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들은 분명 최강자였다. ①
한때 그들은 분명 최강자였다. ①
  • 박군
  • 승인 200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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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배스킷볼 다이어리> 워싱턴 위저즈의 전성시대


40년의 긴 역사를 가진 팀이지만 팀 명칭을 여섯 번이나 바꿔야 했을 정도로 사연이 많은 워싱턴 위저즈.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과거 70년대의 화려했던 시절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들도 분명 한 시대를 평정했던 최강자의 시대가 있었다.

워저즈는 1961년 <시카고 팩커즈>로 탄생한 이래, 볼티모어, 워싱턴의 3개 프랜차이즈를 전전하며 62-63년 시카고 제퍼스, 63-73년 볼티모어 불리츠, 73-74년 캐피탈 불리츠, 74-97년 워싱턴 불리츠를 거쳐 현재의 팀명 워싱턴 위저즈에 이르기까지 여섯 번이나 팀 이름을 바꾸어야 했고 최초 6년간은 매년 다른 헤드코치 밑에서 개막을 맞이했던, 계속성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팀이었다.


미국의 3대도시중 하나로 농구팬이 가장 많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카고에는 오랜 기간동안 NBA팀이 없었는데 가장 먼저 탄생한 팀이 바로 61년 창단된 팩커즈였다. 하지만 그들은 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홈팬들로부터 점점 소외되어갔다. 그래서 이듬해 ‘제퍼스’라는 새 이름으로 재도약을 시도해 보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2년만에 시카고를 포기하고 신천지 볼티모어로 꿈과 야망을 싣고 떠나야만 했던 우울한 과거가 있는 팀이다.

초창기 위저즈의 유일한 희망 ‘월트 베라미’


이렇듯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는 초창기였지만 월트 베라미라는 걸출한 인물만큼은 팀의 인기와 관계없이 NBA에서 주목받는 스타였다. 로마 올림픽에서 제리 웨스트, 오스카 로버트슨과 함께 드림팀을 결성, 금메달을 거머쥔 베라미는 팩커즈에 입단, 첫 시즌부터 평균 31.6득점(리그 2위), 19리바운드(리그 3위), 필드골 성공율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지만 유감스럽게도 팀의 승리와 결부되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디펜스의 명수 거스 존슨도 있었으며, 67년에는 ‘코트의 진주’ 말 몬로가 입단해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며 평균 24.3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팀의 성적은 하위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창기의 워싱턴 위저드가 시카고를 프랜차이즈로 한 이유인지 초기 맴버중 불스의 관계자가 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불도저 “위스 안셀트”


안셀트는 NBA의 역사를 장식할만한 위대한 센터 중 가장 키 작은 선수다. 본인은 언제나 2미터라고 우겼지만 실제로는 5센티 가량이 더 작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장에 대한 핸디캡은 있었을 지언정 그 체격만큼은 누구도 그와 견줄 수 없었다. 그의 넓고 두꺼운 어깨는 고깃덩어리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고 특히 리바운드나 스크린플레이때는 그 고깃덩어리의 위력이 가장 크게 발휘되었다.


이러한 경이로운 체격조건을 이용하여 평균 18.2리바운드를 따내며 월트 챔벌레인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으며, 그로인해 팀이 이긴 날이 진날보다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디비전 정상에도 오르는 쾌거를 누릴 수 있었다.


안셀트의 영입으로 볼티모어 불리츠는 70/71시즌 NBA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이후 9년연속 디비전 1.2위를 다투는 리그의 강호로서 입지를 확실히 굳혀 나갔다. 70/71시즌 첫 결승에서는 안셀트, 몬로, 존슨의 막강한 공격진을 자랑하던 불리츠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로버트슨, 루 앨신더(훗날 카림 압둘자바로 개명)의 두 영웅을 거느리고 있던 밀워키 벅스에 비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후 몬로가 닉스로 이적함에 따라 공격력에 차질이 생겨 72년 영입한 선수가 엘빈 헤이즈이다. 대학시절 압둘자바를 주축으로 하는 UCLA를 짓눌러 일약 스타덤에 오른 헤이즈는 거침없이 말하는 성격으로 인해 인기는 그다지 없었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한 선수였다. 넓은 슛 레인지와 강력한 인사이드 지배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성적을 기록, 그와 안셀트의 강력한 프론트라인은 팀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되었다.



엘빈 헤이즈(왼쪽)와 휠 세니아(오른쪽)


이후 휠 세니아라는 또 다른 스타의 영입으로 팀 전력은 더욱 강해져 워싱턴은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휠 세니아는 헤이즈와 함께 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는데 비록 체격는 작았지만 다채로운 움직임으로 네 번의 어시스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한 센스 있는 선수였다.

- 계속

이글을 쓴 박군은

이런 저런 삶의 핑계들 속에서도 쉼없이 NBA를 보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순수남이다. “꿈만 꾸지말라 끝없는 노력과 연습 없이는 그 어떤것도 이룰수 없다. 연습없이 신이 된 건 오직 하나님 뿐이다.”라는 좌우명으로 그는 오늘을 사는 그의 바스켓볼 다이어리엔 남과 다른 정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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