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5)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5)
  • 유지형
  • 승인 200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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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15) 꿈


[인터뷰365 유지형] “월화야! 달 놀이 가자.”

“네..! 선생님!”

월화는 백남을 따라 밤길을 나섰다. 여기가 어디인지 생전 처음 와 본 곳이다.

더욱이 사방은 온통 빛이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월화는 주위를 둘러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땅도 하늘도 깊은 더욱 어둠이다. 달도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 달이 안 떴어요.”

“그래! 그럼 어쩌나?”

“어떡하긴... 선생님이 달을 만들어 주시면 되죠?”

“나보고 달을 만들라.”

“저번 촬영장에서 달을 만드셨잖아요.”

“그건 거짓달이야.”

“거짓.. 달?”

“그래! 월화 너처럼 거짓으로 가득 찬..”

“아니에요. 전 거짓으로 행동한 적이 없어요.”

“날 속이려 하지 마라.”

“전 선생님을 단 한 번도 속인 적이 없어요. 선생님에게는 언제까지나 진실이었어요.”

“거짓말! 너는 날 속이고 내 예술을 속였다.”

“제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선생님과 선생님 예술을 속인 건가요.”

“먼저 네 자신에게 물어 보아라. 너 자신을 속이는 행동이... 너의 예술을 속이는 행동이 정당 한 것인가를 말이야?”

“선생님은 제게 나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버리라고 했지 더럽히라고는 안 했다.”

“모르겠어요. 허지만 그런 행동들이 날 더럽혔다고는 생각 안 해요.”

“끝까지 네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구나.”

“그럼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닐까요. 난 화냥년이다. 이 남자 저 남자 붙어먹은 갈보보다 못한 더러운 년이다! 라고 말이에요”

“그.. 그만 하라니까.”

“그럼 그만 할 테니.. 어서 달이나 만드세요.”

“달을 만들라.”

“선생님은 못 하시는 게 없으시니까, 달도 만들고 월화도 만들고... 그리고..”

“그리고 또 뭐냐?”

“내 마음 까지도 뺏어 가셨잖아요.”

“난 그런 적 없다.”

“거짓말!”

“뭐? 거짓말?”

“호호.... 거짓 달에 사랑을 맹서한 바보!”

“누구?”

“나 월화!”

“누구에게?”

“바로 선생님!”

“듣기 싫다!”

“듣기 싫으면 어서 달을 만들어 줘요.”

“좋아! 그럼 달을 만들어 주마.”

“네, 어서! 그 힘찬 목소리로-”

“달 띄워!”

백남이 소리를 지르자 달이 떠올랐다. 둥근 보름달이 창고 위에 아니 이번엔 저 산위에 보름달 위에 높이 떴다.

“아..! 달이다!”

월화는 그 달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런데 갑자기 달이 빠른 속도로 지고 있다. 달과 함께 백남도 사라졌다.

“아! 달아 지지마.. 선생님도 가지마세요..”

월화는 어둠 속을 허우적거리다 번쩍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다. 월화는 온몸이 땀에 젖어 속옷 까지 흠뻑 젖어 있다.

“휴..”

월화는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키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한 동안을 세상과 격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오따와의 사건으로 인해 가슴에 주홍글씨를 문신처럼 색이고 살았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을 스스로를 방기한 채 죄인이 되어 그저 자신만을 탓할 뿐이었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 모두 나를 더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날 밤, 그런 실수가 없었다면 나는 더러운 여자가 아닐까? 그것이 내 탓인지 아니면 그 누구 때문인지는 그것은 거론 할 것이 못된다. 과연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또한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는? 그렇다면 나를 더럽다고 나쁘다고 욕하는 그 사람들은 깨끗한 사람들이고 착한 사람들일까? 이번 일은 단지 표면으로 부각된 오오따와의 부적절한 사건이 문제가 되었다. 그 문제는 알려져서는 안 될 남녀의 상렬 지사가 어이없게 노출되었다는 것뿐이다. 세상에 자신을 우러러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이 존재할까?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금강산인이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분명 누군가의 제보로 이루어진 듯 ‘소문이 이러하더라.’ 라는 글로 한 발 물러난 듯 한 기사가 분명하지만 따끔한 충고와 질책이 분명했다.

‘요즘 연극배우에서 활동사진 배우로 변신하여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 모 양의 근황을 볼 것 같으면 그녀의 행동거지가 실로 타락의 극치를 오고 가는 것 같다. 스타란 만인의 자산이요, 만인의 연인이다. 그러기에 스타란 그만큼 외롭고 힘든 길을 가는 십자가를 진 고통의 직업인지도 모른다. 그런 외롭고 힘든 길에서 멀어져 갈 땐 대중은 그런 스타를 가차 없이 버려 버린다.’

모(某)양이라며 익명으로 그녀를 지칭 했지만 아직 조선에서의 활동사진에 출연한 여배우는 월화 밖에 없지 않은가? 도대체 그걸 걸 제보한 사람은 누구일까? 설희 일까? 아니면 여배우나 스태프 중 누구? 또한 금강산인이란 누구일까? 생각 할수록 모든 게 미워지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금강산인까지 원망스러워 진다.

‘그런데 왜 나만 가지고 야단이야! 왜 나만 나쁜 년이고 나만 미친년이 되어야 해.’

월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억울하고 분했다. 그 원숭이 같은 촬영기사의 야비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놈의 입에 재갈을 물려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그 경박한 입을 지지고 싶다. 그의 원숭이 같은 눈을 손톱으로 파내어 흙바닥에 던져 두발로 절겅절겅 밟아 버리고 싶다. 또한 나의 질속에 들어와 휘젓고 나간 그놈의 양물을 뽑아 비루먹은 개에게 던져주고 싶다. 그런 잔혹한 상상을 하는데도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이제 백남 선생님을 어떻게 뵙는단 말인가?

월화는 오로지 그것이 걱정이고, 또 걱정이다. 월화의 두 눈엔 잠시 멎었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린다. 자신의 몸속에 이처럼 수분이 많은지 몰랐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겨우 몸을 일으켜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방안에 창문을 열고 작은 마당 위에 처마 끝으로 보이는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따라 밤하늘에는 검은 먹구름만 가득할 뿐 잔득 어두워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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