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0)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0)
  • 유지형
  • 승인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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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여배우의 길 / 유지형




(30) 환각


[인터뷰365 유지형] 다음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월화는 깨어나기 싫은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젯밤 광란의 파티를 하던 거실 소파 위에 있었다.

그 곁에 알몸의 기성이 털북숭이의 알몸을 드려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기성의 곁에는 역시 벌거벗은 계집애 하나가 사타구니에 수북한 거웃을 내 보인 채 잠이 들어 있고 또 그 곁에도 사내가 뒤엉켜 있고 또 계집애가 있는 그런 식이었다.

‘내가 이 어린것들 하고 무슨 짓을 한 거지?’

월화가 자신의 몸에 덮여 있는 담요를 제치니 다행히도 알몸은 아니었다.

월화가 잠이 깬 걸 알자 기성도 깨어났다. 아직도 졸린 듯 찡그리며 월화를 보더니 왈칵 그 품에 달려들듯 안겨 온다. 월화는 얼결에 화다닥 피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기성은 민망하다는 듯

“어젯밤엔 날 사랑한다더니만?”

“내가 그랬어?”

“이제 와서 웬 오리발이요.”

나 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기성의 입에서 직접 그 말을 들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건 그놈의 풀 때문이야. 참 이상하지? 지금도 혀가 꼬부라지네.”

그 대마초라는 것 참으로 이상한 풀이다. 술도 아닌 게 사람을 취하게 하고 이성을 잃게 하며 본성을 마비시키고 무책임한 행동을 낳게 했다.

어젯밤 월화는 호세를 유혹하는 카르멘이 되었고 요한의 목을 원하는 살로메가 되었다가 춘향이 되어 옥중가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또한 영겁의 처에 오르가가 되어 그것도 희곡이냐며? 마치 백남이 앞에 있는 것처럼 마구 삿대질을 해 대었다. 그리고는 식탁위에 놓인 복숭아를 허기진 듯 마구 먹어 대었다.

그런 월화의 변화무상한 행동에 녀석들은 환호의 박수를 보냈고 결국은 몽롱한 연기에 취해 어떻게 잠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책임지쇼. 이젠 누님은 나의 사랑하는 애인이 됐으니?”

“..............”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서로 원하는 두 존재가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아낌없이 주고받는 깊은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이 애송이는 마성의 향불 같은 연기에 취해 하룻밤 육체적 관계를 나눈 것에 불과한 사이를 사랑의 이름으로 월화를 묶어 놓으려고 한다. 어림없는 수작이다. 하지만 월화는 이 수작에 걸려들었다. 그것도 그녀 스스로 그가 쳐 놓은 거미줄에 걸려 든 것이다.

그 남자는 월화에게 있어 연하이다. 그런 그가 사랑의 행위를 몰아 갈 때는 그는 누구보다도 능숙했으며 자신감에 가득 찼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의 행위가 끝나면 금방 어린애가 되어 월화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만다.

“누나! 좋았소? 나도 좋았소. 근데 나 배 고프우.”

“그럼 우리 청요리 시켜 먹을까?”

“시켜 먹을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먹지 뭐?”

중국 요리 하면 우선 이응수가 떠오르고 탕수육과 함께 허벅지를 더듬던 그의 집요한 손길이 생각난다. 응수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보나마다 극단의 병아리 여배우를 꼬여 내어 중국 요릿집 어두운 구석방에서 탕수육을 사주며 그 음흉한 손길이 바쁘리라.

사실 기성은 그의 친구들처럼 부잣집 자식이 아니다. 그는 타고 나면서부터 고아였다. 그가 주장하는 윤씨라는 성은 그를 어려서 부터 키워준 마부 할아버지의 성씨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높은 신분의 자식들과 어울려 친구가 되었다.

특히, 그날 대마초 파티에 모인 녀석들은 모두 한가락 하는 가문의 자식들이었다. 경성부 판윤의 자식도 있고 재봉틀 회사의 사장의 자식과 유학자 집안의 손자도 있었다. 그 중, 활동사진 배우가 되겠다던 사치꼬 라는 계집애는 유명한 개인병원원장의 딸이었다.

그런 그가 그런 명문의 자식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잘 생긴 용모에다 늘 감각적인 멋진 행동 때문이다. 특히 소녀들에게 친절하고 기회의 시간을 절호의 찬스로 만드는 재주는 타고 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간혹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의 공허한 눈빛은 늘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더욱이 기성은 야생의 대마초가 어디에 얼마큼 심어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쉽게 말해, 그는 비싼 돈을 받고 대마초를 대주는 공급원이었다. 당시 세인들이 아는 상식으로는 대마초는 단지 대마를 키워 모시를 생산하는 농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꾼들은 그걸 향정신성 마약으로 사용한다. 그런 정보는 예로부터 사방천지를 떠도는 남사당패나 걸립패들에 의해서 은밀히 전해 내려오는 비전 같은 것 이었다. 누군가가 비싼 담배는 사필 수 없으니 이것저것 풀잎을 따다 피어 보다 이런 환상의 선물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중독성이 아닌 이 자연의 풀은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명약이었고 아직은 아편 등에 겁을 먹고 있는 기초 향락자들의 정신적 마취를 돕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월화 역시 기성을 통해 대마초를 피게 되고 그 대마의 위력에 나른한 심신을 빠트리고 만다.

무대 위의 갈채보다 더욱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주는 쾌락의 환상은 이제 월화의 삶에 최고의 반려 였고 기성 역시 최고의 남자이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이곳 별장에 모여 대마초의 환각파티를 즐긴다.

그래서 이들 모임의 이름도 ‘잘 나가는 새터데이 구락부’였다.

그날 이후, 월화도 이 클럽의 특별회원이 되었고 늘 기성과 함께 했다.

어느 극단에서 차기 작품을 하자는 약속이 있었지만 월화는 연락도 끊고 기성의 하숙방인 종로 뒷골목의 한 하숙집 쪽방에 문을 잠근 채 두 사람은 오로지 환각의 구름 위를 붕붕 떠 다녔다.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대마초에 취해 웃고 웃으며 세월을 한탄하고 세월을 용서 했다. 세월을 용서하니 사람도 용서되고 미움도 용서 되었다.

그 용서와 미움의 첫 대상은 당연히 백남 이었다.

“선생님은 잘 계실까? 소문에는 일본에 가셨다는데 고생은 하지 않으시련지?”

그러나 대마의 환상에서 깨어나면 마음속 밑바닥 가득 침전된 증오는 다시 살아난다.

또한 자신이 현재 활동사진를 찍지 못하는 원인이 모두 백남의 방해공작 때문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그걸 이기려고 다시 대마초를 피어 물면 이번엔 더 큰 증오가 엄습해 온다. 그런 대마의 환각은 그 증오마저도 달콤한 쾌락으로 이어 진다.

현재 백남은 영화 <심청전>의 흥행실패로 일본으로 떠난 지 몇 개월이 되었으나 소식이 없다고 했다. <운영전>의 흥행의 참패로 백남은 모든 책임을 지고 수석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배우와 스태프를 대동하고

“자! 서울로 가자! 그곳에서 우리들의 영화를 만들자!”

그렇게 큰 소리를 치며 조선키네마 사를 박차고 나온다. 조감독 이경손과 김형설, 나운규,주삼손,그리고 촬영기사 니시가와가 동조하여 이들은 경성으로 왔다. 황금정에 영화사를 차리고 <윤백남 프로덕션>라고는 간판을 내걸었다. 첫 작품으로 고전소설인 <심청전>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조감독 이경손이 이었다. 그만큼 <운영전>의 흥행실패가 백남의 감독활동에 장애를 가져 온 것도 사실이다. 심청 역에는 신인인 십칠 세의 최덕신이었고 심봉사 역은 <운영전>에서 단역을 하던 나운규 이었다. 그런데 <심청전>마저 흥행에 실패한다. 총 제작비는 천원 이었는데 그 반에 반 도 안 되는 적자를 내었다. 투자자들은 흥행에 실패할 경우 그 손해에 대한 원금을 값아 준다는 이면 계약서를 내 보이며 제작자 인 백남을 괴롭힌다.

결국 백남은 이 영화의 프린트를 한 벌 갖고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서 흥행을 하여 어떻게 본전이라도 찾아 볼 요량이었으나 백남이 일본으로 떠난 지 근 석 달이 넘는데도 통 소식이 없다. 영화판의 입방아들은 백남이 좌절하여 현해탄의 물속에 투신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여관방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는 괴 소문도 들려 올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서 종화가 올라 왔다. 종화는 아직도 부산에 남아 있었다. 종화도 백남을 따라 경성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그런 종화를 못 가게 막은 것은 감독 왕필렬이었다.

“윤감독이 사람들을 다 데리고 떠나려는 마당에 안 상 까지 가면 어쩌자는 거요? 제발 나를 생각해서 부산에 남아 주시오.”

통 사정을 하는 왕필렬과 그 뒤에는 파격적인 출연료를 인상한 나데도 있었다.

두 사람은 당분간이라도 남아 도와달라고 극구 종화의 경성 행을 막았다. 원래 사람이 좋은 종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채전과 함께 부산 키네마 사에 남아 <암로>와 <촌의 영웅>두 작품에 출연하게 된다. 결국, 두 영화는 흥행실패로 결국 부산 키네마 사는 도산하는 결과를 낳고 종화도 경성으로 올라온다.

경성으로 올라오자마자 곧바로 극단으로 연습하는 월화를 찾아 왔다.

과거 연극을 같이 했던 몇몇 배우들이 종화의 얼굴을 알아보고

“바쁘신 활동사진 배우께서 어인 행차이신가?”

“이 기회에 사인이라도 한 장 받아 놔 야겠어.”

농담들을 하며 종화를 반긴다. 그는 손에 들고 온 봉지 가득한 엿을 배우들에게 나누어 주며

“이 시간이면 출출할 때라는 걸 알고 내가 울릉도 호박엿을 사왔지. 먹기 싫은 사람은 먹지 말고..”

단원들은 마침 배가 고픈 차에 모두들 종화에게 몰려든다.

영화판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밌게 하며 그들의 귀와 입을 즐겁게 한 후, 종화는 슬그머니 땀을 닦고 있는 월화에게 다가와

“다 죽어 가는 줄 알았더니 말짱하네.”

그 말에 월화는 발딱 반응하며

“죽긴 내가 왜 죽어? 그까짓 활동사진 못 찍어 내가 죽을 줄 안 모양이지?”

독이 오른 뱀처럼 반응하는 월화의 행동에 종화는 잠시 당황하더니만

“내 딴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푹 떨어뜨린다. 연습이 끝난 밤늦은 시간까지 종화는 월화를 기다려 주었다. 두 사람은 종로의 한 술집 구석진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종화야! 너 나한테 장가오지 않을래?”

따뜻한 정종 잔을 들이키려던 종화는 화들짝 놀라 술을 쏟으며 월화를 쳐다본다.

“왜 그래? 너는 총각 나는 처녀... 뭐 나야 기스(상처)가 난 처녀긴 하지만..”

월화는 뻔뻔스럽게도 종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물론 술이 취해서 한 행동이 분명했다. 그 말에 종화는 부끄러운 듯 상기된 얼굴로 월화의 얼굴을 물끄러미 처다 보더니

“월화야! 너 취했구나?”

“바보..!얼른 말 해봐? 너 아니래도 나 시집 갈대는 많으니까.”

“난 말이야. 장가 안가!”

"이런 니가 고자냐? 장가를 안 가게?”

“설사 장가를 간다 해도 난 나보다 못난 여자한테 갈테야. 월화 너는 나보다 잘 났으니 더 잘난 남자를 만나야지 안 그러냐?”

그래도 이런 말이 나오리라곤 생각 못 했다. 물론 시집 장가 이야기는 술에 취해 한 농담이다. 농담에도 뼈가 있고 그 속에 진담이 있다. 두 사람은 이미 몇 년 전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의 보살핌과 도움 속에 월화는 여배우로 성장 할 수도 있었다. 그런 고마움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은 이미 과년한 남자와 여자이다. 그런데 종화가 이런 식으로 이 문제를 피해 간다. 당연히 착하고 순진한 그이기에 이런 답변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월화는 왠지 억울하고 섭섭하다.

“나 실은 시집 보다고 활동사진을 찍고 싶어! 어떻게 나 좀 도와 줄 수 없을까?”

“역시!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했지?”

“나운규 감독 영화면 더 좋고?”

“허... 아직 소문을 못 들은 모양인데 나운규 그 작자 이제 팔 난봉꾼이 되어서 여배우들을 제 첩 다루듯 한다더군. 월화도 그 작자 첩이 되고 싶은가 보지?”

“그 추물이 출세 좀 했다고 꼴값하네.”

세간에 조선영화는 두 가지 부류로 불리 운다. 나운규의 작품은 영화이고 그 다른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는 활동사진으로 불린다. 그만큼 나운규의 영화가 관객의 호응도는 물론 예술 영화로 인식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조선의 영화계는 그의 손 안에 있으니 돈도 명예도 또 한 여색 인들 오죽하랴?

결국 종화의 만남은 활동사진을 찍고 싶다는 월화의 넋두리로 끝나고

“그럼 내가 한번 알아볼게.”

힘주어 자신감을 보이던 종화는 요즘 어디서 뭐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

월화와 기성은 중국 요릿집에 간다는 게 인천까지 가고 말았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공화춘에서 만들어낸 자장면이란 싸구려 음식이 재일로 맛이 있단다. 자장면을 먹는 핑계로 인천까지 왔으니 항구에 있는 예전 집시 언니가 하는 카페까지 가 보았지만, 장소는 횟집으로 바뀌고 문도 닫은 지 오래 되었단다. 아마, 이곳에서 낮선 뱃사람에게 실연을 당하고 또 어디론가 정처 없이 어디론가 떠난 게 분명했다.

월화는 기성과 나란히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 부두에 오고 가는 배들을 바라본다.

“저 배를 타고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어.”

그러자 기성은 월화를 뚫어지게 보며 간절하게 말한다.

“누님 우리 상하이로 갑시다.”

“상해?”

“상하이는 바로 중국 영화의 중심지예요! 더 이상 누님을 알아주지 않는 조선영화계에서 뭘 더 바란단 말이요?”

월화가 대마의 환각에 빠져 있을 때 하는 넋두리를 들었나 보다.

백남을 원망하고 종화를 기다리고 또 다른 영화의 감독과 제작자를 막연히 너무도 간절하게 기다리는 그녀가 기성은 안타까운 모양이다.

“상하이로 가면 활동사진에 출연 할 수 있을까?”

“있을까 마다라니? 곧 누님은 상하이 영화계를 주름 잡는 대 스타가 될 거요.”

“그럼 넌 상하이에 가서 뭘 하니?”

“난 그저 누님의 샤프롱이나 하면서.. 그럭 저럭.”

“그곳에 가서도 대마초나 피우겠다는 거냐? 야! 너도 꿈을 갖아라! 그만한 인물에 배우가 된다던가?”

“난 배우는 싫소! 굳이 영화계에 들어간다면 난 감독이나 카메라맨이 되고 싶어.”

“그것도 멋있겠다! 그래 너 감독해라! 네가 감독한 작품에 내가 주연여배우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니?”

감독 윤기성에 주연 여배우 이 월화!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월화는 끝없이 펼쳐진 저 푸른 바다를 보며 공상이지만 백남을 닮은 작은 윤 감독의 탄생을 꿈꾸었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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