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l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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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
  • 승인 200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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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즐겁게 무시하면서 좀 살래? / 마리


[인터뷰365 마리] 택배상자를 뜯었을때 에? 뭐야...또... 내가 참 싫어하는 디자인의 책이다. 책의 원가를 올리는 것 외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하드카바.(이런 딱딱한 겉장은 넘긴 페이지들을 넘길 페이지 쪽 밑으로 접어 넣을 수도 없고, 화장실 등에서 책을 말아 쥘 수도 없어 심통이 난다.)


게다가 정규 사이즈가 아닌, 자기들은 가방 속에 쉽게 넣고 다니라고 그랬다고 주장하는 작은 책이다. 책꽂이에 꽂아놓으면 쑥 들어가서 키 순서를 흐트려 눈에 거슬리는 이런 작은 책이 나는 싫던데 요샌 너무 많이 나온다. 책도 그 범주에 들어간 것일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심드렁하게 집어든 책.

그러나 저자의 탁월한 너무나 탁월한 글 빨은 이 모든 걸 용서하게 된다. 첫 장을 넘기면, 마치 셔터를 누르는 순간 누가 카메라를 내리친 듯, 얼굴의 일부가 잘린 대머리아저씨가 웃고 있는 사진과 그 밑에 이어진 작가소개부터 앞으로 시작될 유머를 암시한다.


1967년 디프흘츠 근처 에버스 호어스트에서 태어난 호어스트 에버스는 1987년 독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성공적으로 학업을 중도에 접은 그는 1990년부터 정기적으로 베를린의 여러 소극장 무대에 올라 자신이 쓴 이야기를 읽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혹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좀 낭비한들 어떠냐? 어차피 내 시간인데. 이것이 호어스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치관처럼 보인다. 자기가 그런 것도 모자라 오늘도 나름 값진 시간을 보냈다고 회사에서 돌아와, 피곤하지만 그래도 책 몇 줄은 읽고 자야겠다는 성실한 독자를 아주 김새게 웃겨버린다.


학력고사...아니 요즘엔 수능이라고 한다지? 나도 그걸 끝내고 발표를 기다리던 한 달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합법적(?)으로 놀기만 해도 되는 기간이었다. 아무리 극성스런 부모라 할지라도 그 기간에 다가올 대학생활을 위해서 토익이라도 미리 공부해 놔라 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서 보고 싶었던 TV를 맘껏 보고 늘 한스러웠던 잠도 푹 푹 계속 자리라 했었다. 그러나 한 30여분 TV를 보고 있으면 왠지 불편해지는 느낌. 이렇게 마냥 놀아도 되나? 어라? 시험 끝났잖아. 놀아도 되지. 맞아 맞아. 만화책을 빌리러 간다. 12권짜리. 어라? 이렇게 많이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 가만...시험 끝났잖아 너 자꾸 왜이래!!! 잠들기 전에 자명종을 맞추려한다...아니지...그냥 계속 자도 되잖아? 정말 미치겠군.


그때 이 책을 읽었으면 좋을 뻔 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지금이 그때보다 더 한 나날들이다. 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를 넘어 유쾌하고 시원하다. 물론 나는 호어스트처럼 집안도 전혀 안치우고, 먹던 피자도 거실에 널어놓은 채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미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세팅 되어졌다. 이런저런 규칙들과 상식들은 그것에 세팅되어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없어지면 불편한 것이 되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원할 때 그것들을 무시 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시종일관 그것들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에 의해 그것들을 취했고 필요 없다 싶거나, 너무 귀찮게 한다 싶으면 무시 할 수 도 있는 내공. 자식노릇, 부모노릇, 직원노릇, 상사노릇... 하라는 것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런 내공을 길러야 한다. 저런!! 또 하라는 게 생겼군!!!


억지로 가게 된 소풍이 귀찮아서, 버찌를 먹으며 그 씨앗을 새총으로 구름에다 날리다(구름을 자극해서 비를 내리게 하려는 의도임) 그냥 창문에 엎어져 잠이 드는 호어스트를 읽으면서 유쾌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내가 권하는 책은 굳이 읽으려 하지 말기를. 호어스트 방식대로 즐겁게 그냥 <무시>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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