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2)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2)
  • 유지형
  • 승인 20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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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22) 메가폰


[인터뷰365 유지형] <해의 비곡>이 전국 극장 흥행에 성공하자 조선 키네마 사는 곧 바로 다음영화의 기획에 착수한다. 한낮 총포상이나 하던 나데는 이제 거물 영화 제작가가 되었다. 그는 이참에 자신이 설립한 조선키네마 사가 일본의 동영이나 일활, 또는 송죽영화사처럼 대 메이커의 영화사로 발전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런 나데의 꿈에 부응하기 위해 돈푼께나 있는 동업자들이 모여 들고, 이제 영화사는 좁고 불편했던 총포상 이층에서 부산 중심가 복병산 기슭에 옛 러시아 공사관의 넓은 이층 양관의 단독건물을 얻어 주식회사 형태의 본격적인 영화사가 만들어 진다.

그동안 나데는 한낱 전주에 불과 했다. 모든 기획과 영화 전반에 관한 업무는 사실 감독 왕필렬의 손안에 있었다. 나데에게 처음으로 영화제작을 권유한 것도 왕필렬이었고 그 첫 영화로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다.

그러니 나데에게 있어서 왕감독은 업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귀하디귀한 귀인이다.

왕필렬은 두 번째 작품도 감독을 할 요량으로 조감독인 경손과 함께 자신의 개인사찰인 남천사에 파 묻혀 다음 시나리오 구상에 들어간다.

사실, 첫 번째 작품인 <해의 비곡>은 일본의 영화를 그대로 베껴온 모작이다.

그러니 이복 남매간의 금기시 된 사랑이야기가 주제가 되고 그런 정서는 다분히 일본문화의 한 영향이라는 악평을 듣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본격적인 조선인의 심성을 건드려 대박을 터트릴 작품을 써야 한다. 하지만 어디 명작의 탄생이 그리 쉬운 일이더냐?

왕감독과 경손은 솔솔 봄바람이 불어오는 주지실에 배를 깔고 누워 공연한 공상의 나래를 펼 칠 뿐이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기별도 없이 종화가 이 절을 찾아온다.

종화는 그동안 부산을 떠나 서울에 있었다. 그런 종화가 불쑥 주지실에 나타나자 다시 스님의 복색으로 돌아간 다카사가 종화를 반긴다.

“하하.. 대 배우께서 어인일로 빈도의 누추한 처소를 방문 하셨나이까?”

시종을 시켜 차를 대령하고 환영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경손도 그런 종화가 반갑다. 서울의 연극계의 경황과 흩어졌던 단원들의 소식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화의 표정은 뭔가 비장한 결심을 하고 온 것이 분명하다.

왕감독과 차를 마시던 종화는 대뜸 말을 꺼낸다.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약속이라뇨?”

왕감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다.

“몇 년 전 바로 이 방에서 스님이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셔야지요.”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던가요?”

“벌써 잊으셨습니까? 바로 백남 선생님한테 하신 말씀이십니다.”

“백남 선생? 아-아-”

왕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금방 기억해 낸다.

몇 년 전, 중앙극장 건립 모금 차 이곳 주지실을 찾아온 백남을 처음 본 순간, 승려 다카사는 백남의 얼굴에서 예사롭지 않은 예술적 기질을 감지한다.

그리고 곧 조선에도 영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언젠가 백남을 그 영상의 세계로 권유하리라는 약속을 하였다.

꼭 그런 다카사의 예언 때문은 아니지만 그 후 백남은 조선 최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날 함께 동행 했던 종화가 불쑥 찾아와 백남 선생에게 약속을 지키라니?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왕감독은 금방 종화의 말을 알아차린다.

“좋습니다. 이번 메가폰은 제가 양보를 하겠습니다. 조선키네마사의 두 번째 작품의 감독은 윤백남 감독님 이십니다.”

흔쾌한 결정을 내려준 왕감독이다.

그런 결정이 내리자 종화는 백남을 찾아 나선다. 당시 백남은 모든 예술 활동을 접고 서울을 떠나 경상도 김해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중앙무대에서 연극과 활동사진에 전념한 백남이 김해에서도 분성산 쪽으로 삼 십리나 더 들어가는 느름나무골이라는 산골마을에서 훈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가 왜 조선의 연극계와 영화계를 떠나 이 시골로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 서씨가 폐병에 걸려 요양을 해야 할 판국에 이른다. 그동안 유학이네 연극이네 더욱이 활동사진입네 하며 아내를 버려 둔 자책감에 백남은 이 산골오지의 보통학교의 교사직을 구한다. 이때 백남은 큰 딸도 병으로 잃어버리고 어린 남매를 두고 있었다.

그 어린 남매인 석오와 영숙이도 병약하여 잔병치례라 많았다. 이래저래 처자식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그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이다.

오늘도 백남은 아이들은 교실에 모아 놓고 국어를 겸한 역사교육을 가르친다. 그것은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은 것 이었다.

“그러자 을지문덕 장군이 ‘막아 놓은 강물을 열어라’ 하고 명령하자 병사들이 막아 놓은 물줄기를 터트리니 강물이 얕은 줄 알고 강을 건너던 수나라 군졸들이 산처럼 밀려오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날 살려라 소리치는 놈 둥둥 나무토막처럼 떠내려가는 놈 나뭇가지를 잡고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놈 무려 그 군졸이 삼십 오만 명이라.”

평소 조선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백남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살수대첩이며, 안시성의 전투며, 이순신의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외치며 최후를 마친 노량 해전 전투를 마치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하듯 표정을 짓는 백남의 모습은 어느 땐 을지문덕이요, 양만춘이요, 이순신 장군이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 눈을 빤짝이며 백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때론 주먹을 불끈 쥐고 분한 듯 눈물을 흘리고 통쾌한 듯 배를 잡고 책상을 두들기며 웃어 재낀다. 원래 화술도 뛰어나고 몸짓 섞은 재담에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 늘 좌중을 즐겁게 한 백남이었다.

교실 창 너머로 봄이 오는 개울물 소리가 평화롭다. 백남은 산골학교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 또 한 산골 마을의 교사 생활은 그동안 도시 생활에 지쳐 있던 백남을 정서적으로 많은 안식과 편안을 주었다. 더욱이 아내 서씨와 아이들도 이 산골 생활을 너무도 좋아한다. 백남은 이곳에서 농사나 지으며 처자식과 평생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갑자기 종화가 찾아 왔다. 서씨는 종화의 방문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백남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은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누추하고 작은 초가집이다. 툇마루위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앞에 서씨가 몇 가지 산나물을 무친 술상을 내왔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술을 마셔 보는군.”

그동안 방문자가 없었다는 뜻도 된다. 잘 익은 머루주가 몇 순배 돌아갔다.

백남이나 종화나 술을 잘 못했다. 백남이 먼저 입을 연다.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 왔는가?”

“선생님을 부산으로 모셔가려고 왔습니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엔 왜?”

백남은 그동안 세상사에 관심을 끊어 왔다. 더욱이 문화계를 비롯한 연극계와 특히 영화계의 정보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멀리 해 왔다. 그러니 종화의 근황에 대해서도 알 리가 없다.

“왜긴 왭니까? 활동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거지요?”

“뭐야? 부산에 가서 활동사진을 찍자고?”

“네.. 내일 저와 함께 떠날 준비를 하시지요.”

“이 사람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소식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활동사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부산으로 가보시면 다 알게 될 일이라니까요”

종화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모든 촬영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몸만 가셔셔 레디고만 부르시면 된다니까요.”

“.......”

백남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 만 젖고 있다.

“선생님은 이런 산골에 파 묻혀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당장이야 안빈낙도 할 수 있겠지만 미래를 생각 하십시오.”

“미래라면 내가 가리키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 있네.”

백남은 정말 산골 교사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방안에서 아이들을 재워 놓고 등잔불 곁에서 바느질을 하며 서씨는 두 사람의 말을 애써 안 들으려고 하나 방문 하나 사이로 들려오는 두 남자의 소리에 가슴이 콩닥 뛴다. 그러나 지금 남편은 부산으로 갈 뜻이 없는 듯싶다. 그녀는 늘 불안 했다. 이 산골생활의 소박한 행복이 늘 두려웠고 누군가가 이 행복을 뺏으러 오는 것 같아 늘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종화가 그 장본인으로 나타났다.

서울 생활에 남편의 심부름으로 종화가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를 매달 가져 다 주었다. 그럴 때면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용돈으로 제과점에서 달고 맛있는 양과자를 사와 아이들과 놀다 가곤 했다.

“제발 그냥 돌아가 줘요. 우리 가정의 행복을 뺏지 말고 그냥 돌아가 줘요.”

서씨는 맘속으로 그렇게 애원한다.

그럼에도 밖에서는 계속 단호하게 설득하는 종화의 소리가 들려온다.

“선생님은 조선 문화와 예술의 선두에 선 기수 이십니다. 기수란 깃발을 들고 맨 앞에 나선 사람을 말합니다. 그 깃발을 보고 많은 후학들이 뒤 따릅니다. 그런데 그 기수가 깃발을 꺾어 버리면 그 뒤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 입니까?”

백남은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연다.

“사흘만 말미를 주게.”

마치 빚쟁이에게 사정하는 말투이다.

그 말에 종화는 건넌방으로 건너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종화는 이른 새벽, 서씨가 깨어나기도 전에 이 집 싸리문을 조용히 열고 나선다. 차마 서씨와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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