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풍치가 제멋인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
여름 풍치가 제멋인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
  • 김철
  • 승인 201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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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김철】계절마다 운치와 색깔을 달리하는 소쇄원의 산책은 아무래도 여름이 제 멋이 아닌가 여겨진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새소리 흥겨운 봄과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든 가을이며 쓸쓸한 풍경의 겨울날 운치는 그것대로 멋이지만 여름비가 그친 뒤의 소쇄원 정원을 거닐어 봄은 어떨까. 짙은 녹음과 더불어 정원을 관통하는 계곡이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산수의 정취는 한마디로 청량하고 멋스럽기 이를 데 없다. 주인장이 거처했다는 날렵한 처마의 팔작지붕 기와건물 ‘제월당(霽月堂)’의 제월은 비가 갠 하늘의 밝은 달을 뜻하니 탐방을 해도 그런 날을 잡을 일인데 계곡물마저 마른 가문 날은 아무래도 아쉽다.

제월당 마루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전통정원은 궁궐을 비롯해 서원 사찰 주택 등에도 적잖이 남아있다. 이들 정원은 각기 나름대로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서 민간정원으로 소쇄원이 뭇사람의 발길을 유달리 많이 불러들이는 것은 인위적인 조경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정원의 계곡에서 볼 수 있듯이 원형의 자연미를 그대로 활용한 정원이라는 점이 아닌가 한다. 객을 위한 사랑방 구실을 했다는 ‘광풍각(光風閣)’의 여러 별칭 가운데 하나가 ‘계당(溪堂)’이라는 점도 애초부터 자연과 소통하기 수월한 계곡을 중시했음을 짐작케 한다.

광풍각

계곡을 이용한 고풍스런 기와지붕 흙돌담과 석축도 한참 동안 눈길을 붙잡는 볼거리이다. 계곡이 담장 밑을 통과하도록 설계한 것은 민간정원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라고 하겠다. 그만큼 소쇄원에서 계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정원의 조경수는 선비들이 좋아했다는 회화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등 수십 종을 헤아린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의미가 깃들어 있으니 소홀히 볼 게 아니다. 자연과 인위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동거하고 있는 대표적 조선시대의 민간정원이 소쇄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흙돌담과 석축

소쇄원의 명칭은 정원을 만든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됐다. 정원의 조성 시기는 조선 중기인 1520년대 후반에서 153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에서 명승으로 지정한 소쇄원은 양산보가 17세 되던 해 스승인 개혁 정치가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어 귀양살이를 하다 사약을 받고 죽자 그 충격으로 벼슬길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은 것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세속을 등지고 은둔하며 한평생 고고하게 살다간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소쇄원을 찾는 것이 좋다.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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