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5)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5)
  • 임정진
  • 승인 200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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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5. 1등은 언제나 은주




「지난달 월례고사 성적표를 나누어 주겠다.」

성적표와 함께 하는 종례 시간은 얼마나 비참한가.

담임 선생의 선전포고에 온 교실 안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촉새가 우선 질문부터 했다.「때리는 기준은 뭡니까?」

다들 궁금했던 사항이었다. 평균 점수 1점 하락에 1대냐, 아니면 전체 석차 1등 하락에 3대냐에 따라 매의 횟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각오를 하고 맞으니까.

「안 때린다. 뭐 맞으려고 학교 오는 애들 같구나.」

「야호 !」

「대신 오늘은 여러분에게 자극을 주는 의미에서 성적순으로 성적표를 나누어 주겠다.」

잠시 기뻐하던 학생들은 곧 조용해졌다. 담임은 성적표 뭉치의 제일 위에 있는 한 장을 집어 들고 잠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성적과는 무관하게 학교에 다니는 네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긴장된 표정이었다. (불쌍한 것들.)

담임은 속으로는‘이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자극을 주고 몰아대지 않으면 다음달엔 보나마나 학교 평균 점수가 5~7점씩 떨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은주.」

은주가 나가서 성적표를 받는 걸 보면서 봉구는 괜히 샤프심을 빼내어 똑똑 부러뜨렸다. 천재는 “우와--- 또 일등이야 !” 하며 부러워했다. 담임선생은 은주에게 성적표를 주며 칭찬을 했다.

「은주는 이번에 우리 반에서 뿐 아니라 2학년 전체 석차에서도 6등을 차지했다. 전체 10등 안에 여학생은 둘뿐이다.」

「골 때리는 애구나.」

천재의 말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다들 웃을 여유가 없었다. 성적표를 받아 든 은주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봉구가 보기에는 오히려 곧 울음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잰 좀 이상한 애야. 1등 했으면 좋아하거나 아니면 잘난체하는 표정을 짓는 게 정상이지... 아무튼 독특한 분위기라 좋긴 좋다.)

봉구가 은주의 표정을 살피는 동안 담임선생은 중배를 불렀다. 여학생한테 밀려나 2등을 해서인지 중배의 표정도 씁쓸했다. 봉구가 성적표를 받고 10여 명이 더 앞으로 나갔다. 담임은 단 한 장의 성적표를 남기고 교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짝이 볼새라 푹 엎드려 성적표를 보는 놈,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에 슬쩍 보고는 얼근 가방 속에 집어넣는 놈, 계산기를 꺼내서 총점과 평균 점수가 맞나 확인하는 놈, 가지가지였다.

「이름 부르지 않은 사람 !」

담임의 말에 다들 옆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얼른.」

담임은 이름을 확인하려고 성적표를 펼쳤다. 순간 천재가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바지에 쓱쓱 문지르며 쑥스러운 듯 앞으로 나왔다. 천재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다들 성적 걱정을 잊고 킥킥 웃었다.

담임은 천재에게 우등 상장이라도 수여하듯 성적표를 내밀었다. 천재 또한 상장 받는 모범생처럼 절도 있게 성적표를 받아 들고 담임에게 꾸벅 절을 하고 돌아서서 반 친구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뒤통수에 담임의 꿀밤이 한 대 날아왔다. 아이들은 또 한 번 폭소를 터뜨렸다.

「자 성적표 다들 받았지? 다음 주 월요일부터 2학년 자율학습을 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시간은 10시까지. 텔레비전 과외 하는 날, 집이 먼 사람들은 조금 일찍 보내 준다. 보충수업 두 시간에 자율학습까지 하려면 저녁도 집에서 먹기 힘들다. 도시락 두 개씩 싸오도록. 그만.」




아이들은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면서 책가방을 꾸렸다. 창수는 얼른 책가방을 들고 담임 뒤를 쫓아갔다.

「저----- 선생님.」

교무실 문 앞에서 창수는 용기를 내어 담임선생을 불렀다.

「왜? 성적이 뭐 잘못 나왔나?」

「그게 아니고 자율학습 때문에 드릴 말씀이...」

「그래? 들어가서 얘기하자.」

교문실로 들어간 창수에게 담임은 작은 보조 의자 하나를 끌어다 주었다.

「앉아라.」

「저---- 전 자율학습에 빠졌으면 해서요.」

「왜? 학원 가니?」

「아니요, 전 대학에 안 가요.」

「한 반에서 대학 가는 애는 사분의 일뿐이야. 그래도 다들 끝까지 해보는 거야. 누군 남고 누군 빠지고 하면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안 돼. 네가 대학에 가지 않을 결심을 했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반의 분위기를 위해 자율학습에 참가해 주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하지만 전 할 일이...」

「응, 네가 아마추어 권투 선수 지망생이라는 건 알고 있어. 권투 체육관에 가서 연습하려구? 취미 생활은 일요일에 하면 되잖니.」

「전 정말 자율학습에 참가할 수 없어요. 자율적으로 학습하는 시간이니까 원하지 않는 사람은 빠져도 되는 시간 아닙니까?」

「너만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냐. 다른 애들도 속으로 그런 생각 많이 할 거야. 나도 이해해.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이야. 이만하면 알아들었지? 자율학습 참가하는 거다. 됐지? 그만 가봐.」

창수는 맥없이 교무실을 나왔다. 어머니의 청소 작업도 도와드려야 하고 병원도 가지 못한 채 집에 혼자 누워 계신 아버지 식사도 챙겨 드려야 한다는 얘기는 끝내 하지 못했다. 다음 번 수업료를 내려면 석간신문도 돌려야 했다. 왜 사실대로 형편을 얘기하지 못했나 자책하며 교문을 나섰다. 교문 앞에는 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을 데리러 온 독서실 봉고들이 10여대 늘어서 있어 복잡했다.

웅비독서실, 등용문독서실, 제일독서실, 일류독서실, 큰뜻독서실, 희망공부방----- 이렇게 쓰여진 봉고를 헤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는데 뒤에서 빵, 빵 클랙슨이 요란하게 울렸다. 창수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며 옆으로 비켜섰다. 문도와 촉새가 탄 검은색 그랜저가 창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순간 창수는 묘한 분노가 치밀어 문도를 노려보고 말았다. 문도도 짧은 순간 창수의 그러한 눈빛을 알아챘다.

「저 자식은 언제 봐도 기분 나뻐. 나중에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나타나서 속썩이는 건 꼭 저런 놈들이래. 뭐 월부책 사달라, 보험 들어 달라, 보증 서달라, 애새끼 등록금 좀 꿔달라, 동창들 관계 봐서도 8학군으로 가야 한다고 우리 엄마가 우기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어.」문도 곁에 앉은 촉새는 애써 명랑한 말투로 문도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 했다.

「저런 자식, 신경 쓸 거 없잖아.」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 저 자식은 언제나 나한테 뻣뻣하게 군단 말야. 쥐뿔도 없는 게...」

「원래 저런 애들이 괜히 자존심만 세서 그래.」

「기분도 그런데, 오늘 디스코텍이나 갈까?」

「좋지, 내가 예쁜 여자애들 많이 오는 데 알아 놨어.」

「어딘데?」

「이태원이야.」

「그래? 박 기사. 우리 이태원에 데려다 줘.」

「오늘 수학 과외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나 아프다고 해야겠네.」

문도는 카폰으로 과외 선생에게 연락을 하고 이태원으로 가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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