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우리가 기댈 곳은 저 아름다운 산천
[건축 에세이] 우리가 기댈 곳은 저 아름다운 산천
  • 류춘수
  • 승인 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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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다스리고 물길 안으며 땅과 어우러지는 순리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자동차를 몰게 되면서 가까워 진 곳은 우선 고향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인가, 나이가 들수록 자주 내려가니, 이제는 고향으로 가는 여러 갈래의 국도변 풍경들이 눈을 감고도 훤히 스쳐간다. 젊을 때는 ‘추석’에도 성묘 가기가 여의치 못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4월 ‘한식’에도 늘 선산을 다녀온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조상으로 비롯된 생명과 배움의 은덕을 일깨우고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가슴에 새겨주는 길은 고향으로 데려감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우선 먼 선대의 얘기를 들려준다.

『먼 옛날,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어느 차공(車公)이 임금으로부터 류(柳)씨 성(性)을 하사받아 구월산 문화(文化) 땅에 뿌리내려 고려조의 명가(名家)를 이루니...』

그 후손들이 전주, 안동, 진주 등지에서 가지를 치며 역사에 토(吐)한 인물과 자취를 알려준다.

풍산(豊山) 유(柳)가의 하회 마을은 물론, 전주 유가의 집성촌이던 수몰된 무실마을의 모형과 유적만이라도 안동민속박물관(安東民俗博物館)에서 보여 줄 것이며, 우리 일파의 퇴락한 종가(宗家)와 현판만 남은 봉화(奉花) 송천서원(松川書院)의 자취를 그곳에서 어린 시절 한 때를 살던 내 추억과 함께 찾아가 들려줄 일이다. 그래서 건축을 공부한 큰아들 놈에게 무엇 보다 먼저 가까운 조상부터 배우게 할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고향인 청송 안덕(安德)의 함안 조씨(趙氏)네 마을에서 외할아버지 체취 어린 유명한 방호정(方壺亭)과, 처가인 봉화 법전마을의 기헌고택(起軒古宅)에 머물며 경체정 난간에서 추사(秋史)의 친필 현판도 보여 줄 일이다. 모두가 영남의 대표적인 반촌(班村)이라 조상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 마을과 고건축의 배치와 공간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다스리고 물길을 안으며 땅의 생김과 어우러지는 순리를 오늘의 우리 건축에서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반상(班常)은 사라지고 이른바 중산층이 다수인 사회적 안정구조가 이루어진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모두가 졸부가 되려 할 뿐 지배 계층이면서도 청빈하던 선비 정신 또한 사라져 감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시대에나 역사는 지배층과 민초, 보수와 개혁의 네 바퀴로 굴러간다. 자주정신으로 서경(西京)천도를 꾀하던 묘청과 그를 죽이고 정사(正史)에 빛나는 김부식, 회군하여 왕권을 잡은 이성계와 방원의 칼날에 쓰러진 정몽주와 최영 장군... 혁신과 보수의 승패가 엇갈리며 역사는 역동하며 흘러왔다. 六臣을 배신한 신숙주도 선비 아님이 아니며, 임란을 예측 못해 오명을 쓴 내 앞 마을의 학봉 김성일도 대꼬쟁이 같은 선비였다. 심양에 볼모된 김상헌도 이미 명(明)은 가고 청(淸)의 시대가 왔음을 통감하며 주화파의 ‘구국심(求國心)’과 화해하지만, 돌아온 봉림대군은 복수의 칼을 간다. 잠자던 자주정신의 발로였으며, 오랑캐 청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은 그 후 거유(巨儒)들을 낳아 오늘의 우리의 정신을 지탱시킨다.

만주벌판의 흙모래를 담으면 방호벽을 쌓을 수 있고 그 속에 들어가자면 삭풍을 막아주는 「슬리핑백」이 되는 통자루와, 날렵한 쫄대바지로 군복을 개조한 이완 장군과 더불어 준비한 효종(孝宗)의 야심찬 북벌계획은 등창으로 쓰러지며 무산되었지만 자주성과 실학 정신을 배태하였다.

그 후 영ㆍ정조 시대를 거치며 기회이던 실학과 진보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몰라 조선은 망했지만, 일찍이 그렇게 가난하면서도 정신과 문화만은 지고(至高)하여 우월하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한식(寒食)과 추석(秋夕)의 긴 성묘길 차량에서 느끼는 세 가지는, 도시로 몰려간 저 중산층의 가슴에 여전히 조상을 기리는 아름다운 정신이 전통으로 이어 간다는 믿음과, 구한말의 조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쳐다보던 유럽과 중남미와 동남아의 나라들을 만만히 볼 수 있을 만큼 강한 한국으로 계승된 역사의 반전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의 산천은 정말 여전히 아름답다는 감동이 그것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근원적 이해와 자부심에 기초한 새로운 창조가 아니고선 결국 서구와 일본식 아류의 모조품을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의 현대 건축은 아직 세계에 내 보일 것이 별로 없다. ‘서구식 추종’이라면 문화적 갈등이 적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가 영어 실력만큼이나 우리를 앞서가며, 막강한 돈과 기술을 바탕으로 문화와 건축조차 고유의 상표를 만들어 가는 일본은 우리가 발 벗고 뛰어도 여간 따라잡기 어려울 판이다.

오래전 일본 삿포로 근교에서 열린 6차 ‘아시아 포럼’에서의 충격은 컸다.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며 이 포럼을 주관하는 AA출신의 건축가 Ken Yeang도 “다시 그려야겠다”고 실토할 만큼, 요코하마 항구 터미널 당선자인 Jaera-Polo의 발표작은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도대체 지은 작품이 없는 서른 한 살의 젊은이가(29세의 파트너 Moussavi는 그의 아내였다) 일본 건축계를 강타하며 세상에 떠오른 비결은 무엇이던가? 하버드와 AA에서 배우고 가르친 탄탄한 기초 위에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창조성을 무심한 마음으로 유감없이 표현한 것이다. 낙선자이기에 나는 더욱 뼈저릴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만들었는가? 무엇에 의지하여 다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고향의 깊은 산에서 몰두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구상을 실행하고자 다시 간 그 산촌에서, 그리고 진달래 메아리 붉어 가는 부모님 무덤에 기대어 한 생각을 정리한 기억이 있다.

외부에서 얻은 것 이상으로 내부적 몰두가 있어야 하리라. 우리가 기댈 곳은 저 범람하는 양식과 논리의 기술과 정보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 스스로 수천년 가꾸어 온 정신일 것이며 그리고 불변하는 저 아름다운 산천일 것이다.

아들에게 보여 줌이 아니라 내가 우선 배우고 느끼기 위하여 남긴 정신과 자취를 다시 볼 것이다. 그리고 빈 잔에 술을 따르듯, 빈 마음자리를 찾아 다시는 충격에 떨리지 않을 기둥을 박을 것이다.

침잠해야만 구각을 벗고 날 수 있다는 생각은 말뿐이었다. 건축가 김기석의 쓴 용어를 빌리면, ‘벌림’에서 ‘오므림’의 때가 내게 적절히 오는 듯하다. 오므리다 보면 더 큰 벌림의 시대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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