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엔 없지만 ‘국가대표’엔 있는 것, 혹은 그 반대
‘해운대’엔 없지만 ‘국가대표’엔 있는 것, 혹은 그 반대
  • 김다인
  • 승인 200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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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와 스키점프의 대결, 승자는?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오랜만에 한국영화 두 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미 1천만 관객을 넘어선 ‘해운대’와 그보다 늦게 개봉했지만 7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국가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전의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내세워 승부수를 띄웠고 관객들은 그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해운대’는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질리도록 봐왔던 재난영화를 한국적으로 재구성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가대표’는 소외된 스포츠에 대해 초점을 맞춰 한국영화의 소재 영역을 넓혔다는 데서 역시 그 의미가 있다.
이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다.
재난+코믹, 또는 역경+코믹으로 이뤄져 있으며 코믹함이 ‘가족’이라는 것을 매개로 멜로 또는 감동으로 촉수를 뻗어나간다는 점이 비슷하다. 중견 연기자와 신진 연기자가 적절하게 연기 조화를 이룬 것도 비슷하며 1백억원대의 제작비를 들여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공을 들인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해운대’ 최대의 웃음, 눈물 끌어내기
‘해운대’는 코미디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과 ‘한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영화를 선전하는 카피 중 하나였다) 배우들이 모여서 만든 영화다. 윤제균 감독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등의 영화를 통해 시나리오 쓰는 실력과 코미디 영화 만드는 실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출연 배우 또한 짱짱하다. 중견배우 박중훈, 설경구, 엄정화에 좋은 배우 하지원까지 화려하게 라인업을 갖췄으며 여기에 이민기, 김인권 등이 제몫 이상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가대표’는 ‘미녀는 괴로워’로 단발 히트를 날린 김용화 감독에, 중견배우들도 그 파장에 눈치를 보고 있는 ‘추격자’의 하정우가 투톱을 이룰 뿐 그 외의 출연진은 그다지 힘이 세지 못하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해운대’의 감독은 아마 신(scene)마다 최고의 웃음 또는 눈물을 뽑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 같다. 하지원이 영화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버팀목 노릇을 하는 가운데 설경구는 특유의 허허실실 연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특히 부산 사직야구장에서의 ‘진상연기’는 그 정점이었다. 그리고 김인권은 광안대교 컨테이너 장면에서, 이민기는 헬기 추락장면에서, 엄정화는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웃음 또는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그 장면들은 구성상 석연치 않다고 고개를 갸웃하던 관객들에게마저 집요하게 집중을 하게 만들었다. 김인권과 컨테이너의 광안대교 슬랩스틱(?) 장면은 현실감과는 상관없이 CG 댄스를 하는 아슬아슬함을 즐기면 됐고 이민기의 헬기 추락 장면은 입술을 물어뜯기면서 이룬 순애보의 절정으로 최대한 멜로 감정을 이끌어냈다. 하늘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과연 저렇게 피할 수 있는지, 또 쓰나미가 몰아닥쳤는데 조난당한 커플을 위해 헬기 한 대가 뜬다는 사실이 가능한지 여부는 물어봐야 소용없다. 엄정화의 엘리베이터 장면은 그 가운데서도 절정이다. 물 속에 눈물과 함께 가라앉았던 엄정화를 되살려내 다시 한번 죽이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해운대’가 재난영화가 아니라 재난패러디영화가 아닐까 의심을 할 정도였다.




‘국가대표’ 루저들의 드라마
반면 ‘국가대표’는 전형적인 루저(looser)영화의 틀을 따라갔다. 입양아, 가난한 형제, 덜떨어진 음식점 사장 아들, 약이나 하는 삐끼에 피리미드 판매를 하는 딸은 둔 아버지 등이 모여서 마침내 꿈을 이룬다는 ‘외인구단’식 구조다. 스타급 연기자라고는 하정우가 유일할 뿐 다른 연기자는 드라마 등을 통해 안면을 튼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드라마는 강화됐다. 더군다나 음지에서 묵묵히 연습하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애환이 깔린 실화라는 강점이 있었다.
관객들은 이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핸드볼선수들이 주는 감동을 맛본 바 있으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봅슬레이편’, 또 직전에 개봉한 ‘킹콩을 들다’ 등을 통해 비인기 스포츠에 대해 귀와 눈이 열려있던 터였다.
하지만 ‘외인구단’식 영화의 구성 역시 뻔한 것이어서 예컨대 과하다 싶은 저능아 동생 연기나 락커룸에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부르는 등 가끔씩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도 있었다. 공항에서 친어머니를 앞에 두고 하는 입양아 밥의 독백도 처음에는 몰입하기가 힘들었지만 하정우 연기의 진정성으로 결국 눈물선을 자극하며 완성됐다.


그들의 중심, ‘가족’
이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이 전제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주도해나가는 중심이다.
‘해운대’는 재난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김인권의 어머니, 엄정화 부부의 딸) 재난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족을 만들거나(하지원과 설경구) 한다. 재난으로 인해 일상이 파괴됐다가 다시 새로운 일상으로 복구되는 것이다.
영화의 상당부분은 쓰나미가 닥치기 전 부산에 사는 서민들의 일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녹록치 않은 성질에 막강한 부산 사투리를 쓰며 풀어내는 부산 사람들의 삶은 생동감이 넘쳐 이 영화가 ‘재난’영화라는 것을 잊게까지 한다. 설경구와 김인권이 수선스럽게 관객들의 웃음 코드를 끌어내고 하지원과 이민기는 차분하게 맞장구를 친다.
반면 ‘국가대표’는 가족과의 관계가 아예 없거나 약한 사람들이 스키점프의 성공을 통해 새롭게 가족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입양아인 하정우가 친모를 만나는 것, 말썽쟁이 딸이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것, 인정받지 못한 고깃집 아들이 새삼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 등은 가족관계의 회복이며 일상으로의 귀환이다.
주인공들의 가족을 연기해내는 것은 중견 연기자들 몫인데, 특히 두 영화 모두에 중견 연기자 김지영이 출연하고 있어 눈에 띈다. 김지영은 ‘해운대’에서는 설경구 모친으로 진한 부산 사투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반면 ‘국가대표’에서는 김지석 형제의 귀 안들리는 할머니로 나와 말문을 닫고 감정연기를 한다.



의문이 드는 것은 ‘해운대’에서 박사 연기를 한 박중훈이다. 재난을 예고하고 경고 하는, 드라마상으로 볼 때는 비중이 적지 않은 역인데 의외로 잘 살려내지 못했다. 박중훈의 연기를 오랫동안 봐왔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서 박중훈의 연기는 의문부호로 남는다.
반면 ‘국가대표’에서 코치 역을 맡은 성동일은 그가 연기자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TV의 예능프로그램이나 토크쇼 패널로 얼굴이 익숙해진 지 오래인데 오버연기의 덫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며 저력을 보여줬다.


그들의 같은 점
이 두 영화에는 모두 100억원대의 돈을 들인 CG 장면이 들어가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해운대’에는 쓰나미가 몰려오는 장면, 폐허가 된 해운대 장면, 그리고 앞서 말한 헬기 장면과 광안대교 장면 등에 들어가 있고 ‘국가대표’에는 선수들이 점프하는 순간이 실제 선수들의 점프와 연기자들의 얼굴이 합성돼 있다.
개인적으로 CG의 성과는 규모와 관계없이 ‘국가대표’ 쪽이 더 드라마와 잘 맞물려들었다고 본다. 점프대를 떠나 하늘을 날아오르는 선수들의 모습은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맛보게 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반면 ‘해운대’는 CG와 드라마 혹은 연기가 튀는 부분이 눈에 띄었으며 특히 엄정화와 박중훈이 쓰나미 앞에 서 있는 장면이나 쓰나미가 훑고 간 후 폐허가 된 해운대 일대의 CG는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공교롭게도 이 두 영화는 개봉 후 현실적인 이슈들과 맞물렸다는 공통점도 있다.
‘해운대’는 피서철에 느닷없이 해운대의 이안류((離岸流·해안으로 밀려오다 갑자기 먼 바다 방향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역조성 해류)가 몇 번 몰려와 피서객들을 당혹시켰다. 영화 속의 쓰나미와는 다르지만 해운대의 파도가 피서객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국가대표’는 개봉중에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FIS 스키점프 대륙컵 대회에서 영화 속의 실제 선수가 금,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뤄 화제가 됐다. 음지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시절을 견딘 선수들로서는 영화를 통해 스키점프 자체가 이슈가 된 것만도 힘이 됐던 모양이다.




그들의 다른 점
이처럼 많은 공통점이 있는 영화들이지만, ‘해운대’에는 없지만 ‘국가대표’에는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신선함이다.
‘국가대표’의 드라마 자체는 새롭지 않았으나 소재가 신선했고 연기진 또한 신선했다. 그리고 이야기 흐름과 관계없이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웃게 해야겠다는 강박도 없었다. 조금 엇박자가 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결국은 관객들이 함께 스키점프대에서 뛰는 듯한 일체감을 느끼게 했고 함께 성취감을 맛보는 감동도 줬다.
일주일 앞뒤로 개봉한 이 두 영화에 쏠린 관객들 관심이 ‘해운대’에서 ‘국가대표’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면, 아마 이 신선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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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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