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6)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6)
  • 유지형
  • 승인 200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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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여배우의 길 / 유지형




(26) 봉절


[인터뷰365 유지형] 어느 덧 해가 바뀌어 1925년이 되었다. 이번 해의 첫 개봉영화로는 윤백남감독의 안종화, 김우연 주연의 <운영전>이 단성사 극장에 개봉 되었다. 정확히 1월17일 날씨마저 소한과 대한 사이의 혹한이 맹위를 떨치는 무척 추운 날 이었다.

더욱이 흥행은 참패, 극장 안은 썰렁해서 추위를 피하려고 피어 놓은 난로위에 숫값이 아까울 정도로 관객이 없었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평객 윤용갑의 영화평이 이 영화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작품의 스토리가 수백 년 전의 수성궁 비사로 조선적이고 우리의 정서가 넘쳐흐르는 옛 소설을 개작해서 영화화한 윤백남의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촬영기사의 기술부족으로 말미암아 영화의 반 이상이 헛되이 되고 말았음이 애석하다. 또 한 배우의 표정은 물론이고 얼굴형상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객들에게 간질간질함을 지나쳐 짜증나게 한다. 더욱이 주연인 김우연 양은 그 용모가 활동사진을 박기에는 적절치 못 한 얼굴이었고 대신 소옥 역을 맡은 이채전 양의 연기가 더욱 신선하고 좋았다.’

흥행이 참패되자 당황한건 제작자인 나데고, 왕필렬이며, 안종화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부담은 감독인 백남에게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이었다. 기획 단계부터 이월화와 김우연의 두 여배우의 배역 다툼으로 시끄러웠고 감독과 여배우와의 스캔들도 뒤따랐다.

사실 백남이 김우연을 만나 이 영화에 출연시키게 된 건 우연스런 경우이다. 그가 한 극단에 연극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설희를 만났다. 설희는 민중극단을 떠나 다른 극단을 전전하며 겨우 조역이나 하는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설희가 백남을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원망과 하소연을 쏟아 내었다.

“전 선생님을 존경하고 믿었어요. 그런데 왜 제가 아니고 정숙이 이었나요?

그 여자가 지금 얼마나 선생님을 욕 먹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으세요.”

그 말에 백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에 연락을 하마. 열심히 하렴.”

이런 미지 뜨근한 말과 함께 그녀와 헤어진다. 그런데 <운영전>이 기획되고 백남이 여배우를 찾는 일에 고심하자 남배우인 송해천이 연락을 해왔다.

송해천은 그날 울고 있던 설희를 곁에서 지켜보던 민중극단부터의 고참 배우이다.

“윤감독! 신인여배우를 찾는다는데 뭘 멀리서 찾소? 설희가 있지 않소. 내가 보니 젊은 아이가 아주 그 행동거지가 옹골지고 단단합디다. 그 월화인가 뭔가 하는 바람난 계집애와는 근본부터가 틀려요. 분명 윤 감독을 배신하거나 실망 시키지 않을 거요.”

이 한마디에 백남은 설희를 <운영전>의 주연 여배우로 결정한다. 그만큼 월화의 행동에 실망이 켰던 백남 이었다.

영화사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부산에 도착한 설희에게 백남은 은막의 새로운 이름으로 눈 설을 비 우(雨)로 바꾸고 희를 제비 연(燕)자로 바꿔 우연이라고 지어 준다. 이제 김우연은 악연의 라이벌 이월화를 물리치고, 새로운 영화의 주연 여배우가 되었다. 월화가 눈물을 떨구며 경성 행 밤기차에 몸을 실어 떠난 후 백남은 이제 우연의 독차지가 되었다.

여관의 옆방에서 함께 기숙하는 우연은 백남의 수발과 식사문제는 물론 세숫물까지 대령하는 등, 백남에 대해 헌신적이다. 백남도 그런 우연의 행동이 거북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행동은 더욱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하다못해 늦은 밤, 백남이 촬영콘티 작업에 골몰하는 시간에 옆방인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 모퉁이에 쪼그려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연민과 동정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겨우 눕혀 베개를 고여 주고 이불을 덮어 줄 량이면 그녀는 잠꼬대를 하듯 뭐라 쫑알거리며 두 팔을 벌리며 백남에게 안겨 온다.

처음엔 그런 우연의 행동에 당황도 했지만 이젠 그런 그녀를 능숙하게 껴 안아주고 다시 눕혀 주는 행동에도 전혀 백남은 어색하지 않다.

왜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 젊은 여자를 밝히는지 회춘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이때 백남의 나이는 사십을 갓 넘은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였고 우연 역시 함빡 물 오른 여성으로 꽃피는 시절이었으니 한 여관에서 기거하던 두 남녀가 서로 이끌리는 감정에 도달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든 여자, 이런 경우에 여배우로 국한 하자면 여배우란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세인들의 선입견이다.

그렇듯 우연에게 있어서 월화라는 라이벌을 만나 그 그늘에 가리어져 있었지만 늘 자신이 미모나 연기실력으로 월화보다 위라고 자처했다. 단지 운이 없고 기회를 못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가 백남에게 다가서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 리가 없다. 그것은 여자라는 무기로 접근하는 방법뿐이었다. 우연은 그런 철저한 계산법으로 백남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그 유혹에 걸려든 백남 역시 고지식한 남자이다 보니, 자신의 도덕성과 윤리관은 어느덧 사라지고 결국 자신도 모르게 우연과의 불장난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말로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 였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이 스캔들을 까발린 건 백남과 민중극단을 함께 이끌어가던 이기세 였다. 그는 당시 매일신보의 편집국장이었다. 그런데 부산지국의 기자가 쓴 백남과 여배우 김우연과의 기사가 올라오자 그는 친구관계를 무시하고 특종이라며 감독과 여배우의 비밀스런 추문을 지상에 까발린다.

왜 연극동료이며 친구인 기세가 백남의 치명적 약점을 잡아 세상에 퍼트리며 비난의 화살을 쏘았을까? 그것도 기자를 수 차래나 촬영장과 숙소를 염탐하게 하고 ‘운영전 찍으며 윤백남감독과 김우연 양 연문!’ ‘감독과 여배우 사이가 이래서야?’ ‘촬영은 저리가고 로맨스만’ 자그마치 세 번씩이나 주먹만 한 활자체로 이런 식의 유치한 제목을 달고 마구 공격을 해댔으니 이로 말미암아 백남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게 된 것은 뻔한 일이었다. 허긴 백남과 기세는 같은 연극인으로 한 극단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성격적으로는 서로가 딴판이었다.

늘 자기보다 대가라고 자처하며 또한 각계의 신망과 부러움을 한 몸에 지니며 결국 활동사진 분야까지 개척해 나간 백남이 한낱 풋내기 여배우와 추문이나 일으킨다는 것에 대해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다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백남은 그 기사를 보고 그저 허허 웃으며

“이 친구 내가 영화를 찍는다니까 부러워 죽는 모양이구먼. 이런 질시와 모함은 우리 문화계에 고쳐야 할 안 좋은 습성이야.”

하며 대충 무시하고 넘어간다. 이런 사실에 당황스러운 건 영화사 쪽 사람들이다. 특히 사장인 나데와 왕필렬은 당장 여배우를 교체 할 것을 백남에게 요구한다.

이제 겨우 영화의 10%를 찍었을 뿐이니, 다시 경성에서 이월화를 불러오든 아니면 소옥 역을 맡은 채전을 운영으로 밀어붙여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그간 찍은 분량을 버릴 계산까지 한다. 그런 요구에도 백남은 요지부동 우연에 대한 한 걸음의 후퇴도 없이 지키고 감싼다. 이런 경우에 가장 난처한 것은 종화이다. 백남을 감독으로 적극 추천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처럼 자신에게 연극과 인생을 가르쳐준 대 스승인 백남 앞에 감히 뭐라 나설 수도 없는 종화가 아니던가?

이런 일로 결국 왕필렬과는 소원한 사이가 되어 버리고 이러저런 많은 우여곡절 끝에 <운영전>은 만들어 졌다. 그러나 그 성과에 비해 결실은 너무도 미약했다.

결국, 영화는 개봉 사흘 만에 극장에서 그 간판을 내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영화사 통계상의 적자는 2888원이었다. 당시 이천 원이란 경성에 웬만한 건물 한 채 값이 넘는 금액이었다.

월화는 <운영전>이 흥행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뛸 듯 기뻐했다.

지들이 그러면 그렇지 나를 제치고 만든 영화가 오죽하려고. 더욱이 도덕군자를 자처한 백남이 뭐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여배우와 어울리는 추태나 벌리고 그런 이중인격의 위선으로 자신을 나무란 저의에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우연이란 계집애랑 이제 영원히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낙인이 찍혀 저 삼류보다 못한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리라고...’

저주와 동시에 얼마나 통쾌하고 신이 났는지 모른다.

<운영전>을 마무리하며 꼭 해둘 말이 있다. 이 영화에 한 괴물 사내가 등장한다. 그 사내는 그야말로 작은 키에 검은 얼굴의 추물로, 그 얼굴로 배우를 하겠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괴기하게 생긴 얼굴이다.

그 사내가 맡은 역은 가마꾼 역으로 운영을 태운 가마를 매고 와서 어둠속에 대령했다가 장기를 한판 둔 다음,

“이봐 가마꾼!”

하고 부르면 졸음에 겨워 하품과 더불어 눈을 비비면서 “네이!” 대답하고 다시 운영을 가마에 태워 달려가는 단역에 지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의 출연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얼마 후 조선영화를 경천동지할 광풍으로 몰고 갈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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