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1)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11)
  • 유지형
  • 승인 200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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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11) 연쇄극


[인터뷰365 유지형] 이야기가 잠시 뒤로 간다. 그러니까 삼일 운동이 일어난 1919년의 일이다. 경성의 도시는 짙은 갈색으로 물드는 가을로 접어든다.

이 시기, 각종 신문 문화면에 단성사 극장에서 김도산 연출의 연쇄극 <의리적 구투>를 공연한다는 광고가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연극께나 보았다던 식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쇄극이 뭐지?”

“글쎄?”

“이런 무식한 친구들! 연쇄극이란 키노드라마를 일컫는 말인데 연극 도중에 활동사진을 상영하는 새로운 연극이라네.”

“에끼 이 사람아! 연극이면 연극이고 활동사진이면 활동사진이지 어떻게 연극 도중에 활동사진을 튼 단 말인가? 환등이라면 또 모를까?”

“맞아!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하지가 않아.”

“가능하니 연쇄극을 한다고 하지 않나?”

갑론을박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연쇄극이란 과연 뭘까? 많은 호기심과 기대로 관객들은 모여 들고 무대를 주시한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처음의 시작은 연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연극의 막이 오른 지 삼십 분쯤 지나고 무대 위에는 청년과 악한이 싸움을 한다. 그런데 악한이 힘이 부쳐 도망을 치자 청년이 뒤따르며 무대를 퇴장한다. 이때, 호르륵- 호각소리가 들리자 무대 위에 조명이 꺼지고 그 어둠 천정에서 백포장이 스르르 내려와 무대를 가로 막더니 이층 영사실에서 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을 비추는데 그 백포장 막에 비친 사진이 바로 활동사진이다. 무대를 퇴장한 악한과 그 뒤를 쫓던 청년이 산으로 오르며 도망치고 뒤 쫓고를 반복한다. 막 뒤에서는 청년과 악한 역의 배우가 숨어서 감정을 넣은 목소리로

“게 섰거라!”

“어림없다!”

헉..헉... 숨찬 호흡소리를 내며 화면을 실감나게 만든다. 결국 악한이 청년에게 잡히고 싸움은 계속 된다. 힘이 달린 악한은 품에서 단도를 꺼내 청년을 찌르려는 위기의 순간에 또 다시 호르륵- 호각소리가 들리며 순식간에 백포장이 올라가고 불이 켜지자 무대 위에는 다시 청년이 악한의 휘두르는 단도를 피해 안간힘을 쓰고 이리 저리 피해 다닌다. 이래서 한바탕 다찌마와리(난투장면)가 무대 위에 계속 되다가 결국 청년은 악한의 단도를 뺏어 찔러 버리자 악한은 “으윽...” 비명을 지르고 무대 위로 나둥그러진다.

이 실감 나는 장면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진다. 연극도중, 비록 일 이분 분량의 활동사진을 틀어 보인 것이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대단 했다. 그만큼 관객들은 조선의 활동사진을 기대하고 원했던 것이다.

그 후, 이 연쇄극 형식의 연극은 연극무대를 장악하여 유행처럼 퍼졌다.

김도산의 후속작 <시우정>와 <형사고심> 그리고 이기세의 <황혼>과 <지기>등과 임성구의 혁신단에서도 <친구의형살해> <보은>등의 작품이 만들어 졌다.

백남은 이 연극도 아니오, 영화도 아닌 연쇄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는 동아일보의 지면을 통해 이런 연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박하며 개탄하는 글을 쓴다.

“연쇄극! 이것은 무엇에 쓰고자 함이요 무엇을 의미함이냐? 결국 연쇄극이라 하는 것은 극이 아무리 무미건조 할지라도 말을 타고 쫓고 자동차로 경주하며 긴장을 느끼게 하는 활동사진으로 관객의 눈을 홀리는 것이니 이것은 곧 주객이 전도된 변태의 극이 아닌가?”

이렇게 통탄하고 이런 속악한 공연행위로 관객의 저속한 흥미만을 환기시키지 말고 예술적 양심을 일깨우도록 일부 연극인들을 질책한 것이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김도산이 백남이 근무하는 매일신보 사옥으로 찾아 왔다. 도산은 백남 보다 4살이나 연하이다.

“백남 형님! 그간 무고 하셨습니까?”

“이게 누군가? 도산아우가 아니던가?”

“내 형님 뵙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이렇게 찾아뵙는 수밖에요”

“이 사람아! 얼마 전에 자네가 만든 연쇄극 <형사고심>의 시연회 장소에서 보지 않았던가?”

“아이고...그때 형님한테 당한 수모는 넌덜머리가 납니다. 이게 무슨 사기협잡 이냐며? 시연회장에서 노발대발 하셨지요.”

“허허..내가 그런 적이 있던가?”

백남은 장난스럽게 손사래를 친다.

“저 형님! 마침 점심시간도 되고 했으니 나가시죠?”

“그래! 자네가 날 찾아 왔으니 우동 값은 내가 냅세.”

“참 형님도... 그까짓 우동 값 누가 내면 어떻습니까?”

이들 두 사람이 간 곳은 정갈한 한식 음식점이다. 이들은 한 일실에 마주 앉는다.

“형님은 요즘도 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것 같던데요?”

“뭐? 심심풀이로 원고지 칸이나 매우고 있다네.”

“심심 작작 원고지 칸이나 매 운다면 조선의 대 문사인 형님께서 너무 겸손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대 문사야.. 이인직이고 육당 최남선이지. 내가 문사 축에나 끼나? 그래 날 찾아온 용건이 뭔가?”

“형님께서 궁금해 하시니 내 바로 용건을 말 해 보겠습니다. 형님께서 활동사진 각본 하나만 써 주십시오. 서양말로는 시나리오라고 하나?”

“시..나리오?”

“네..! 이제 조선에도 본격적인 활동사진이 만들어 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연쇄극에서 보여준 단편 같은 조각난 사진이 아니라 수미일관의 활동사진을 말 하는 겁니다.”

“그걸 자네가 만든단 말인가?”

백남은 부러운 듯 도산을 바라본다. 김도산은 남성다운 성격으로 늘 개척자적인 정신이 강했다. 서울 토박이 출신으로 상동학교를 졸업하고 연극계로 뛰어들었고 일찍 자신의 극단을 만들어 흥행계를 주름 잡았다. 그것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그만큼 리더십도 강했다.

“활동사진이란 종합예술이라고 서양의 영화이론가 카뉴도란 사람이 말했다더군요. 영화란 제7의 예술 즉, 미술, 건축,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등 이 종합되어 이룬 예술이 바로 영화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형님께서 이 아우를 위해 아니.. 조선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활동사진을 위해 각본을 하나 써주십시오.”

이렇게 도산에게 고무 받은 백남은 각본을 쓰게 된다. 그 작품이 <국경>이란 작품으로 몇 년 전, 먼저 희곡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얼마 후, 대본을 받아든 도산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백남을 칭송한다.

“형님께서 언제 그리 활동사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셨습니까? 각 장면 마다 기승전결이 살아 있고 장면 전환이 이처럼 빠를 줄이야. 형님이 진정 이 각본을 고심 해 쓰셨다면 대단한 학구파요. 대충 쉽게 썼다면 형님은 분명 천재입니다.”

입이 달토록 백남을 칭찬한다.

“허허...이 친구 원고료를 깎으려고 고단수를 쓰는구먼.”

백남은 이렇게 말했지만 기분이 좋다. 도산은 이제 백남이 써 준 대본을 들고 곧 바로 활동사진 촬영에 들어간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고, 빚까지 내어 제작을 겸하는 의욕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촬영은 불행한 파국을 맞게 된다.

촬영분량의 겨우 20% 정도를 남겨 놓고 도산이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촬영장으로 향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 절벽에서 차가 추락하는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이다.

그 결과 조선 최초의 활동사진 개봉박두! 라는 광고까지 해서 신문지면을 달구었던 광풍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도산의 꿈은 죽음과 함께 미완의 종장으로 끝나고 만다.

그후 일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백남은 후배 도산의 한과 유지를 잇는 격이 되었다.

“이제 내가 도산을 대신해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백남은 무한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낀다.

사실 백남의 활동사진 촬영의 계기는 우연히 만들어진 일이 아니었다. <월화의 맹서>의 실 제작소는 척산 은행이다. 이 척산 은행의 은행장 모리는 백남과 일본 동경고등상업학교 동기동창이다. 백남이 처음 고국으로 돌아온 후 척산 은행의 전신인 수형조합의 간부를 역임 한 것도 바로 친구 모리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런데 총독부 체신국과 척산 은행 측은 조선인의 저축 계몽 운동의 필요성으로 활동사진을 만들자는데 합의 한다. 그런데 감독을 누가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미 일본은 1896년 불란서에서 만든 키네토스코프의 일본공개가 시작되고 다음해인 1897년 도쿄의 한 요정에서 게이샤의 무용공연을 찍은 필름이 만들어지며 빠르게 극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며 감독이라는 직업이 탄생 했다.

아직 조선에서는 <경성전시의 경>이라던가 <금강산 대활동>등의 풍경영화와 연쇄극 정도가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감독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기이었다.

그러자니 일본에서 감독을 초청해오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조선에서 만든 영화니 조선의 감독과 배우가 출연하고 단지 기술적인 촬영, 조명, 현상, 편집 등은 일본인들이 맞기로 한다. 그럼 조선에서 처음 감독을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모리는 바로 동기동창인 윤백남을 추천하고 진고개의 한 일본식 요정에서 백남과 마주한다. 모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꺼운 종이뭉치를 불쑥 백남에게 내민다.

“이게 뭔가?”

“이게 바로 일본의 영화사에서 급히 구해 온 콘티뉴티라는 걸세.”

“콘.. 티뉴티?”

“우리 쪽 말로 하면 촬영 설계도라고나 할까?”

“촬영이라면 활동사진 말인가?”

“그래 조선에서도 활동사진을 찍기로 했네. 자네가 그 영화에 감독을 맡아 주어 야겠어.”

“왜 하필이면 난가?”

“그럼 내가 자네 말고 누굴 감독을 시키겠나?”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친다. 백남은 흔쾌히 이 일을 수락하고 다음 날부터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가며 스태프 구성을 한다. 한편, 일본 기재 상에서 촬영용 카메라와 필름을 들여오고 일본인 촬영기사와 조명기사 등을 초청하는 한편 민중극단의 단원들을 불러 모아 배역선정이 들어간다.

정숙에 이월화, 영득에 권일청, 정숙부에 문수일, 영득부의 송해천, 처남댁에 안세민, 노름꾼에 김응수를 기용된다.

그리고 예전 일본에서 돌아오며 동경 서점에서 사온 이와나미 판 <영화개론>과 번역서 <영화 제작법 강좌>등의 영화이론서들을 다시 뒤져 읽고 밤이면 남모르게 영화상설관으로 찾아 들어가 본 영화를 보고 또 보며 카메라 워크와 커트의 타임을 체크하고 메모하는 날을 보낸다. 그리고 드디어, 1922년 가을 어느 날! 서울 만리동의 한 물류 창고 한 동을 빌려 미술장치를 끝내고 백남은 대망의 레디고! 를 힘차게 외쳐 불렸다.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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