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경' 이라는 묵직한 여배우
‘양미경' 이라는 묵직한 여배우
  • 김철
  • 승인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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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이와 김처선의 멘토, 양미경을 만나다 / 김철




[인터뷰365 김철] 양미경을 바라보면 겸허하고 정갈한 한국여인의 깨끗한 기품이 느껴진다. 아시아의 별로 뜨게 한 <대장금>의 한상궁 역은 이미지와 궁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캐릭터였다.<대장금>이 막을 내린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장금이(이영애)의 멘토(Mentor 조언자 또는 스승) 한상궁의 대박 인기는 홍콩을 포함한 중국, 일본, 몽골,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만 등지로 번져나가 아직도 나라안팎에서 화제가 식지 않고 있다. 인덕대 방송연예과 부교수로 영화연기를 가르치고 있는 그녀의 팬 카페에는 여전히 수천여명이 북적거린다. <대장금> 뮤지컬도 등장하고 관광 궁중 요리행사도 줄을 잇는다. 교육현장과 극중에서 스승으로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대장금>의 반응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녀는 한동안 잠잠하게 몸을 낮추고 지냈다. 이미지와 느낌 그대로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 , 아들 하나를 키우며 한 가정의 여자로 알뜰하고 평화롭게 살아온 양미경에게 한 편의 드라마가 행운과 함께 고통도 몰고 왔지만 그녀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현재 ‘정희왕후’ 로 출연중인 SBS드라마 <왕과 나>를 통해 양미경은 오랜만에 다시 사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멘토였듯이, 이번에는 내시 김처선(오만석)의 막강한 후원자이며, 여전한 궁내 권력투쟁 한 복판의 중심축이다. 남산의 한적한 호텔 커피숍에서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한 양미경은 시종 말을 애써 아꼈지만 미소는 아끼지 않았다.



아직도 <대장금> 드라마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한동안 눈에 띄는 활동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SBS-TV '왕과 나'에서 근엄한 대비(정희왕후)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장금>의 연장선에서 이미지를 다시 살린 배역 같은데 사극이 역시 몸에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왕과 나>의 캐릭터가 <대장금>때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배역의 성격과 비중에 차이가 있고 신분도 다르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극을 이끌어 가는 데 나의 비중이 크지 않다. 언제나 같은 생각이지만 역할의 비중보다 어떤 성격의 역할인지가 내게는 중요하고 소중하다. 비록 큰 역이 아니더라도 내 몸에 맞는 역이면 행복해진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매번 비슷한 분위기의 연기보다 변화를 원한다. <대장금>에서 못 다한 다른 모습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고심하고 있다. 연기자는 새 작품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과거보다 한걸음 진전된 성과를 얻어야하는데 솔직히 <대장금>의 부담이 아직도 너무 무겁다.


<왕과 나>에 출연하기 전까지 연기활동은 뜸했지만 드라마 관련 행사에 자주 자리를 함께 해왔다. 물론 국내외에서 밀려들어온 수많은 행사나 비즈니스와 관련된 사람들의 초청에 다 응할 수는 없었다. 처신이 쉽지는 않았지만 신중하게 보람 있는 일을 우선으로 해왔다. 수출 상담을 하는 바이어가 대화가 안 통할 때는 <대장금>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할 정도로 각국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마케팅에 드라마 이야기를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들었다. 동남아에서는 <대장금>을 식당 간판으로 내건 곳도 많다. 모두가 듣기 좋은 이야기 같아 즐겁다.


도대체 한 상궁의 인기 비결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는가.

한 상궁은 드라마 초기에 사라지는 역인데 중반까지 이어진 것은 시청자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진귀한 궁중음식의 비법을 소개한 게 웰빙 붐과 맞아떨어진 데다 바람직한 스승의 리더쉽을 제시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준 게 아닌가 본다. 도덕성을 지닌 정의파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되면서 불의 의 부도덕한 집단에 맞서는 것도 흥미를 유발시켰던 것 같다. 한 상궁이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최후를 마감하면서 시청자를 울린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어느 대학 교수가 논문을 통해 분석한 인기요인이 비교적 정확한 것 같다. 그리고 극중의 한 상궁의 성격이 실제의 나랑 비슷한 점도 크게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다. 흔들리지 않고 소신이 강하면서도 남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드라마와 관련해 가장 보람으로 느낀 일을 꼽는다면.

얼마 전 싱가포르의 한 여성 팬이 딸을 데리고 나를 찾아 온 적이 있다. 그냥 찾아온 게 아니다. 이 분을 처음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암으로 투병중인 분이셨다. 그런데 날 너무 만나고 싶어 하셨고, 만났더니 자기가 꼭 암을 이겨서 한국을 찾아오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그 분이 오신거다. 암을 이기고. 손수 정성스레 구운 쿠키를 선물로 갖고 왔더라. 팬으로부터 받은 어떤 선물보다 나로서는 감동적이었다. 지금도 국내외 팬들로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팬 카페 회원이 1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었다. 세월이 가도 한 상궁에 대한 국내외 팬들의 관심이 식지 않았음은 팬 카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금이를 가르친 인자한 스승으로서 한 상궁의 역할 이 팬들에게 깊이 각인된 때문이라고 본다.


<대장금>이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로인해 힘든 일이 있었다면.

사실 한때 연기생활을 접으려 심각하게 고민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연기자로서 삶의 비중이 너무 무거워 지고 가족과 주위가 함께 부담을 느끼는 게 싫었다. 회의를 느낀 일도 있었던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공인으로서 한계를 느낀 것도 있고... 그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주신 분이 연출가 선생님이다. 그래서 용기를 갖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힘든 고비를 잘 넘겨 다행이다. 그래서 예부터 좋은 일 뒤에는 힘든 일도 따른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신의 성격도 차분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언제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나를 낮추며 평온하게 행동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여자의 마음은 남자보다 더 인내심이 강하고 포용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기자라는 직업은 인기에 따라 생활의 변화가 심하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같다. 감당하기 어렵고 참기 힘든 경우도 마주친다. 언제나 평온하게 살고 싶다. 동요가 생겨도 차분해지려고 최선을 다한다.




드라마를 통해 나를 알고 있는 분들은 표정이나 이미지가 단아하고 엄숙하다거나 내성적이라 는 말을 비교적 많이 한다. 실제 성격적으로 미혼일 때는 소극적인 데다 말수가 적어 촬영장에서도 연기를 하는 것 외에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수가 많았다. 물론 결혼을 하고 중년이 되면서 남들처럼 수다도 떨고 할 말은 다하고 지나가지만.


그녀의 연기생활은 올해로써 24년째다. 지난 84년 주위의 권유로 KBS 공채 탤런트 모집에 응시, 합격한 뒤 그해 주말 드라마 <미망인>에서 대사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로 출연한 것이 연기자로서 첫 데뷔 무대였다. 이후 그녀는 TV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출연, 배우로서도 활동영역을 넓히는 등 연기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탤런트 양미경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흔히 말하는 단아한 미만 갖춘 게 아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부터가 남다르다. 어질고 온화하면서도 자녀에게는 엄한 우리네의 전통적 어머니상은 물론 순종의 미덕을 갖춘 효녀와 열녀의 고전적 여인상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조각품 같은 인위적인 미가 아닌 모나지 않은 호감형의 외모를 지녔다는 것도 그녀의 강점이다. 현대극과 사극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농익은 중년의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한눈팔지 않고 연기에 전념할 수 있는 타고 난 성품과 주변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가 인기 스타이기 이전에 그림과 시와 수필을 좋아하는 등 예술에 관심이 많고 학창시절부터 수화를 배우고 복지시설을 드나드는 등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82년 숭의여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훗날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녀의 어릴 때 꿈은 섬마을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파도와 갈매기를 벗 삼아 고요한 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심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말수가 적은 감상적인 성격이다 보니 자연 시와 그림을 좋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그의 꿈은 장소와 대상인 피교육자만 바뀌었을 뿐이지 드라마와 대학 강단을 통해 현실화가 됐으니 빗나간 것은 아닌 셈이다.


그동안 그녀는 두 권의 책을 냈다. 자신이 애송하는 저명 시인의 시 60편을 골라 감상문을 곁들여 엮은 시집 ‘양미경의 가슴으로 읽는 시’와 수필집 ‘당신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이 그것이다. 그녀의 인생관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궁금하다.
아버지(양상우, 77)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하는 게 옳다. 국가유공자인 아버지는 한국동란에 참전, 한쪽 다리에 중상을 입은 역전의 해병대 용사다. 조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가장으로서 모범을 보인 아버지를 생각하면 비록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나름대로 이웃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학창시절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홍보대사를 맡은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성품이 자상하면서 꼼꼼한 아버지를 통해 어릴 때부터 삶과 같은 사이클인 계절의 변화와 연민의 정을 동시에 느끼면서 자랐다. 아버지께서 풀을 쑤어 창호지를 바르면 가을이 깊은 줄 알았고 어느 새 연탄난로를 수리하면 겨울이 온 줄 알았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어릴 때의 어머니는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하실 뿐 통 말씀이 없었다. 자상한 아버지와 과묵한 어머니를 반반씩 닮은 게 아닌가 싶다. 눈을 비롯해 외모는 어머니를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몽골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원래 가톨릭 신자다(세례명 엘리사벳).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봉사단원들과 함께 다녀왔다.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청소년 센터에서 벽돌을 만드는 등 환경 개선 사업과 문화교류를 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그곳 청소년들이 단번에 한 상궁을 알아보고 무척 반기더라.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친교 활동을 통해 그들에게 작은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이 아닌가.


연기생활의 바쁜 와중에 시집을 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시절(창덕여고)부터 시를 가까이 한 것이 도움이 됐다. 요절한 시인 이상의 날개를 읽은 뒤 생사의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시는 바쁠수록 나를 찾게 해 주는 등불이나 다름 아니다. 틈틈이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시들을 접할 때마다 그에 대한 단상을 기록했다. 녹화를 위해 이동 중이거나 여행 중일 때도 시집을 펼쳐 들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평소 시에 대한 감상을 곁들인 글을 잡지에 기고하는 등 문학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도 신문에 소개되는 시를 보면 스크랩을 한다. 시가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차가운 가슴을 따스하게 녹이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시를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집 가운데서 가장 애송하는 시는?

정채봉의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지’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 박목월의 ‘가정’ 을 비롯 이해인의 ‘말을 위한 기도’ 등 수록된 시는 모두 애송하지만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박노해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다시’라는 시가 눈길을 끈다. 시가 거칠면서도 호소력이 있고 시에 담긴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부부금슬이 좋다고 소문났다. 그럼 부부싸움은 여태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것 같은데.

아니다. 부부싸움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웃음) 비 온 뒤에 땅 굳어진다고 누구나 있을 수 있는 부부싸움이 오히려 부부간의 애정을 굳게 다지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애가 크다보니(현재 고3) 부부싸움도 저절로 없어지더라. 부부싸움과 관련, 결혼하는 후배한테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마음과 눈높이를 맞추고 사는 데 10년이 걸렸다고,(웃음)


결혼은 어떻게 했는가. 연출가인 남편의 도움이 연기생활에 큰 보탬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KBS PD였던 지금의 남편(허성룡 53, 국회방송 사장)과 88년에 우연히 인연이 되어 연애 결혼을 했다. 당시 극중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있어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다 강물에 빠졌는데 이때 나를 건져 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연기자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떠나 연출가와 연기자. 시청자와 연기자로서 서로 많은 조언을 하는 등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신인 같은 기분으로 일한다. 늘 긴장되고 대본연습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


한 상궁으로서 극중 경험을 바탕으로 궁중요리에 일가견이 있을 법도 한데 집에서 진귀한 요리를 재현할 때도 있는가. 평소 집에서는 무얼로 소일하는가.

그렇지 않다.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평범한 식단이다. 나와 가족들이 즐기는 요리는 두부전골과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고작이다. 그런 요리라면 자신 있다. 시간이 있을 때는 뜨개질이나 퀼트 그리고 리폼으로 소일할 때가 많다. 팬들을 위해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번 중국에서 팬이 왔을 때 인형을 선물했더니 그렇게 기뻐하더라.


좌우명이 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기업가 잭 웰치가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는 “현재가 선물이다(present is present)"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이므로 후회해 봤자 부질없는 짓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 불투명하므로 근심 걱정을 한들 어리석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는 시간도 모자라는 판인데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야 없지 않겠나.


앞으로 꿈이 있다면.

특별한 욕심이 없다. 그저 주어진 일에 만족하고 묵묵히 살아가는게 희망이다. 20년을 넘게 연기생활을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골고루 배역을 맡아 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욕심낼 만한 배역도 없다. 다만 연기생활 외에 미력하지만 이웃을 위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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