「상철이가 대학만 간다면야 뒷바라지, 앞바라지 다 해야죠.」

「하하, 그러셔야죠. 1년 동안 어머니가 수고가 많으실 거예요. 잘 견뎌 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만 가보겠습니다.」

상철의 어머니는 상담실에서 나와 혹 상철이가 지나가다 자기를 볼까 두려워 얼른 현관을 빠져 나왔다. 운동장 가에 자가용이 여러 대 서 있는 걸 보고 무슨 일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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