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빨간양말만을 사랑한 모 본.
[MLB] 빨간양말만을 사랑한 모 본.
  • 소혁조
  • 승인 2007.11.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LB 정조준 / 소혁조


[인터뷰365 소혁조] 유추프라카치아라는 식물이 있다. 아프리카의 밀림에 사는 작은 식물인 이 유추프라카치아는 주변의 자극에 너무도 민감해서 외부 생물이 스치기만 해도 말라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제 건드렸던 사람이 오늘 또 만져주고 내일 또 만져주면 계속 해서 살 수 있는 신비한 식물이기도 하다. 한때 이 유추프라카치아라는 식물에 인간사의 사랑, 고독의 감정을 이입하여 쓴 글들이 웹상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인간은 홀로 서기를 바라고 스스로 강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일수록 누군가의 터치, 사랑을 갈구하는 외롭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괴물 같은 거구들이 판치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이런 유추프라카치아 같은 선수가 한 명 있다. 지역의 오랜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그렇게 받은 사랑을 지역의 팬들에게 환원하며 더한 사랑을 받았던 선수. 하지만 그 사랑하는 팬들을 떠나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자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며 조용히 은퇴한 비운의 선수. 오로지 보스턴만을 사랑했고 보스턴 팬의 사랑을 먹고 살았지만 보스턴을 떠나게 되자 사랑을 못 받아 말라 죽는 유추프라카치아처럼 되어버린 선수. 1990년대 최고의 강타자로 군림했고 보스턴의 상징이자 보스턴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선수 모 본이 그 주인공이다.


꿈만 같았던 보스턴에서의 나날들


본은 1989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으로 보스턴에 입단하였다. 대학시절부터 1루수였던 본은 많은 기대 속에 보스턴에 입단하였으나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와중에 한 번은 보스턴을 떠나게 될 뻔한 적도 있었다. 보스턴은 휴스턴의 노장 투수인 래리 앤더슨을 받는 대가로 본을 트레이드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원래 휴스턴은 본을 원했으나 보스턴에선 본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를 내주지 않았고 대신 엄청난 3루수 유망주를 내주게 된다. 그의 이름은 제프 베그웰. 2006년을 끝으로 은퇴한 휴스턴의 전설이며 크레이그 비지오와 함께 휴스턴의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 선수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보스턴에 살아남은 본은 1993년부터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5년에 최전성기를 구가한 본은 불과 140 경기에서 3할 타율에 39홈런 126타점을 기록하며 시즌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95년의 MVP는 역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는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중심타자였고 50홈런에 126타점을 기록했고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켰던 앨버트 벨을 제치고 본이 MVP를 수상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본이 실력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격도 함께 갖춘 훌륭한 선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평소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기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본에 비해 앨버트 벨은 기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고 지역의 팬들에게조차 사랑을 받지 못한 천하의 망나니였다.


본이 보스턴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팀의 보스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본은 팀의 클럽하우스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였으며 언제나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본은 수많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줄 줄도 아는 따뜻한 인간미와 좋은 품성을 가진 선수였다.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했고 그 누구보다 많은 기부금을 내며 지역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1995년에서 1998년까지 4년간 기록한 본의 평균성적은 타율 0.320, 홈런40, 120타점과 출루율은 4할이 넘었다. 그렇게 1998년까지 팀의 상징이자 핵으로 영원히 보스턴에 남을 것 같았던 본. 그러나 팬들은 그를 사랑했지만 보스턴 단장 댄 듀켓은 팬들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시련의 시작


1998 시즌이 끝나고 본은 FA 자격을 얻게 된다. 보스턴 입장에선 팀의 상징인 본에게 거액을 안겨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보스턴 단장인 듀켓은 평소에 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본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긴 하지만 타격에서 많은 약점이 있었다(이 부분은 뒤에 설명을 덧붙이겠다). 보스턴의 입장에선 본이 꼭 필요한 선수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런 선수에게 어마어마한 거액의 장기계약까지 선사하고 싶진 않았다. 본과의 협상에서 미적지근한 태도만을 보였고 이에 실망한 본은 그를 간절히 원하는 팀인 애너하임 애인절스(지금의 LA 애인절스)와 6년간 8천만 불의 초대형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난 로켓(로저 클레멘스)이 어떻게 떠났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보스턴에 남길 원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요구를 했으나 듀켓은 내게 반쪽짜리 선수라며 모욕을 주었다." "보스턴은 팀을 위해 고생한 선수를 홀대한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왜 밤비노의 저주가 생겼는지 모르고 있다. 이젠 내가 보스턴의 우승을 막을 것이다" / 보스턴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에인절스와 계약을 맺은 후 본이 했던 인터뷰 중에서


사랑하는 팬들을 남기고 떠나는 아쉬움이 그렇게 컸을까? 본은 보스턴 레드삭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토로했다. 그리고 팀의 상징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를 가차없이 버린 듀켓 단장은 지역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었다.


6년간 8천만 불을 받고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된 본. 에인절스 팬들은 역사상 최강의 좌완 슬러거를 들뜬 마음으로 맞이했다. 그러나 보스턴을 떠난 본은 예전의 본이 아니었다. 그에겐 끝없는 불운이 시작되었다. 시즌 개막전에서 1루쪽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가 계단에서 굴러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고 부상으로 인한 훈련부족으로 몸은 엄청나게 비대해졌다. 그렇게 비대해진 몸으론 제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2001년엔 왼쪽 팔의 힘줄이 끊어지는 엄청난 부상으로 신음하며 단 한 경기에도 나설 수 없었다.


보스턴과는 극과 극의 먼 땅인 캘리포니아에서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본. 애너하임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본을 뉴욕 메츠에 넘겨버린다.



메츠에서 부활을 노렸던 본. 그러나 거듭된 부상으로 부진했고 선수생활의 마지막 해인 2004년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극성스러운 뉴욕 팬들의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2005년. 메츠에서 방출된 본은 새로운 둥지에서 옛 명성을 찾으려 했으나 어느 팀에서도 그를 불러주지 않게 되자 쓸쓸히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역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선수치곤 너무도 아깝고 쓸쓸한 은퇴였다.


본의 야구. 그의 강점과 약점


본은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 사상 최강의 좌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파워와 정확성을 겸비한 보기 드문 강타자였으며 보스턴의 구장인 팬웨이 파크에 가장 적합한 타자였다.


우선 타석을 꽉 채우는 그의 엄청난 체구는 스트라잌 존을 최대한 좁히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좁혀진 스트라잌 존에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질은 한정되어 있다. 바깥쪽 볼은 철저히 밀어치고 몸쪽 볼은 끌어 쳐서 장타를 만들어냈다. 좌익으로 날아가는 볼은 그린 몬스터에 맞아 장타가 되고 극단적으로 짧은 우익으로 날아가는 볼은 바로 홈런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는 이렇듯 팬웨이 파크의 구장 특성을 잘 활용했던 타자였다.


참고로 팬웨이 파크에 맞는 맞춤형 타자들이 있다. 바로 모 본과 비슷한 타격을 하는 선수들인데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큰 활약을 못하다가 보스턴에 와서 역사상 최강의 클러치 히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이비드 오티스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본이 떠난 뒤에 보스턴의 새로운 아이콘 역을 맡았고 본처럼 보스턴을 떠나게 되자 추락한 노마 가르시아파라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에겐 치명적인 약점 또한 있었다. 너무 큰 체구 때문에 발이 심하게 느리다는 것이다. 본은 안타를 치고도 너무 발이 느려 1루에서 아웃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수비 능력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그를 반쪽짜리 선수로 평가절하 하였고 그 이유를 거론하며 당시 보스턴의 단장이었던 듀켓은 본을 잡지 않았었다.


그리고 너무 큰 체구 때문에 항상 부상에 시달렸다. 다른 선수들 같으면 발목 부상을 입었어도 금방 회복될 수 있었겠지만 본은 부상기간이 꽤 오래 가야만 했다. 또한 부상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으니 몸은 점점 더 불어만 갔고 또 부상에 시달리게 되는 악순환이 연속된 것이다.


본을 과연 최악의 먹튀로만 볼 것인가?


역대 메이저리그 먹튀의 명단에서 제1순위로 손꼽히는 본. 그는 보스턴 시절엔 사상 초유의 좌타자로 손꼽혔지만 초대형 계약을 맺고 보스턴을 떠나면서 그는 과거 자신의 실력의 반의 반도 못되는 모습만을 보이며 모두를 실망시켰다. 그리고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팬들은 맹비난을 서슴지 않았고 끝없는 부상과 부진 속에서 신음하던 슈퍼스타는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사상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은 당연할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받은 만큼 실력으로 보여주고 실력으로 보여준 만큼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 외엔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 그것이 바로 냉정한 프로의 법칙이고 그 법칙 속에서 살아남아야 프로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의 프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받은 만큼 다시 팬들에게 환원할 줄 알았던 따뜻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봉사활동을 했고 많은 기부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런 훌륭한 인품을 가진 선수에게 그저 돈 값을 못한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만을 씌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하나. 그저 돈 받고 야구만 하는 야구선수 그 이상의, 훨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프랜차이즈 선수를 버린 구단의 행태 또한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로의 세계는 물론 비즈니스의 법칙이 우선해야 하므로 아무리 팀을 위해 오랜 세월을 뛰었어도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은퇴를 종용하거나 트레이드를 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프로의 세계이므로. 하지만이와 같은 논리엔 중요한 한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그토록 냉엄한 프로의 세계는 그들을 응원하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팬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것이다.


본은 더 이상 보스턴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거의 버림받다시피 정든 팬들을 뒤로 하고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떠난 뒤에도 그는 보스턴을 잊지 못했고 애너하임 시절엔 보스턴에 대한 향수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도 하여 구단과 팬들의 분노를 샀던 적도 있다. 그만큼 본은 자신을 사랑했던 보스턴의 팬들을 사랑했고 보스턴을 떠나면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는 것이다. 이런 선수를 프로세계의 냉엄한 논리에 따라 떠나게 하고 그 선수가 부진에 빠졌을 때 먹튀라고 비난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언젠가부터 국내 야구팬들은 박찬호 선수에게도 먹튀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박찬호 선수가 보여준 것은 야구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인 전체에게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불어넣어 주었고 수많은 야구 꿈나무들에게 한국야구가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인정 받을만 하고 그의 부진을 먹튀라고 쉽게 욕해선 안된다.


한 팀에서 오랜 세월을 뛰며 지역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상징적인 선수들 중 팀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은 꽤 많다. 보스턴에선 모 본이 그랬고 로저 클레멘스가 그랬다. 뒤를 이어 노마 가르시아파라도 그랬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상징이었던 ‘빅 허트’ 프랭크 토머스 역시 그랬다. 이들 중 다른 팀으로 옮겨가서 보란 듯이 재기하며 그를 응원했던 옛 팬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경우도 종종 있다. 로저 클레멘스와 프랭크 토머스가 그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팬들은 그들을 볼 때 참으로 희비가 교차하는 감정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보처럼 옛 연인만 그리워하다가 쓸쓸하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팬들은 그들을 바라볼 때 그저 애틋한 감정으로만 볼 뿐이다.

프로는 실력과 돈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프로는 팬들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팬들의 사랑은 그들이 보여주는 출중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팬들에게 보여주는 감성적인 면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 오로지보스턴만을 사랑했던 우직한 남자. 그 우직함 때문에 미련하다는 소릴 들으며 먹튀라는 오명까지 받게 된 남자 모 본. 그가 이룩해놓은 기록들은 훗날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에게 보여준 그의 사랑은 기록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팬들과 주고 받은 사랑,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항목을 수치로 매겨 명예의 전당 투표에 적용한다면 모 본 또한 명예의 전당에 무난하게 입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소혁조
소혁조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