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인터뷰] 세월도 백기를 들게 한 연기자 신구
[그때 그 인터뷰] 세월도 백기를 들게 한 연기자 신구
  • 김두호
  • 승인 200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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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애정물의 연인 역은 한번도 못해봤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사극이든 애정, 멜로물이든 시트콤이든 출연 배역마다 적역(適役)을 만들어 버리는 신구는 개성이 뚜렷하고 매우 독창적인 전천후 연기인이다. 영화와 TV드라마에서 신구의 얼굴이 등장하면 우선 초장부터 재미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드라마에 금방 친근감이 느껴지고 재미있거나 감칠맛이 나고 끈적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이제 며칠 후면 만 73세로 접어든다. 그렇게 많이 늙었음에도 늙었다는 생각을 않게 한다. 십 수 년 전에도 지금 나이 같은 배역을 척척 감당해 냈고 이제는 자신의 나이보다 더 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세월도 비껴간 만년 탤런트다.


“달콤한 연인 역을 한번도 못했다”고 그는 젊을 때 넋두리처럼 말한 적이 있다. 아래로 처진 눈매나 평범하고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인상, 때때로 조급하게 이어지는 명료하지 못한 언어습성이 결함 같기도 한데 그는 그것을 오히려 최고의 개성으로 역전시켜 자신의 출연 작품 <박수칠 때 떠나라>는 제목과 달리 평생 박수를 받으며 떠날 때를 모르고 산다.


1980년대 초 40대 시절의 신구는 어떤 모습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TV드라마 <옛날 나 어릴 적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동심초> <소망> <야간비행> <황희정승> 등 출연 작품마다 화제가 되고 그 화제의 중심에서 인기를 누리던 신구의 인터뷰 앨범을 다시 펼쳐 보자.



명연기자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기자 신구’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한다. 겸손이 아니라 내 주변에는 진짜 재능 있는 동료가 많다. 나는 재능이 부족하니까 남보다 작품 연습에 쏟는 시간이 많고 고심하는 시간이 길다. 거짓말 못하고 매사에 성실하게 살자는 게 내 인생관이다.


연기자는 어릴 때부터 꿈꾼 것인가?

아니다. 아버지가 왕십리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지만 가난하게 살았다. 어릴 때는 화려한 꿈보다 막연히 돈을 벌고 싶었다. 제대 후 진로를 두고 고심하다가 다니던 대학(성균관대 국문과)에 복학하지 않고 아나운서가 되려고 충무로에 있는 학원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연기자 교육과정도 있었다. 차츰 그쪽으로 관심이 쏠려 있을 때 드라마센터(서울예대의 전신)에 연극아카데미가 생겼다. 동랑 유치진 선생에 대한 존경심도 있어서 그곳에 입학했다.


당신은 수재들이 들어가는 경기고 출신이 아닌가?

서울 변두리에 있는 동명초등학교를 다녔지만 늘 수석을 했다. 졸업 때 배재중이 멋있게 보였지만 담임선생의 권유로 경기 중에 응시했는데 졸업생 3명중 두 명이 입학했다.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를 지원했다가 낙방해 후기대에 진학할 때 국문과를 택했지만 문학에 대한 뚜렷한 열정도 없었고 술 마시며 담배 피우느라 학업에도 정신을 쏟지 못하다가 2학년 때 도망치듯이 군대에 들어갔다.


연극배우로 국립극단 단원까지 하다가 탤런트로 활동무대를 옮긴 계기는?

드라마센터를 거쳐 동랑레퍼터리, 실험, 자유, 광장, 산하극단 등에서 활동하고 1969년부터 72년까지 국립극단에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 이전에 KBS 탤런트 공채 6기로 들어갔으나 솔직히 사극에서 칼이나 들고 문이나 지키는 역만 몇 편하다가 그만두고 하와이 동서문화센터로 갔었다. 그곳에서 돌아와 국립극단에 입단한 것인데 71년에 국립극단 작품을 준비하던 곳으로 KBS드라마 프로듀서였던 임학송 씨가 찾아와 <허생전> 출연을 제의해왔다. 마침 그 전날 술집에서 그를 만나 트러블이 있었던 사람인데 다시 시비를 벌이려고 찾아온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TV와 잊을 수 없는 운명의 고리를 다시 만들게 된 것이 임학송 프로듀서를 만나면서였다.



공백기가 없는 연기자로 알려져 있다. 완전 주연은 아니지만 실화극장 <야간비행>후 출연드라마에서 모두 주연 못지않게 비중 있는 배역들이다. 역시 재능보다 노력 덕분인가?

사실 쉬지 않고 활동하게 만든다. 도중에 배역을 받아 들어가도 자꾸 비중이 나한테로 쏠려올 때가 많다. 아마도 코믹하면서 좀 괴팍한 캐릭터 같은 것은 내가 어울리는지 그게 개성인지 쉴 틈이 없다.


본명은 신순기(申淳基)인데 신구(申久)라는 예명의 작명에는 특별한 일화가 있는가?

동랑 선생이 지어주셨다. 순기라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하셔서 예명을 부탁드렸으나 한 달이 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느 날 사무실로 호출하시더니 신구라는 이름을 내놓으시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워낙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어렵게 생각했던 분이라 이유도 묻지 않고 그대로 사용을 했다.


연애시절과 부인과 결혼했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아내(당시 신구는 4살 연하의 부인 하정숙 씨 사이에 7살 아들 경현군을 두고 있었다)와 1974년에 결혼했다. 열렬한 연애는 아니고 그저 6년가량 서로 바라보는 연애를 했다. 만나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니까 어느 날 훌쩍 디자인공부를 계속한다며 언니가 사는 미국으로 떠났다. 가까이 살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사라지니 허전하고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매일 전화로 설득하고 편지를 보내 돌아오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곧 결혼하지 못하고 또 넘어가다가 1년이 지나 가까스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유는 경제적인 사정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왕십리에서 힘들게 살았다. 대신 결혼 두달 만에 허급지급 서둘러 아기를 낳았다. 하하하.


부인이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분처럼 생각된다.

내가 보수적이고 좀 이기적인 데가 있어서 똑똑한 여자보다 어머니처럼 마음씨가 곱고 참을성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 아내는 모두가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못마땅한 면도 있지만 밤늦게 술친구 끌고 와도 다음 날 해장국 끓여주고, 마디가 분명한 성격이 좋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본적은 없는가?

눈에 대해 불만이 많다. 쌍꺼풀이 곱게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이 부럽다. 내 눈은 아무리 크게 떠도 생기가 없이 처져 있어서 스스로 미남 탤런트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조건이 부족해서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사는 거다. 달콤한 애정물의 연인 역은 출연 기억이 없다. 민지환이는 드라마센터 동기생인데 눈이 크고 훤칠해 연애물을 많이 했지만 이제 나는 나이도 있어서 젊은 연인 역을 꿈 꿀 수도 없다.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산다는데 주로 무엇을 어떻게 어떤 노력을 하는가?

연기자는 모든 점에서 많이 알고 몸도 유연해야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현대무용도 배우고 탈춤에 테니스, 조깅 등으로 몸을 풀고 체력을 유연하게 만드는데 신경을 썼다. 물론 배역을 소화하기 위한 그때그때의 준비와 노력은 당연히 최선을 다한다.


정말 좋아하는 역이나 언제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역이라면?

나의 분위기 때문인지 나이보다 많은 노역을 많이 한다. 젊은 역이라 해도 이색적인 캐럭터라면 내가 주로 물망에 오른다. 야외 촬영장에서 만나 처음 본다는 팬들은 내 실물이 젊게 보인다고 말한다. 나이 많은 역을 많이 해서 그런 이미지가 심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역시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지금의 역들이 그래도 몸에 맞는 역이다.



신구는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역 속에서 살고 있다. 나이로는 한참 늙었지만 연기자 신구의 모습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늙어도 늙지 않는 연기자로 변함없이 영화 관객들과 TV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언젠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CF 유행어를 만들어 낸 일이 있지만 한평생을 한결같이, 쉬는 틈이 없이 좋은 연기자로 살아온 진정한 비결은 그 자신밖에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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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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