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어느 판사와 총장부부의 순애보
자살한 어느 판사와 총장부부의 순애보
  • 김두호
  • 승인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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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갈라놓지 못했던 부부의 사랑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1977년 봄 사회면 뉴스에 충격적인 사건이 보도됐다. 현직 판사의 부인이 집안에서 타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판사의 처조카가 수사진의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나고 나중에 가정부의 입에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잦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때 그 판사를 만났다. 서울 태평로에 있는 조그마한 커피숍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취재에 응해 준 그는 시종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남편입니다. 우리 부부는 어느 부부보다 사이가 좋았습니다. 가정부가 생각 없이 한 거짓말이 진실로 왜곡되어 추측기사를 함부로들 쓰고 있어요. 우리 부부사이에 가정부가 불화의 원인인 것처럼 황당한 추측까지 만들고 있어요. 나는 스스로 법을 다루는 판사라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임무에 충실하고 인격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는데 점점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들을 보면 참을 수 없습니다.

처조카 아이까지 사건에 말려들고 지금 머리가 깨어질 것 같습니다. 음식이 먹히지도 않고 잠도 못자고 있어요.”


그의 초췌했고 초조한 모습들이 답답한 심경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로부터 20일후 그를 두 번째 만난 것은 그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그의 요청에서 비롯됐다. 처음 만났던 같은 장소에서 친구 한사람과 기자를 기다리던 그는 그사이 메모지에 시를 쓰고 있었다. 아내를 생각하며 썼다는 시를 그는 쉽게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앞산에 진달래 뒷산에 개나리 / 맑은 물 흐르는 외딴마을에 / 영산홍 향기 속에 고이 자랐네 / 깊은 산속 그윽한 백합화같이 / 청순한 한 떨기 고이 피어서 / 사랑과 믿음으로 그이 맞았네 / 행복의 꽃수를 놓아가면서 / 지아비 섬기며 딸 아들 길러 / 모진 바람 백합화 떨어져갔네 / 영원을 달리는 대지 위에 / 초라한 무덤 하나 / 광활한 우주 속에 단 일곱 평 / 그러나 나에겐 영원 / 나에겐 우주 / 꽃의 아름다움도 꿈의 화려함도 / 당신 초라한 무덤 속에 모두가 있어>

그는 그로부터 정확히 22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아내가 잠든 경기도 용인의 공원묘지로 떠났다.




1981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저명한 교수와 의학박사 부인이 동반자살한 사건이 대구에서 발생해 충격을 남겼다. 국립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한 부군은 경제학자이고 부인은 의사였다. 다른 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하고 대구에 있는 대학으로 옮긴 부군이 경제학을 강의하던 강단에서 심한 복통으로 입원, 장기간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던 부인이 부군과 함께 어느 날 죽음의 길을 떠났다.


부군의 병세에 절망한 부인이 부군이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하면서 동반 자살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진의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평소에 ‘함께 살다 함께 죽자’는 말을 나누고 살만큼 부부의 금실이 별나게 좋았다는 주변의 이야기들에 차이가 없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의 친정어머니는 딸이 죽기 얼마 전에 “우리 내외의 수의를 한꺼번에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해 가족들이 함께 흐느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부부는 헤어져 살 수 없다는 생각을 나누고 함께 떠나기로 했던 것 같다.


아내의 죽음을 비관하며 아내를 뒤따라 간 판사나 교수 부부의 동반자살은 동기와 사건 내용이 다르지만 다같이 부부의 애정관이나 전통 윤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일어났다. 지금처럼 만나기도 쉽고 헤어지기도 쉬운 부부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실감할 수 없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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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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