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건축 에세이]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 류춘수
  • 승인 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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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재료로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관악산 기슭에 촘촘히 밀집한 서울의 전형적인 주택가를 내려다보며 건축가와 일반 서민주택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저 집들을 다 우리 건축사가 설계했단 말인가. 붉은 벽돌, 슬라브 끝에 달린 이상한 눈썹 지붕과 높은 담장... 달동네가 아닌 이른바 고급 주택가라도 거의가 비슷한 저 볼품없는 집들이 모두 건축사의 손으로 설계, 허가, 감리되었음이 믿어지질 않는다.

제대로 된 주택이 참으로 드물다는 것은 집을 설계할 줄 아는 건축사, 즉 건축가가 그만큼 희귀하다는 얘기다. 설계를 직업으로 하는 수천 명의 건축사의 한 사람으로서 우선 부끄러운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나 미래에도 수백만 호의 주택을 모두 능력있는 건축가의 손으로 다 설계할 수도 없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평균적인 주거문화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작고 저렴하게 지으려는 서민주택이라도 본인에겐 필생의 투자다. 그래서 그 집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 집을 짓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전문가로서의 사명감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 보면 마땅히 설계를 맡길 건축가를 만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믿고 맡길 만한 시공자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른바 구청 앞의 허가 전문 건축사무소에 맡기면 평당 10만원도 안 되는 싼 설계비로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 도면으로는 절대로 좋은 집이 될 수 없고 도면에 의한 공사비를 정할 수 없으니 집장사가 날림으로 지어주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다.

소위 유명 건축가를 찾아가면 최소한 공사비의 1할이 넘는 설계비를 줘야 하고 설계 기간도 3~4개월 이상 걸린다. 건축주 돈으로 연습하듯 공사비가 많이 들어 보이는 이상한 모양을 고집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도 없고...도무지 누구에게 설계를 맡겨야 하나?

건축가의 입장에서도 작은 규모의 주택 설계는 실제로 고통스런 딜레마다. 큰 빌딩의 설계보다 일량은 오히려 많고 설계비는 10%도 안 되니 직업적인 사명감 없이는 맡기 어려움을 건축주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서민주택이라고 값싼 재료로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블록과 벽돌, 합판과 알루미늄 창호, 벽지와 장판지...이것이면 최고의 집을 만드는 데 추호도 부족함이 없는 재료들이다. 나쁜 집은 오히려 비싼 재료들을 남발한 호화주택에 더욱 많을 수도 있다.

수입 재료와 비싼 가구가 좋은 집의 필요조건조차 아님에도 충분조건으로 착각하는 건축주도 세상에는 많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아는 건축주의 집은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고 한다. 간섭이 심하니 건축가는 결국 소피아 로렌의 입술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코를 합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묏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다니...’ 쉬운 낱말로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봄길’을 노래할 수 있듯이 건축가만이 평범한 재료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후배 건축가 승효상의 유명한 작품인 ‘수졸당’의 주인은 <나의 문화답사기>의 유홍준이다. 좁은 땅에 저렴한 공사비로 이룩한 이 집의 소박하며 깊고 충격적인 아름다운 공간은 가히 훌륭한 건축가와 안목 있는 건축주의 행운의 만남이 빚은 이 시대의 귀감이다. 집을 지으려는 서민과 부자는 물론 건축가들에게 꼭 가보길 권한다. 좋은 집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훌륭한 건축주가 혹 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원주 근교 산기슭의 40평 남짓한 집의 주인이었던 작가 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내게 했던 말씀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제가 뭘 압니까? 그저 건축가 선생께 맡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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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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