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보다 냉기를 느낀 <워낭소리>
온기보다 냉기를 느낀 <워낭소리>
  • 김두호
  • 승인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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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영화로 빠져나온 다큐의 한계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일반 영화관에서 극영화를 압도하는 흥행 실적을 올려 꾸준히 화제다. 국내서 제작된 다큐 영화가 극장가에서 관람료를 받고 간판을 올린 것도 유례없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관람하고 찬사를 했다고 해서 안 보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과연 <워낭소리>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찬사를 할 만큼 좋은 작품, 상업영화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인가.


우선 몇 해를 두고 농사를 짓는 노부부의 고달픈 일상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감독의 집요한 노력과 작품에 쏟은 열정은 경외롭고 탄성이 나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어떤 작의(作意)로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척박한 땅에서 늙고 병든 소와 더불어 노동의 고통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병약한 노인부부의 삶을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았을까?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직도 수십년 전 농경사회 생활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불쌍한 촌부노인을 통해 추억을 되살리는 휴먼 다큐를 만든 것일까?

아니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소와 주인 부부의 모진 삶을 통해 생로병사의 막장에 이른 생명의 절망과 허무감을 주제로 한 다큐일까?


어떤 작의에서 제작됐던 <워낭소리>는 TV프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큐가 아니라 관람료를 받고 극장에 내놓은 상업영화다. 그러면서 극영화와 성격이 구별되는 것은 등장인물이 출연료를 받고 감독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배우와 달리 농업에 종사하는 실존 인물들이다. 한 가정의 사생활이므로 본인과 그 가족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찍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물론 충분히 양해를 얻었다 해도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낄 수 없다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전혀 보이지 않던 가족들이 추석명절에 차를 몰고 나타나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도와 드린다며 소를 팔도록 요청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온기를 느낄 수 없다. 많은 자녀를 애써 키운 노부모의 삶은 시종 처량하고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워낭소리>는 한마디로 9남매나 되는 자녀를 키웠지만 늙고 병든 지금까지도 30여 년 전 쯤에나 볼 수 있는, 소로 농사를 지으며 소외된 삶을 사는 이 시대 농촌 노인의 생활모습을 가공하지 않고 필름에 옮긴 기록이다. 시작부터 끝없이 토해내는 할머니의 신세 한탄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 발가락까지 부서진 불구의 다리 한쪽을 끌며 논밭을 갈고 지게를 지는 할아버지의 입에서 수시로 흘러나오는 한숨과 처절한 신음소리, 이 필름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워낭을 쥔 손이 소나무 껍질같이 갈라진, 할아버지의 지친 삶이 시종 연민과 비애를 깔고 넘어 간다. 투정을 부리는 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도 처음에는 관객들의 웃음을 사지만 시간이 지나면 웃는 것이 겸연쩍어진다.


영화의 생명이 리얼리즘이다. 드라마를 어느 정도 실감나게 그려내느냐가 극영화의 승패가 된다. 만일 실존 이야기를 옮기는 다큐가 극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면 그 가치나 감동은 극영화와 비교할 바 아니다. <워낭소리>는 이따금 자연의 풍경과 생명들이 생음과 함께 인서트로 화면을 부드럽게 식혀주지만 극영화에서 마주치는 극적인 드라마는 보이지 않는다.

40여년을 자신의 분신이 되어 함께 살다가 임종을 맞는 늙은 소 곁에서 족쇄 구실을 한 코뚜레와 고삐를 낫으로 잘라 생을 마감하는 그에게 비로소 자유와 해방을 표해주는 할아버지의 표정 정도가 극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것은 웃음과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78분짜리 필름이 모두 돌아간 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사실 농촌 출신으로 중년이후의 세대라면 <워낭소리> 같은 실존 기록은 자신들이 지켜 본 부모나 이웃의 이야기일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감독)는 <워낭소리>를 통해 이 시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30년 또는 40여 년전 힘들게 살았던 어른들의 삶을 재현하듯이 보여주며 그 시대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일깨워주는 다큐를 만든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영화 시장에 나온 상업성 다큐라면 끝까지 관객들 앞에 한숨소리와 절망감만 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는 부담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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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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