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 석광인
  • 승인 20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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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 채 다 외우기전에 대히트 / 석광인

‘트로트 4인방’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가수 설운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트로트 스타 설운도가 싱어송라이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자신이 취입할 노래만 만들어 부르던 시절을 지나 후배 트로트 가수들을 위해 본격적으로 작사 작곡을 하고 나서며 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작곡가 선생님’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최근 방송가에서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하동진의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를 비롯해 소리새의 ‘바다로 가자’, 우연이의 ‘우연히’, 노경희의 ‘선택’, 정삼의 ‘내 사랑 유리’, 이소영의 ‘사랑이 필요해’, 유명숙의 ‘추억의 광안대교’, 문채령의 ‘아니야’(이찬재 작사), 박주희의 ‘럭키’(홍상기 작사) 등. 이 노래들 모두 설운도가 가수가 아닌 작가로 작곡을 한 것은 물론 일부는 작사까지 해 방송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들이다.


여기에 자신이 작곡해 직접 노래한 ‘그런 여자 없나요’, ‘누이’, ‘갈매기 사랑’, ‘사랑의 트위스트’, ‘춘자’ 등 무려 20여곡이 이 방송 저 방송에서 한꺼번에 무차별로 방송되고 있으니 “작곡가 설운도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작곡 능력이 뛰어난 가수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훈아와 조용필은 물론 심수봉 이용 김범룡 등 작곡 능력이 뛰어나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가수들은 많다.


이들도 다른 가수들을 위해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내놓고는 있다. 그러나 다른 가수들을 위해 만든 노래들의 수에 있어서는 설운도와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 만큼 설운도의 곡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그의 왕성한 창작력이 남다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설운도가 창작활동을 위해 자신의 가수활동을 접고 전업 작곡가로 나선 것도 아니다. 각종 무대에 오르며 가수활동을 벌이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신분인데 언제 그렇게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 지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아무래도 설운도는 끊임없이 신곡이 솟아나는 남다른 창작의 샘을 갖고 태어났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는 그의 왕성한 신곡 생산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설운도는 1958년 6월 2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영춘.


그는 1982년 KBS의 ‘신인탄생’에서 5주간 우승을 차지하며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잡았다. 그는 같은 해 영화배우 출신의 매니저 안태섭씨에게 스카웃돼 신곡 취입을 준비하며 본격적인 가수활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안태섭씨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자매 그룹 숙자매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1983년 봄 그는 유명 작곡가 남국인의 신곡을 받아 취입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매니저 안태섭씨는 그의 본명을 문제 삼았다.


“이영춘이 뭐꼬? 이영춘이….”


안태섭씨는 최고의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나훈아에 못지 않은 가창력을 지녔으니 예명을 ‘나운도’로 짓자고 했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인 예명이 아니냐는 주위의 권고로 성을 나에서 설로 바꿔 ‘설운도’라는 예명을 쓰기로 했다.


결국 설운도라는 예명을 얻은 그는 유명 작곡가 남국인의 신곡을 받아 취입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랜 연습을 거쳐 취입도 이미 끝났고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음반이 나올 날만 기다리며 무대 경험을 위해 야간업소 무대에 오르던 상황이었다.


어느날 새벽 야간업소 무대를 끝내고 안태섭씨의 아파트로 돌아온 설운도는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던 안태섭씨가 갑자기 “그래 저거야! 바로”라고 소리를 치더니 “운도야, 빨리 옷입어”라며 재촉을 하는 것이었다.


TV에선 KBS의 ‘이산가족 찾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캠페인으로 방송되던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24시간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특히 30년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이 얼싸안고 눈물바다를 이루는 장면은 TV를 보는 사람들의 눈물을 절로 나오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설운도가 영문도 모르고 안태섭씨에게 이끌려 찾아간 곳은 작사가 박건호의 아파트였다. 곤히 잠든 박건호를 깨운 안태섭씨는 지금 태평하게 잠만 잘 때냐며 TV를 켜보라고 재촉하며 설운도의 신곡 악보를 내미는 것이었다.


꼭두새벽에 쳐들어온 안태섭씨와 설운도 때문에 박건호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안태섭씨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전쟁으로 헤어졌던 이산가족이 30년만에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가사로 만들어달라는 안태섭씨의 요청이었다. 설운도가 연습을 거쳐 이미 취입까지 끝낸 남국인의 신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달라는 게 안태섭씨의 요청이었다.


새로운 가사를 부탁하고 안태섭씨의 집으로 돌아온 설운도는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작사가 박건호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박건호는 이미 가사를 완성해놓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태섭씨는 박건호가 새로 써놓은 가사를 받기 무섭게 안양에 있는 오아시스레코드사로 달려갔다.


안태섭씨의 전후사정 설명을 들은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손진석 사장은 설운도에게 곧바로 새로 취입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고선 이미 준비해놓은 설운도의 데뷔 음반인 LP의 재킷 디자인을 서둘러 바꿔 인쇄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채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탄생한 곡이 ‘잃어버린 30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그리웠던 30년 세월/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네/그 얼마나 울었던가요/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못다한 정 나누는데/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목메이게 불러봅니다….”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손진석 사장은 이 노래가 수록된 LP가 출반되기 무섭게 KBS의 관계자들에게 전화해 이 방송의 ‘이산가족 찾기’에 설운도가 출연할 수 있도록 섭외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설운도가 급조된 이 노래의 가사를 채 외우지도 못했다는 사실. 결국 안태섭씨가 무대 앞에서 가사가 쓰인 큰 판지를 든채 서 있고 설운도는 그 가사를 보며 ‘잃어버린 30년’을 노래했다.


‘잃어버린 30년’은 설운도가 그 가사를 다 외우기도 전에 대히트였다. 설운도가 ‘이산가족 찾기’에 나가 몇 번 노래하기 무섭게 여러 방송에서 이 노래를 틀어댔고 설운도는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는 형국이었다.


매니저 안태섭씨와 오아시스레코드사 손진석 사장의 불같은 추진력과 타이밍이 무명가수 설운도를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셈이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작곡가 남국인의 탄탄한 곡에 ‘이산가족 찾기’의 감동을 그대로 짚어내듯 재현해낸 작사가 박건호의 절묘한 가사가 아니었다면 설운도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스타덤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해 말 설운도는 KBS의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7대 가수에 선정되며 1983년 가요계가 배출한 최고의 신인가수로 등극했다.


어느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온몸으로 직접 겪은 설운도는 이 때의 경험과 전율 덕택에 결코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뛰어난 작사가와 작곡가가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불후의 명곡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들으며 설운도의 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불을 붙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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