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4)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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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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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여배우의 길 / 유지형




(34) 야래향


[인터뷰365 유지형] “으악!”

월화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댄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공포에 질려 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는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 어두운 복도 건너편 객실에 문을 마구 두들긴다.

“도와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객실 문이 열리며 뚱뚱한 대머리의 중년사내가 얼굴만 내밀며

“뭐요?”

“저의 방에 커다란 쥐가 나타났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 여자 또 귀찮게 하는 군.”

안에서 앙칼진 여자의 소리가 들려온다.

“뭐에요?”

“앞방 여자가 또 찾아 왔어.”

“원, 미친 여자하군! 추워요. 어서 문 닫아요.”

월화는 놀라 새파래진 얼굴로 사과를 한다.

“미.. 미 안합니다.”

쥐는 못 잡아 줄망정 관심 있는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다.

“그깟 쥐 정도 가지고 어쩌란 말이요? 우리 방에도 쥐들이 운동회를 한 단 말이요.”

탕 문이 닫힌다. 이곳은 장기 투숙자들을 위한 싸구려 여인숙이다.

싸구려인 만큼 주인은 시설물 등 서비스엔 관심이 없고 쥐가 나오든 닭이 나오든 신경을 안 쓴다. 주인은 매달 말 일 집세를 받으러 올 뿐 그때 애로사항을 이야기 해봐도 묵묵부답이고 여기서 살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투다.

이곳은 월세가 다른 곳에 비해 쌀뿐더러 근처 광저우나 쑤져우 등 지방에서 온 노동자들이 상하이로 몰려 빈 방이 없을 정도이니 살기 싫으면 언제든 나가라는 식인 것이다.

월화는 울상이 되어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마냥 서성인다. 복도 저편 깨진 유리창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손도 발도 귀 끝까지 다 시리다. 그래도 쥐가 있는 방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 가 있는 거지?”

기성은 벌써 사흘째나 들어오지 않았다. 밀린 집세를 구하러 나갔는데 통 소식이 없다. 지금까지 셀 수없는 가출이지만, 기성은 그 가출이 이젠 버릇이 되어 버렸는지 툭하면 사나흘씩 외박을 한다.

월화와 기성이 이곳 상하이에 온지도 벌써 반년이 훨씬 지나 곧 춘절이 다가오며 곧 한 해가 바뀌는 추운 겨울이다. 월화는 복도 구석에 서서 오싹한 추위를 느끼며 몸을 움츠린다. 집안에 있는 개털코트라도 가지고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 코트는 프랑스 조계에서 맞춘 양장들을 전당포에 맞기고 그곳에서 구한 겨울용 코트이다. 들어가 개털코트라도 가지고 나와야 떨지 않고 외출도 할 수 있다.

마침, 춘래가 찾아 주었다. 춘래는 손에 가득 식료품 봉투를 들고 또 한손에 커다란 쥐틀을 들고 있다. 저번에 찾아 왔을 때 쥐가 출몰한다는 사실을 실제 목격하더니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쥐틀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또 쥐들 때문에 나와 있는 거요?”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바로 쥐예요.”

“이제 걱정 말아요. 이 쥐틀 하나면 쥐를 잡을 수 있으니까.”

“쥐틀에 끼어 죽은 쥐는 더 무서워요?”

“그건 기성 군보고 치워 달라고 해요.”

“벌써 며칠째 나가서 소식도 없는걸요.”

기성이가 며칠 째 집을 나간 사실에 춘래는 뭔가 알고 있는 듯 한 기색을 감추더니

“잠시 기다리시오. 내가 쥐틀을 설치하고 나올 테니까.”

일단 월화를 안심시키고 쥐틀을 들고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올 때, 제 코트를 갖고 나오세요.”

차마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월화는 복도에 선채 떨고 서 있을 참이다.

잠시 후, 춘래는 개털코트를 들고 나선다.

“배가 고플 텐데 식당에 가서 뭘 좀 먹겠소?”

월화는 춘래의 손에 들린 개털코트를 받아 들고

“늦었어요. 출근해야 해요.”

“출근이라뇨?”

“카바레에 댄서로 취직 했어요.”

“댄서라면 춤을 추는 직업 말이요?”

춘래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월화를 바라본다.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잖아요. 집세도 밀리고.”

그 말에 춘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월화는 여러 영화사를 찾아 다녔다. 인터뷰도 하고 카메라 테스트도 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영화출연은 성사 되지 않았다. 제작부장들이나 조감독들은 처음엔 월화의 출현을 반가워하며 이국적 마스크라니 중국배우들에 비해 연기가 자연스럽다느니 입에 침이 튀도록 칭찬을 하다가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모른 척 외면을 하고 만다.

더욱이 눈썹화장을 삼십분씩이나 하는 조선의 여배우라는 별명은 늘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기성이 그 이유를 알아내었다. 그런데도 기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월화가 추궁하자 기성은 마지못한 듯 그 이유를 말한다.

“뙈놈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아슈? 바로 돈이요. 돈이면 오늘 당장 없던 영화도 만들어지고 다 결정된 주인공도 바꿔치기 할 수 있다고요.”

“어쩜 그럴 수가..?”

“왜 명성영화사의 왕부장이 촬영장에서 우리는 푸대접 했는지 아슈? 바로 돈봉투를 찔러주지 않았기 때문이요.”

“이런 더럽고 치사한 중국 놈들!”

“그러니 짱골라 소리를 듣는 거지.”

기성은 짱꼴라처럼 퇴! 하고 침까지 뺏어댄다.

“왜 그걸 이제 말해 주는 거야?”

“우리는 돈이 다 떨어지지 않았소. 내가 경찰에 잡혀 가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탄식하는 기성이다.

“정말 돈 만 있다면 주연 자리를 따낼 수 있는 거야?”

“누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불길한 예감에 기성은 월화를 노려본다.

그간 월화는 낮이면 커피바에 나가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만큼 생활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곳 커피바에 제법 귀엽게 생긴 메이라는 아가씨가 은근히 월화를 부추겼다.

“언니! 바로 이 건물 위층에 카바레를 개업 했어. 난 오후에 그곳에 가서 일하는데 수입이 꽤 된 다우. 부자손님을 만나면 팁도 많이 받고. ”

그날 밤부터 월화는 카바레로 나갔다. 이곳 상하이까지 와서 뭔들 못 할 것인가? 배우만 된다면... 유명한 배우가 되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간다 해도 누가 나를 카바레의 댄서 노릇을 한 것을 알 것인가? 어차피 춤을 추는 것뿐인데?

극구 나를 말리는 기성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춤을 춘단다. 물론 즐거울 때 추는 게 춤이지만 말이야.”

시범으로 기성을 잡고 춤을 추었다. 기성은 말없이 내 춤의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그러더니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오늘도 중국식 카바레에는 붉은색 조명과 푸른색 조명이 무대 천정에 보름달처럼 매달린 일류미네이션의 반사광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돌아가고 있다. 무대 위에는 몸에 착 달라붙은 황금빛 치파우를 입은 여가수가 초생달 모양의 마이크 앞에 선채 개미허리 같은 몸을 비꼬며 코맹맹이 소리로 흥에 겨운 듯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른다.

“남풍이 불어와 시원한데

저 소쩍새 울음소리 처량하구나.

달빛아래 꽃들은 꿈속에 들었는데

아직도 저 아래향만 남아 꽃향기를 내 품고 있네.

예라이샹 나는 너를 노래한다.

예라이샹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예라이샹 예라이샹 에라이샹.”

경성에서도 카페나 축음기를 통해 자주 들어 귀에 익숙한 야래향이라는 노래이다. 후로아를 누비며 춤을 추는 월화는 마치 그 율동과 몸짓이 바람에 손짓하는 세류처럼 간드러진다. 오늘의 상대는 북경에서 온 비단 도매업을 하는 뚱뚱보 남자이다. 어떻게든 이 남자를 잘 꼬여 팁을 두둑이 받아 내야 한다. 그래야 밀린 집세며, 생필품을 살 수 있다. 월화는 뚱보사내의 품에 찰싹 안기며 고혹적인 미소를 잃지 않는다. 뚱보사내도 그런 월화가 맘에 드는 듯 만족한 표정이다. 춤이 끝나고 뚱보사내는 월화를 위해 고급 삼페인과 값비싼 첸차이(전채)요리를 주문했다. 월화가 무척 맘에 든 모양이다.

“무척 춤을 잘 추시던데요?”

월화가 치켜세우자 그 뚱보는 손을 훼훼 내 저으며

“꾸냥의 춤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요.”

“저도 미남자와 춤을 추게 되어 영광이네요.”

이건 순전히 팁을 많이 타내려는 월화의 수작이다.

그런 월화의 마음이 적중 하였는지 사내는 팁이라며 십 원(元))짜리 은원권(銀圓券)을 주었다.

“와!”

팁으로 은원권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그날 밤 여러 명의 사내와 춤을 추었다.

모두 받은 팁이 십 오 원이나 되었다. 오늘은 정말 재수가 좋은 날이다.

이 돈이면 밀린 집세는 해결 되었다. ‘아! 언제 돈을 모아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까?’

월화는 빛조차 없는 어둠의 바다를 항해하듯 여인숙으로 향하는 밤거리를 걷는다. 오늘 따라 밤하늘의 별들이 잔치라도 하듯 빛나고 있다. 그런 수많은 별들 중에 유독 큰 별 하나가 추락하고 있다. 월화는 그 별이 절대 문성별이 아닐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설사 저별이 문성별이라 해도 아직은 내 사주에 빛나고 있는 문성별이 세 개가 남아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더욱이 지금은 문성별 따위의 별이나 세고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의 그림자 곁에 기성의 그림자가 함께 걷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외롭고 허전할 뿐이다.

‘도대체 녀석은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월화는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여인숙에 도착했다. 여인숙 문 앞에는 춘래가 어둡고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다.

월화는 웃으며 그런 춘래 앞에 다가섰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만나네요!”

이 말은 중국 속담에 ‘하루에도 자주 만나면 더욱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갈 때가 있소.”

분명 어두운 춘래의 표정과 말투에서 월화는 불길한 회오리가 빈 위장 속에 공복감처럼 밀려 왔다.

“무슨 일 있어요?”

“기성이 죽었소.”

“......?”

아무리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지만 기성이가 죽다니? 기껏해야 또 대마초나 피우다가 걸려 경찰서에 잡혀간 정도 이겼지 라고 상상했었는데 월화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다시 춘래에게 묻는다.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춘래는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고 월화를 태웠다.

“상해공생병원으로 갑시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잘 모르지만 아편밀매에 관련되었다가 죽음을 당한 게 분명하오. 경찰도 그렇게 말했지만 워낙 이런 사건이 많이 일어나니까 수사는 흐지부지 될 것 같아요.”

공생병원은 한참을 가야 있었다. 춘래는 정문으로 가지 않고 후문으로 월화를 데려갔다. 후문 가까운 곳에 외따로 한 채의 어둡고 칙칙한 건물이 보이었다.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자 더럽고 불결한 느낌이 엄습했다. 구역질 날 것 같은 오물냄새는 지린내 같기도 하고 짠 바다 냄새 같기도 했다. 함께 실내를 부유하던 더러운 세균이 몸에 달라붙어 금방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듯 가려움증으로 온몸이 근질거렸다. 그런 불쾌감을 참으며 건물의 희미한 빛을 따라 복도를 꺾어 내려가자 그곳은 제법 넓은 공간의 시체실이었다.

희미한 벌거숭이 전등 불빛 아래 다섯 구의 시체가 나무침대위에 땡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구역질나는 냄새는 방부처리를 하지 않고 며칠째 방치한 시체들에서 나는 냄새가 분명했다. 월화는 구역질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렇다고 손이나 수건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았다.

다섯 구의 시체 중에 주인을 찾은 시체는 단 한 구뿐이었다. 한 늙은 남자의 시신 앞에 쭈그렁 할멈이 마른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할멈은 늙은 남자의 시신의 양쪽 맨발을 열심히 주무르고 있다. 그 맨발은 유난히 크고 검고 두터웠다. 할멈은 작은 소리로 혼자 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영감이우. 평생을 인력거를 끌었는데 오늘 사고가 낫지 뭐유. 앞에서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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