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해체적 재구성을 위하여
[건축 에세이] 해체적 재구성을 위하여
  • 류춘수
  • 승인 200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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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정보시대의 건축인이 준비할 것들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이제 달력 한 장만 넘기면 또 한 해가 저물고 95년 새해가 온다.

그러면 내 나이 오십줄에 들게 되며 지나간 세월처럼 오는 세월도 빠르다던 쉰다섯이 되는 2000년, 21세기도 순식간에 닥칠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의 반세기는 즉, 내가 살아온 동안의 세월은 실로 서구의 백년 이상을 압축해야 할 숨가쁜 역사였다.

유년기의 십년은 아직 전통적 농경사회의 모습이었으며 분단과 전쟁의 시련기였다. 다음 십년인 스무살까지(1956-1966) 독재와 혁명과 월남 파병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계절에 봉화 안동 대구로 상승하는 중소도시에서의 성장시대를 마감하고, 마침내 대학 진학을 서울에서 시작하여 졸업 후 ‘공간’에 정착하기까지의 십년은 국가 중흥의 기틀을 다지던 시대였다.

새마을운동의 성공과 중동 진출의 시대가 열리던 그때 우리는 비로소 산업시대를 맞이했던 것이다. ‘가능성있는 후진국’으로 수십년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한 준비의 시대였으며, 나 또한 건축인으로 장래의 가능성을 점검하던 세월이었다.

그리고 삼십대의 십년 동안(1976-1985) 실로 우리는 경제중흥의 시대를 열었고 나 또한 몸담은 ‘공간’의 전성시대로 불철주야 젊음을 오로지 제도판에서 불살은 세월이었다.

86년 스승 김수근 선생은 가시고 ‘이공’을 만들어 독립한 지도 벌써 만 8년이 지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상징하듯 ‘세계 속의 한국’은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10여명으로 시작한 ‘이공’은 조직이 열배로 늘어나고 온 나라가 국제화를 외치기 전부터 나름대로는 해외 프로젝트 개척에 노력한 세월이었다.

이제 양보다는 질이, 획일성보다는 다양한 개성이 중요시되며 국가적 통제보다는 저마다의 자율경쟁으로 맞서야 하는 세계화의 개방시대를 맞고 있다.

정보화 사회가 몰고 올 탈국경적이며 시간과 공간적 제한개념이 판이하게 변한 탈시공적인 시기에 건축가와 그 집단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국가나 개인이나 세계사적 시대의 조류에 한번 뒤지면 회복하기 어렵기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세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인류 문명사를 가속, 변형시켜가기에 간신히 얻은 우리의 추진력에 더욱 불을 지펴야 한다.

노동집약적인 대량생산도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다양하고 완성된 개체’들이 ‘전체와 통일된 가치관으로 묶여 조직화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 ‘해체를 통한 결속’의 방식으로 등뼈처럼 유연한 구조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오십대의 출발을 위한 최근의 사고적 결실임을 밝힌다.

그 첫 번째 구상이 ‘이공’이라는 조직 속에서의 해체작업이다. 독립체산제가 아닌, 선별 건축사마다 실제적 법적 독립을 시켜 스스로 질적 완성의 길로 가게 하며 동시에 한 깃발 아래 뭉쳐 국내외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자료와 정보는 공유하되 독자적 건축주를 발굴하며 대형 프로젝트는 서로 협력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내 자신이 우선 운영보다는 디자인에 몰두하는 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갖겠다는 것이며 아틀리에 식의 장점과 대형조직의 경쟁력을 함께 누리겠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보다 중요한 두 번째 구상은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시간과 장소조차 분리하겠다는 혁신적인 발상이다. 조직이 비교적 대형화된 지금 나의 하루 일과를 분석해보면 심각한 문제를 알 수 있다. 하루 열두 시간을 회사에 있어도 스케치에 전념하는 시간은 한두 시간밖에 안된다. 결국 밤시간과 일요일에야 겨우 디자인에 임할 수 있으니 이처럼 헝클어진 방식으로는 효율적인 창조적 삶이 될 수 있겠는가.

고향의 깊은 산골에도 전기와 전화는 있으니 팩스와 컴퓨터를 둘 수 있으며 화상회의도 가능하고 외국의 도면을 프린터로 인쇄도 할 수 있는 시대에 더 이상 서울은 내게 창조적인 디자인의 장소일 필요가 없어졌다. 최신 시설을 갖춘 산촌에서의 두 주일이면 서울 본사에서의 두 달보다 훨씬 나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자고 먹고 생각하고 일하는 곳이 구별되지 않는 농경시대에서 이제는 차세대의 통신과 교통의 혁명으로 집적된 도시의 기능을 다시 보다 나은 자연환경인 농촌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시대의 이농현상으로 농촌은 텅 비어 가지만 아마 다음 세기 초 첨단정보시대에는 다시 산촌으로의 회귀현상이 보편화될 것을 확신하기에 남보다 먼저 이러한 혁신적인 구상을 실천에 옮겨 급변하는 시대의 조류에 미리 적응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요코하마 여객선 터미널의 국제 현상 설계에 밤낮 몰두하면서 낮시간이 뒤엉킬 때마다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일하는 장소와 시간, 조직의 ‘해체와 융합’을 하루라도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결심이다.


**이 글은 1994년 ‘이공건축’에 게재됐던 글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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