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3)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3)
  • 임정진
  • 승인 20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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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3. 강수연 뺨치는 기찬 양호선생님




첫시간은 정치경제였다. 별명이 오리무중인 오리준 선생이 들어왔다.

「한 나라의 경제력을 보통 GNP로 표지한다. 물론 GNP표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각 나라 별로 경제력을 비교할 때 보통 GNP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4천 불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로써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중진국 대열에 당당히 앞장서게 되었다. 그러나 환율의 급격한...」

그때 반장 준식이가 손을 들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눈이 커졌다. 수업중에 자진해서 손을 드는 것은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할 경우나 농담을 하기 위해서인데 준식이가 그런 이유로 손을 들 리가 없었다.

「반장, 왜?」

「GNP가 4천 불이면 5인 가족을 기준으로 볼 때 2만 불 아닙니까? 보통의 경우 가장 한 사람이 가족을 부양하니까 가장의 연간 수입이 천 4백만원이란 말이죠? 그럼 한 달 평균 120만원 정도입니다. 전 우리 집이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인 경제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월수입이 120만원 되려면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친구, 친척, 이웃, 선생님들 경우를 봐도 그 정도 수입을 올리는 집은 별로 없고 그 이하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리준 선생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물론 통계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오차가 있게 마련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합니다. 결국 국민 소득 4천불이라는 건 허상이 아닙니까?

반장은 또박또박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오리준 선생님의 답변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반장은 대학 가서 경제학을 전공해라. 일기예보 봐라. 실제 온도가 있고 체감 온도가 있지? 경제에 있어서는 이 체감 온도가 유난히 낮은 법이다.

그때 오 선생을 구출해 준 것은 누군가의 짜증 섞인 외침이었다.

「진도 나갑시다.

「맞다. 우리는 우선 진도 나가고 교과서에 나온 거 충실히 이해해서 시험에 불이익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반장, 정 불만 있으면 이따 개별적으로 질문해라.

그리고는 다시 수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준식이란 자기 이름보다도 반장이란 호칭에 더 익숙해진 준식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외국의 중학교 수업 광경이 떠올랐다. 20명 남짓 둘러앉아서 선생님의 설명도 듣고 서로 자기가 읽어 온 책을 토대로 발표도 하고 느낌도 말하고 서로 질문하는 수업이었다. 보여지는 분위기는 상당히 느슨했다. 그러나 준식이 자신을 그 교실 안에 집어넣고 생각해 보니 진땀이 버쩍버쩍 나는 탄탄한 분위기일 것 같았다. 미리 예습을 해가지 않으면 발표할 것도 질문할 것도 없으니 친구들 얘기만 멍하니 듣다 와야 하는 힘든 수업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도 학생들의 갖가지 질문에 대답하려면 많은 수업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교무실에 들르는 일이 많은 준식은 문득 그때 선생님들이 무얼 하고 있었나 생각해 봤다. 잡담을 하거나 엎드려 있거나 아니면 성적 처리, 서류 처리에 바빴다. 준식이가 생각해 봐도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과 학생을 너무 많이 맡고 있고, 가르치는 일말고도 처리해야할 많은 서류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충수업까지 하고 나면 선생님들도 지치긴 마찬가지 일테니 공부할 틈도 없을 만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준식인 필기를 다하지 못한 체 1교시를 끝냈다. 주번이 총알처럼 튀어나오 칠판을 닦는 걸 보고 준식은 짝에게 말했다.

「필기한 것 좀 빌려 줘. 복사하고 줄게.」

짝은 공책을 가방에 넣다 말고 꺼내더니 잠시 망설였다.

「얼마 낼래?」

「돈?」

「좋아, 5백원만 내라. 짝이니까 특별히 싸게 해준 거야.」

준식은 기가 막혔다. 시험 직전의 정리 노트를 담배 두 갑에 빌려 본 적은 있지만 단순한 필기 노트, 그것도 한 시간 분에 5백원을 내라니.

「관둬라, 관둬.」

「싫어? 싫음 관둬라. 나중에 빌리면 더 비싸다.」

짝 성훈이는 도로 공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쾅, 쾅, 쾅.

성훈은 누군가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있음이 분명한 화장실 문을 부술 듯 두들겨 댔다.

「급해요, 급해.」

어젯밤에 아버지 몰래 꺼내다 먹은 양주 탓인지, 혹은 스트레스성 과민성 대장염인지 아무튼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파 와서 이번 쉬는 시간에 볼일을 봐놓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화장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늘어선 진지한 얼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구, 지겨워, 지겨워. 이런 기초적인 생리문제 해결하려는 마당에도 줄을 서야 되니 어디 살겠어. 화장실이 지금의 세 배는 돼야지.」

그러나 성훈 곁에서 오줌을 누고 있던 천재가 대꾸했다.

「임마, 화장실이 세 배로 되면 화장실 청소 네가 다 할래?」

「야, 너 약올리니? 내가 급해서 그러잖아.」

「급하면 일찍 와야지. 화장실 경쟁에서도 낙오되면 대학입시에는 어떻게 통과할래?」

천재는 성훈이 배를 움켜쥐는 것을 보고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학생 주임이 없었다. 교무실 옆에 붙은 학생부로 들어갔다. 박 선생은 무슨 책을 보다가 천재를 쳐다봤다.

「무슨 일로 왔지?」

「아까, 아침에 화장실에서...」

「응, 굴뚝? 약속대로 와주니 고맙다. 가봐라.」

「네?」

「놀라긴. 너 나한테 맞는다고 담배 끊겠냐? 담배가 건강에 안 좋으니까 끊는 게 물론 좋지. 다음부터 학교에 담배 가져 오지 마. 알았어?」

「고맙습니다.」

천재는 신이 나서 인사를 꾸벅 했다.

「잠깐, 다른 애들이 날 호구로 생각할지 모르니까 너 일주일 동안 교사용 변소 청소다. 알았지?」

「네.」

천재는 순식간에 맘이 변한 박 선생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고는 학생부실을 나섰다. 곧 시작종이 칠 시간이어서 교실 쪽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천재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학생.」

천재는 뒤돌아섰다. 교무실 앞에는 강수연, 최수지 기죽게 만들 만한 여자가 서 있었다. 천재는 너무나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살짝 웃기까지 했다. 천재는 아랫도리에 저절로 힘이 가는 것을 느꼈다.

「교장실이 어디예요?」

그녀의 질문에 천재는 깜짝 놀라 제정신을 차렸다.

「교장실이오? 저기 저쪽으로 가면······.」

「고마워요, 학생.」

「예, 예.」

교장실 쪽으로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향하여 천재는 술집 앞의 각설이처럼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게 진심으로 인사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고개를 들고 난 천재는 자기도 모르게 우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뭘 봐, 임마?」

학생부실에서 나온 박 선생은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천재를 발견하고 꿀밤을 한 대 먹였다. 그 순간 시작종이 울리고 천재는 제정신을 차리고 뛰어갔다. 박 선생은 천재가 바라보던 쪽을 보고 비로소 그 여자를 발견했다.

「우와, 대단하군.」

박 선생 역시 복도 끝으로 가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둘째 시간이 끝나고 천재는 부리나케 뛰어나가 정보를 수집했다. 수위 아저씨 말에 의하면 그 기찬 여자가 이번에 새로 온 양호 선생님이란 거였다. 천재는 일단 적의 신분을 알았으므로 다음 전략을 짜기 위해 교실로 돌아왔다. 저절로 입이 찢어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봉구는 천재가 들어오는 걸 보고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천재를 복도로 끌고 갔다.

잠시후 천재가 중배 곁으로 다가섰다. 중배는 또 은주 앞자리에 앉아 은주와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중배야.」

「왜 그래?」

중배는 천재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담임이 널 좀 보자는데?」

「무슨 일루?」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굉장히 화났던데 너 뭐 잘못한 거 없냐?」

중배는 순간 학원 다니는 걸 누가 찔렀나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황급히 일어나 나갔다. 천재가 뒤쪽에 있던 봉구에게 눈짓을 보내자 봉구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게 은주 곁으로 다가왔다. 마침 은주 짝이 자리를 비우고 있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저... 뭐 하나 물어 볼 꺼, 있는데...」

은주는 봉구가 영어 참고서를 들이대자 당황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학생이 접근하자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나 은주 짝인 소연이가 마침 자리로 돌아오고 시작종도 울려 은주는 봉구에게 대꾸할 필요가 없어졌다.

「얘, 종쳤어. 네 자리로 가.」

소연이가 우악스럽게 봉구를 잡아 끌어냈다. 봉구는 별수 없이 벌레 씹은 얼굴로 물러섰다. 천재는 엉거주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봉구를 보고 낄낄 웃었다.



다른 아이들도 옆반에서, 매점에서 , 화장실에서 달려와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수는 운동장 뒤쪽의 수돗가로부터 분주히 교실로 들어왔다. 3일 전에 청소 손수레에 깔려 아버지가 다쳤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새벽 3시부터 어머니를 도와 청소를 하고 학교에 오느라 아침도 먹지 못한 창수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점심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은 2교시 끝나고 도시락을 먹어치우면 점심때는 매점에 가서 국수나 빵, 컵라면을 사먹으면 되지만 창수는 그럴 수 없었다. 도시락을 일찍 먹어 버리면 도저히 보충수업까지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창수가 들어서는 걸 문도가 얼핏 보았다. 창수 자리는 문도 자리를 지나가야 한다. 문도는 의식적으로 통로를 가로막아 섰다. 창수는 별 생각 없이 문도를 비집고 지나가려 했다.

「으웩, 이게 무슨 냄새야. 썩는 냄새잖아.」

창수는 깜짝 놀랐다. 청소차를 밀고 와서 옷이 더럽지 않은가에만 신경을 썼지 미처 냄새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다. 창수는 못 들은 척하고 자리에 앉아 버렸다. 문도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다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말했다.

「쓰레기차가 지나갔나? 웬 난지도 향수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창수가 일어서려는데 선생님이 들어섰다. 창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책을 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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