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와 룸살롱이 퇴폐문화?
카바레와 룸살롱이 퇴폐문화?
  • 김세원
  • 승인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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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 할 노릇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담배는 혹시 안 피우세요?” “그럼 술은 잘 하시겠네요” 대학 시절 미팅에 나가 불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상대방의 질문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커피숍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상대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로 시작되는 아폴리네르의 시를 읊조리거나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들먹였다.


대학 때의 경험을 들추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연상하는 이미지는 대개 ‘사디즘’을 탄생시킨 사드 후작처럼 우아하지만 비도덕적이고 로트레아몽이나 보들레르 랭보의 시처럼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나라에서 캬바레, 살롱, 마담 등 불어에서 온 단어들은 어쩌다 본뜻과 관계없이 향락 업소 및 업소 종사자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 버렸다.


캬바레는 춤바람이 난 자유 부인들이 제비족과 어울리다 가정 파탄에 이르게 되는 곳이요, 영어의 룸과 불어의 살롱이 ‘부적절하게’결합된 룸살롱은 밀실정치와 부정부패의 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프랑스의 캬바레


프랑스에서 캬바레는 손님이 음식과 춤을 즐기면서 밴드 연주나 쇼를 펼치는 시설을 갖춘 곳을 말한다. 불어의 캬브(지하실)와 아랍어의 카마레(목로주점)가 어원이다. 파리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캬바레는 버라이어티 쇼를 하는 극장 식당 겸 술집이란 표현이 적합하다. 한마디로 단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기념 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관광 스타일에 딱 맞는 곳이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오면 모시고 갔던 식당도 캬르티에 라탱에 있는 ‘Aux Trois Maillet’(오 트르와 마예)란 카바레였다. 지하 포도주 저장창고를 개조해 반원형 구조로 돼 있는 실내에는 나무로 된 긴 식탁 5,6개와 등받이도 없는 긴 의자가 놓여있는 게 전부다. 앞쪽에는 조그만 무대가 있어 색소폰 기타 벤조 드럼 아코디언 등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가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이 캬바레에는 항상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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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너훈아, 추현미같은 모창 가수가 밤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모창가수와 댄서들이 등장한다. 사회자의 너스레를 빌자면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서 노래 연습을 하다 말고 달려왔다는 이탈리아 성악가의 오페라 아리아부터 몸집이 남산만한 미국 흑인의 가스펠송, 검정 그물 티셔츠에 검정 가죽바지를 입은 호모가수의 보이조지 모창, 터키에서 온 육감적인 댄서의 밸리 댄스, 리오 카니벌 복장을 한 브라질 아줌마의 삼바춤, 체 게바라 노래까지 레파토리는 그야말로 국제적이다. 밤 11시반에 시작한 공연은 새벽 6시까지 계속되고 신바람이 난 손님들이 모두 테이블위에 올라 춤을 추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고객의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 국적도 언어도 서로 다르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긴다는 공감대만으로 얼마든지 서로 어울리고 즐기는 유쾌한 곳이다.


‘론리 플라넷’이나 ‘세계를 가다’같은 여행책자에 파리의 명소로 소개된 ‘라팽 아질’은 30분 이상 앉아있으면 본전 생각이 나는 따분한 캬바레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라팽아질’에서는 어둔 실내에서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아저씨 아줌마들이 한물간 20세기 초의 샹송을 끝없이 불러댄다.


근대 프랑스 문화의 산실 살롱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국으로 건너와 의미가 더욱 심하게 변질된 말이 ‘살롱’이다. 살롱문화는 17~18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의 귀부인들이 정기적으로 자기 집 살롱(객실)을 문화계 인사들에게 개방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사조를 주제로 자유토론을 한데서 유래했다. 살롱문화는 프랑스가 유럽의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며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17세기에 탄생해 18세기에 근대 문학과 계몽주의의 꽃을 피웠다.


이 사교모임을 주재했던 이는 ‘마담’ 으로 불리는 귀부인으로 숱한 프랑스 한림원 회원들을 배출한 랑베르 부인의 살롱, 백과전서파의 실험실이라고 불렸던 레피나스부인의 살롱처럼 살롱마다 모이는 그룹이 달랐다. 프랑스의 살롱은 귀족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교클럽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기득권층과 신분의 벽을 넘어 토론을 벌이던 지성과 문화의 요람이었다. 작가 볼테르, ‘우화’를 남긴 라퐁텐,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 백과전서파 디드로 루소 달랑베르 등이 모두 살롱을 통해 재능을 발휘하고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귀부인들의 살롱은 19세기 들어 일반 대중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카페에 자리를 내주고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롱의 명맥은 실험적인 작가들이 모이는 ‘살롱 앵데팡당’, 봄에 열리는 ‘살롱 드 메’, 가을에 열리는 ‘살롱 도톤’같은 정기 미술전람회들이 이어가고 있다. 문인 학자들과 함께 미술가들도 살롱에 모여 미술작품을 감상, 비평한데서 정기 미술전람회란 살롱의 또 다른 의미가 탄생했다.


‘마담’이 모임을 이끈다는 것 말고는 한국의 룸살롱과 프랑스의 살롱은 닮은 데가 전혀 없는데 어쩌다 살롱은 한국에 와서 룸과 결합돼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뜻을 갖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실 마담도 한국에서는 특정 업소 종사자를 가리키지만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높임말로 쓰이고 있으니 용법도 전혀 다르다.


(룸)살롱에 명예회복을


지난번 국회위원 총선 후 모 정당의 당선자가 17대 국회 기간동안 룸살롱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는 호기심에서 룸살롱에 몇 번 가보니 종업원들이 한 두시간 일하고 몇 십만원씩 돈을 벌더라며 룸살롱은 노동 의욕과 윤리가 부정되고 불공평과 부도덕이 집약된 곳 같아 도덕성을 회복하고 가치 기준을 재정립하자는 의미에서 그런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점차 기업들이 고객들을 룸살롱에서 접대하는 대신 오페라나 콘서트 같은 문화 행사에 초대하는 쪽으로 접대문화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70~80년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화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룸살롱에서 외국 손님을 정성껏 모신 덕분에 올림픽같은 국제 행사를 유치하거나 굵직굵직한 계약을 따냈다는 등 전설같은 뒷얘기들이 입소문으로 전해져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룸살롱의 역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과도기 한 때의 이야기다. 한국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기득권의 영속화를 다지는 장소,정경유착과 권언유착의 산실, 부정부패와 지하경제의 온상... 룸살롱에 얹힌 온갖 오명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투명성 확보와 부정부패 일소란 이 시대의 과제는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접대문화의 개혁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늦은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퇴폐의 온상처럼 돼버린 캬바레와 살롱이 계층과 성별, 연령을 초월한 만남과 문화 교류의 장이란 본래 취지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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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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