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우먼’ 우크라이나 창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언노운 우먼’ 우크라이나 창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 김다인
  • 승인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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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히치콕식 스릴러를 만나다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시네마천국’의 감독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음악이 만나 스릴러 한편을 완성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감독하고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입힌 영화 ‘언노운 우먼(The Unknown Woman)’은 오랜만에 보는 히치콕 오마주 스릴러다.
보통 상업영화 공식에 초반 5분 안에 관객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통용되고 있는데 이 영화는 5분도 되기 전에 관객들을 잡아당긴다.
가면을 쓰고 속옷만 입은 여인들이 3명씩 연이어 등장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벽에 붙은 사진 속의 시선, 전형적인 관음증이다. 그리고 그중 한 여자를 지목하고 옷을 다 벗으라고 한다. 음모까지 노출되는 정면 샷이다. 자신이 뽑혔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떨며 가면을 벗는 여자의 얼굴은 기차를 타고 가는 이레나(크세니야 라포포트)의 얼굴로 연결된다.
관객들은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이 주는 긴장감 속에 이제부터 감독이 짜놓은 퍼즐을 맞추기 위해 영화에 몰입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이탈리아로 온 여인 이레나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그 많은 돈을 가지고도 아다처 집안의 가정부로 들어가는지, 아다처의 딸 테아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감독은 이레나의 과거와 현실을 끊임없이 교차편집하는 방법으로 ‘알 수 없는 여자’ 이레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실마리를 주는 형식을 택하고 있다.



이레나는 아다처 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해 미장원도 따라가고 내다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맛보며 아다처 집안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익힌다. 이윽고 아다처 집안에서 일하고 있는 가정부를 계단에서 밀쳐 식물인간을 만들고는 대신 가정부로 들어간다.
그 중간중간 이레나의 과거, 금발의 창녀였던 조지아의 삶이 플리커(flicker 화면이 짧게 삽입돼 깜빡거려 뚜렷하게 인식을 못하게 하는) 효과로 삽입되어 이같은 이레나의 행동이 과거와 연관돼 있음을 암시한다.
관객들은 이레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으며 이레나 퍼즐 맞추기를 시도한다. 점잖아 보이는 아다처가 이레나에게 가혹행위를 한 인물인가, 아니면 아다처 부부 모두 이레나 임신에 관여한 것은 아닌가 등등.
이레나 퍼즐이 거의 다 맞춰질 즈음, 포주 살해사건으로 인해 경찰에 잡힌 것을 계기로 플래시백으로 잠깐씩 보여졌던 이레나의 과거가 그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창녀 조지아였던 시절 이레나는 가혹한 포주 밑에서 혹사를 당했다. 수당을 채우지 못했을 때는 거꾸로 매달려 오줌을 맞기도 했고 포주가 정한 고객의 아기를 낳아주는 대리모 노릇을 하느라 12년 동안 9번의 임신을 했다, 그 와중에 사랑하던 남자마저 포주에 의해 살해됐다.
하지만 죽을 만큼 충분히(?) 가위로 찔렸던 포주가 멀쩡하게 되살아나 이레나를 위협하는 것도, 그리고 여수사관에게 과거를 털어놓는 과정이 갑자기 여성 인권영화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의아한데, 감독은 다시 한번 뒤집기를 시도한다. 이레나 퍼즐의 근거가 되는 테아가 실은 이레나와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히치콕 스릴러의 ‘맥거핀’ 효과(히치콕 영화에 자주 사용되는 기법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영화 속에 넣어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를 토르나토레 식으로 재해석해 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구성이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탄탄한 드라마와 촬영, 이레나 역의 배우 크세니야 라포포트의 단호하지만 불안한 눈 연기 등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나 너무 잦은 플래시백, 후반부에 가서 다소 갈피를 잃은 스토리 구성은 초반의 긴장감을 반감시켜 아쉽다. 특히 출소한 이레나를 맞으러 테아가 온다는 마무리는 군더더기 같다. 119분의 상영시간을 좀 줄여서라도 후반부를 과감하게 마무리했다면 오히려 여운이 길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서 보인다. 이레나가 일하는 건물의 나선형 계단은 히치콕 영화 ‘버티고’ 등에서 익히 봤던 것이고, 이레나가 맞은편 건물에서 아다처의 집을 훔쳐보는 것은 역시 히치콕의 ‘이창’에서 등장했던 설정이다.

이 영화를 본 것은 광화문의 작은 극장 씨네큐브에서였다. 광화문 시절 자주 갔던, 마니아들만의 은밀한 영화공간이었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이 극장을 운영했던 백두대간이 8월말로 씨네큐브 운영을 중단한다는 공지사항이 있었다. 언제 가든 좋은 영화 한두 편을 볼 수 있던 극장이었는데, 아쉽다.
‘언노운 우먼’을 보러 간 것은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70석 가까운 좌석이 거의 다 차있었다. 선전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 조용히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 타이틀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예의바른 관객들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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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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