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연꽃은 진흙탕 연못 안에서 필 따름
[건축 에세이] 연꽃은 진흙탕 연못 안에서 필 따름
  • 류춘수
  • 승인 200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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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양말 신고 연못 밖에 서있는 젊은이들에게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2~3년 근무하던 직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일년에 평균 대여섯 명은 회사를 떠나고 있으며, 더 많은 젊은이들이 또한 새로이 입사를 한다. 십여명이 함께 일할 때는 모든 상황이 한 눈에 들어오던 것이 이제는 이름조차 솔직히 모르는 직원이 생기고, 개인적인 고민은 물론 맡긴 일에 대한 파악조차 거의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개개인의 불만이나 고뇌를 잘 모르며 일만 벅차게 시키니 불만은 쌓일 테고, 하는 일에 대한 성과가 덜하니 스스로 답답해하며 결국은 떠나게 되는 지도 모른다.

하직 인사차 내 방으로 온 그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긴 얘기를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고민을 듣고 내가 반성한 얘기가 아니라 거의 일방적인 내 이야기만 들려주었을 뿐이니, 이래저래 나는 사람 다루는데 소질이 없는가 보다.

몇 해 전 그가 입사할 때 미국의 어느 대학의 석사과정에서 만든 그럴듯한 스케치들과 건축에 대한 열의와 개성 또한 훌륭해 보였기에 실제적인 경력이나 나이에 비해 직책도 규정보다 높게 채용했었다. 이유야 어쨌건 결국은 그만두게 되었으니 내 용인법과 포용력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셈이며, 모든 것은 내 무능의 소치이리라.

그때 그에게 한 얘기들은 결국 그 동안 제대로 돌보지 않다가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는 위선의 말장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 건축학도, 즉 그와 비슷한 연륜과 경험을 가지고 방황하는 수많은 「그들」에게 그때 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문제는 우리가 왜 사는가의 근원적인 것이다.

건축설계라는 직업의 속성을 떠나서 무슨 일을 하든 똑같은 근원의 문제와 만난다. 왜,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에 대한 나의 답은 늘 단순ᆞ명확하다. 시공(時空)을 초월해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사막에도 먼 이웃마을과 이어지는 외길은 있으며, 로빈슨 크루소도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ᆞ역사적인 인류로 사는 것이다. 죽어서 남는 것은 결국 가족과 「남」을 포함해서 「그들」을 위해 일한 흔적일 뿐이며 그 자취가 얼마나 큰 것인가가 자신에 대한 평가이니, 결국은 자신을 위한 삶인 것이다. 우리는 설계라는 수단을 통하여 건축주, 사용자, 사회, 역사와 인류를 위해 일하여 결국은 자기를 남기는 셈이다.

이렇게 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종일 밭고랑을 매는 농부처럼, 혹은 더러운 오물을 치우는 청소부처럼, 그 이상으로 우리는 구정물 속에 온몸을 담그는 자기 헌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꽃은 진흙탕 연못에서 필 따름이다.

손가락으로 구정물을 튕기며, 과거의 엘리트 의식으로 무능한 자신을 유능한 듯 착각하고, 남보다 좀 더 읽은 몇 개의 지식에 스스로 취하며, 창조의 꽃을 피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빠져들어야 할 진흙탕 밖에서 흰 양말 신고 머뭇거리는 자는, 가장 창조적인 직업의 하나인 건축분야는 물론 남을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무슨 일도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연꽃이 아닌 호박꽃이라도 스스로 가꾸지 않고 장미를 수입하여 남을 현혹시키는 것은 창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야근도 하고 철야도 했으니 참으로 「수고」는 많았을 지라도 설계를 위하고 창조를 위하여, 즉 남을 위한 사람을 위하여 결국은 진정한 자신을 위한 의미로 「수고」 아닌 「고뇌」의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

『나는 남달리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으며, 건축에 대한 이론적인 책도 많이 읽었으며, 미국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는데, 주변의 바보처럼, 소처럼 일만 하는 동료들에 비해 당연히 훌륭한데... 그런데 왜 못 알아줄까?』

달마가 동쪽으로 와서 부처의 의발(依鉢)과 법(法)을 전한지 5대째 되는 육조(六祖) 혜능(惠能) 선사, 그의 선맥이 천여 년 지난 해동(海東) 우리나라의 깊은 산사에 아직도 맥맥히 흐르는 그는, 사실 글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기쁨과 보람, 즉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쉽게 말해서 국제현상 설계에 당선된 순간은 눈물을 흘릴 만큼 감격하지만, 기쁨은 한 순간이며, 수행과정은 피를 말리는 시련과 고통, 정말 밤잠 못 이루는 고뇌의 연속인데, 결국은 그 고통이 창조와 기쁨을 만드는 필연의 과정이 아닌가? 즉 기쁨과 행복은 고통으로만 이루어진다. 사랑이 그러하고 창조적인 모든 일이 그러하며, 즐겁고 보람있는 인생은 곧 괴롭고 힘든 세월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대가 건축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막연한 지식과 조형의 희롱이 아닌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기술과 논증을 개발하며, 그리고 최종적인 창조를 위하여 수고 아닌 고뇌의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가?

어디에 가서든, 설사 건축을 포기한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 기쁨과 보람을 얻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 진흙탕에 온몸을 던져서 행동하는 고뇌를 해야 할 것이네! 잘 가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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