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장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대한민국 시장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 김경자
  • 승인 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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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김경자】일본에서 온 15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올 여름에 우리나라 소비자와 유통시장을 조사하고 견학할 기회가 생겼다. 현장에 나가기 전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소비트렌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백화점과 재리시장, 대형할인마트, 남대문시장, 그리고 명동의 스트리트 숍을 견학하였다. 일주일간의 견학을 마치고 일본과 비교해서 한국의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느낌을 발표하는 시간. 나는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그들의 발표를 경청하였다.


학생들의 ?V표는 내용과 초점이 각각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지적된 것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얼마나 세련되고 아름다운지, 마트나 백화점의 건물이 얼마나 멋진지에 대한 감탄이었다. 일본 학생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운 피부결과 세련된 화장법 및 옷차림을 부러워했다. 일본 여대생들의 패션 코드가 ‘귀여움’과 ‘여성스러움’이라면 우리나라 여대생들의 코드는 ‘세련됨’과 ‘자신감’ 이라나. 또한 백화점의 각 층에 마련되어 있는 안락하고 화려한 휴게실과 무료로 냉온수를 공급하는 정수기와 화장실에 비치된 헤어드라이어를 보고 부러워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럭셔리한 휴게실이나 화장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지적한 다른 하나는 그 멋진 곳을 활보하거나 멋진 곳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 즉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너무 표정이 없고 전문적이지 않고 심지어 무례하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종업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없고 손님을 반기지 않더라. 식품코너에 근무하는데도 불구하고 모자를 안 쓰고 있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더라, 내가 뭘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 옆에 와서 말을 걸며 부담을 주더라, 물건을 안 사고 그냥 나가려고 하자 얼굴표정이 변하더라... 등등의 내용이었다. 심지어 명동에서는 매장 입구에 서 있던 종업원과 눈을 마주쳤다가 반강제로 매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무조건 “야쓰이, 야쓰이 (값이 싸다는 뜻)”라고 말하며 화장품 가게 안으로 팔을 잡아끌고 들어가 샘플을 나누어 주고 화장품을 사라고 하는데 무섭고 한편 미안해서 안 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 번 해외여행을 하면서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 중 하나는 일본에서는 고객이 먼저 무엇을 묻거나 요구하지 않는 이상 종업원이 손님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구경만 하고 싶은 손님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같이 수업을 듣던 우리나라 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종업원이 손님에게 무심하다면 그건 오히려 손님을 무시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였다. 만일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볍게 목례만 하고 그저 손님을 바라보는 정도면 어떨까? 나 자신도 매장을 서성이다가 ‘무엇을 찾으세요?“라고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와 쫓아다니는 종업원이 부담스러워 그냥 아이쇼핑을 포기하고 나와버린 적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시장이 가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멋지고 깔끔하게 정비된 재래시장, 매장내에서 직접 수경재배한 신선한 야채를 팔고 있는 대형할인마트, 명동 스트리트 숍에서 마구마구 공짜로 뿌려지는 샘플들, 그리고 갤러리 수준으로까지 멋지게 단장된 백화점의 화장실... 우리나라 시장의 하드웨어는 선진국인 일본의 학생들도 감탄할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가히 금메달감이다. 과연 소프트웨어도 그럴까? 고객의 마음과 동선을 배려하고 장기적으로 고객과 상생하려는 심리적인 정비가 되어 있을까? 고객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쫓아다니며 무엇을 원하시는지 상냥하게 묻고 상냥하게 일일이 설명하는 게 정말 고객을 존중하고 배려해서일까?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는 지금, 글로벌 시장의 진정한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정비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경자

소비자경제 전문가, 서울대 소비자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소비자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현 카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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