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2)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2)
  • 유지형
  • 승인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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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12) 로케이션


[인터뷰365 유지형] 조선최초의 활동사진 촬영은 계속 되었다. 오늘은 남한산성을 오르는 한 농촌 마을에서 야외촬영이 진행 중이다. 날씨는 한 겨울의 냉하로 영하 25도의 혹한의 날씨이다.

산성위로 부는 바람으로 인해 체감온도는 30도를 넘는 그야말로 살풍경한 추위 속에 촬영은 시작 되었다.

아침부터 서두른 촬영준비는 정오가 다 되었는데도 카메라가 돌지 않는다. 의상이 준비가 안 되어 준비해 놓으면 소품이 준비가 안 되었고, 소품을 준비해 놓으면 배우의 분장이 끝나지 않았다. 또한 니스를 잊어버리고 안가지고와 아교를 끓여서 수염을 붙인다고 또 한 시간을 허비했다.

어디 그 뿐인가? 월화가 머리를 땋아 늘일 댕기가 없어 겨우 동네 집집을 겨우 찾아 구걸을 하다시피 구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해는 거의 한 낮이나 되었다.

이제야 겨우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촬영이 시작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들을 배경으로 한 공터에 카메라의 위치가 선정되고 감독인 백남은 “레프!” 하고 소리를 지르자 소평풍 같은 넉 장의 은판지가 일제히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을 향해 반사시킨다. 지금 찍을 장면은 온 동리사람들이 정월 대보름 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원래 밤에 찍어야 하나 조명과 장비들이 부족하여 낮에 찍는 것이다. 모든 배우들이다 출연하는 몹 씬이고 농악대까지 동원되었다.

“레디 액션!”

감독인 백남의 외침소리에 촬영기사 오오따가 크랭크를 돌리자 농악대들이 풍악을 울리며 돌아가고 마을사람들이 농악대와 어울려 덩실 덩실 춤을 춘다. 한곳에서 지켜보던 월화도 마을총각들에 의해 춤판으로 끌려 나온다. 어여쁜 마을처녀가 춤을 추니 동네사람 모두 신이나 더욱 춤판은 신명이 난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추워 걱정이다.

홑치마에 흰 무명 저고리 차림의 월화는 추위로 말미암아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도 없고 새파랗게 질린 두 뺨을 파들파들 떨며 억지로 팔을 벌려 춤을 추어 보이려고 애를 쓰나 워낙 일기가 차고 바람이 세차서 모든 동작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월화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백남은 메가폰으로 더욱 리얼한 연기를 큰소리로 지시한다.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야지? 어디 춤을 추는 표정이 그래서야? 손도 더 올리고 얼씨구 덩실 덩실... 엉덩이도 좀 흔들고 말이야! 추워도 좀 참어.. 그렇게 자꾸 떨어서야 어디 찍을 수가 있나? 이건 춤추는 게 아니라 지옥으로 끌려가는 공포의 동작 같네. 어이 카메라 스톱!”

백남이 불만족한 표정으로 소리치는 바람에 카메라는 돌아가다 멈춘다.

“이봐 월화! 그렇게 춥단 말이야?”

“죄송해요.. 안 떨려고 해도 자꾸 몸이 떨리는 걸 어떡해요.”

“속에 메리아스는 왜 안 입었어?”

“그걸 입으면 너무 뚱뚱하게 보일 거 아니에요.”

“허, 그 정신 하나 만큼은 좋군! 자! 다시 찍읍시다.”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려 하자 월화의 얼굴은 더욱 사색이 된다. 그런 월화를 보다 못한 종화가 얼른 나서며

“감독님! 여배우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마침 숯불을 피어 놓았으니 불 좀 쬐고 난후 찍도록 하시죠.”

“좋아! 그럼 십 분 후 다시 찍도록 합시다.”

백남의 말이 떨어지자 배우와 엑스트라들, 그리고 스태프들은 우르르 화로가로 달려간다.

월화는 불을 쬐지도 않고 수통에 닮긴 커피를 따라 백남에게 가져 온다.

“선생님! 인삼차 좀 드세요”

“아니..이 산중에 웬 인삼차지?”

“아침에 집에서 끓여 가져 온 차가 아직도 식지 않았네요.”

허긴 차가 닮긴 수통을 식히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품에 끼고 산 월화이다.

백남은 그런 월화의 마음과 정성을 잘 알고 있다. 백남은 월화가 따라 준 인삼차를 호호 입으로 불며 마시면서 월화를 지그시 바라본다.

“추운데 고생이 많지... 우리 조금만 참자고!”

“아니에요. 하나도 춥지 않아요.”

“이거 촬영이 끝나면 감기약 값이 많이 들겠는걸.”

“감기약 사달라고 안 할 테니 선생님이나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 하세요”

“하하.. 나야 워낙 강골이라 감기 같은 건 끄떡없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월화는 그런 백남이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럽다. 또한 백남 역시 많은 여배우들 중에 월화를 선택 한 것에 무척이나 만족한다. 그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고참배우인 송해천이 한마디 한다.

“거...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부녀지간 같구려.”

그러자 월화의 아버지 역을 맡은 문수일도 한마디 한다.

“이 사람아 부녀지간이라니? 내가 보긴 잘 어울리는 정인의 모습인데..”

그 말에 월화는 온통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모른다. 백남도 난처한 듯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뿐이다. 월화는 그들의 말처럼 백남이 아버지이거나 아니면 연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니 더욱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 월화의 행복한 상상도 잠시 다시 백남이 큰소리로 외친다.

“촬영 개시!”

다시 촬영은 계속 되었다. 이번 테이크는 월화와 남배우 권일청과 춤판을 빠져 나가 몰래 데이트를 하는 정면이다. 이후의 장면은 처음 크랭크 인 날 세트 촬영으로 찍어 놓았으니 이 장면만 찍으면 오늘 촬영은 끝이 난다.

바로 이때다. 구경꾼들 틈으로부터 난데없는 노인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서더니 카메라 앞으로 가 딱 막아선다. 나이는 오십이나 되었을까? 얼굴에는 약간의 주름살이 잡혔는데 맨 상투 바람에 짚신을 신고 그 얼굴은 술에 취해서 붉어진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참 가관이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 뜻하지 않는 침입자 때문에 촬영을 중지하고 한참 동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들만 처다 볼 뿐이다. 미친 사람인가? 그러나 광인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행동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도대체 백주대낮에 이 무슨 도깨비짓들이요?”

첫마디의 노인의 말투는 마치 어른이 아이들을 꾸짖는 듯 위풍이 당당하다.

그런 노인 앞에 종화가 공손이 나선다.

“네 어르신! 저희들은 지금 활동사진을 찍는 중입니다.”

“활동사진? 그게 도대체 뭐요?”

“사진을 박아 여러 사람에게 구경 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켜? 그럼 이 산성으로 말하면 경치 좋은 곳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다 찌그려진 초가집 동네를 찍을게 뭐요? 그리고 왜 뻔뻔한 얼굴에 이리 빨갛게 양귀신들 처럼 칠은 해 가지고 요 꼴로 사진을 찍으면 누가 구경을 온 담 말이요!”

노인의 배우들의 얼굴에 분장을 한 것까지 간섭을 하며 기고만장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를 지른다. 주정이라 할까 생트집이라고 할까 하여튼 그 태도는 스태프들의 감정이 극도로 오를 지경까지 이른다. 그래도 종화는 여유 있게 노인을 달랜다.

“좋은 건 차차 박도록 할 테니 좀 비켜 주시죠.”

“못 비켜! 이제부터 절대 활동사진 못 박을 테니 그리 알아?”

이제 촬영장 분위기는 이 노인의 출현으로 엉망이 되었다.

구경꾼들도 재미있다는 듯 한 두 마디 씩 해댄다.

“그 영감은 우리 동네 개고기 영감이요. 당할 자가 없소.”

“저번에도 유랑극단이 온 것은 훼방을 놓아 쫓아 버렸다오.”

“영감! 오늘도 개판 한번 쳐보시오.”

우- 신이나 환성과 박수가 쏟아진다. 그러자 영감은 더욱 기고만장 떠든다.

“돈을 내! 한번 찍는데 십 원씩이야! 그래야 막걸리 값이라고 챙기지”

더 이상 보다 못한 듯 이번엔 백남이 나선다.

“대체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나? 나는 이 동네 촌장이다.”

“촌장?”

하..! 그래서 이 노인이 처음부터 반말로 시비를 걸어 온 것이로구나?

“허.. 이건 바로 서부 활극에나 나오는 주정뱅이 카우보이 영감과 똑 같은걸.”

백남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배를 잡고 웃는다. 하지만 이제 웃을 새도 없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웃 기웃... 이제 마지막 촬영을 몰아가지 않으면 오늘의 촬영분량이 초과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백남이 노인의 웃음을 흉내 내며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만 노인장이 촌장이시래도 사진을 못 찍게 할 권리가 없으십니다.”

“어째서?”

“우리는 총독부의 허가를 맡아가지고 나왔으니까요?”

“뭐? 총독부!”

총독부라는 바람에 노인이 찔끔 하더니 그냥 댓바람에 어디론 가로 도망을 치고 만다. 그에게는 총독부란 대포보다도 더 큰 위력으로 다가선다. 총독부의 위령이 이런 시골까지 미치고 있는데 대해 감탄하지 않은 수 없다. 이제 방해꾼은 사라지고 이들은 서둘러 오늘 분량의 마지막 촬영을 서둘러 끝 마쳤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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