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랑, 탑-임실 용암리 석등
무너진 사랑, 탑-임실 용암리 석등
  • 이 달
  • 승인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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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굵고 의연한 장수처럼 버티고 서서 / 이달



[인터뷰365 이달] 막 도착하여 차 문을 여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풍날 보물찾기 하듯
소박한 마을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간 마음은 순간
차갑게 내려앉았다.




거대하다, 생각보다.
애써 찾아 올 사람 드물 것 같은 자리에 거대한 석등은 의연한 장수처럼 서있었다.
우리나라에 남은 석등 중에 두 번째의 크기라 한다.
그런가... 그렇군.

하지만 과연 절제인지, 그저 미치지 못함인지
근엄하기보다는 듬직한 장수의 분위기
간결하고 선이 굵은 깔끔한 성품의 무인 같다.




굵은 허리 다부진 어깨 큼지막하고 두터운 발
이렇듯 거대한 등에 불을 밝히던 절집은 얼마나 장황하게 펼쳐진 모습이었을까...
어디서 어디까지 팔각 창으로 나오는 불빛이 퍼졌을까
저 논, 저 산...그려보는 눈길이 아스름하다.

빗방울은 굵어졌다.
흐린날의 절터... 비 내리는 폐사지
그 비감은 진정 즐길 만하다.
이렇게 호젓하고 쓸쓸한 시간은 급작스레 찾아오지. 예고 없이 기대 없이


닳고 끊어진 채
엉성히 복원한 계단이 처량하게 길을 인도한다.
그리고


아, 이런!
계단을 살피며 우박 같은 빗방울 사이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상심의 몸체. 깊은 상심.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지는데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너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너져 내린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거냐
저 석등이 저렇듯 굳게 서 있는 것은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구나
사진을 찍기가 미안하여, 샅샅이 뜯어보기가 민망하여
그냥 빗줄기에 젖어가는 탑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되게 불어 카메라가 흔들렸다. 천둥소리가 쩍 갈라졌다.


가까이 있던 마을 정자에 몸을 피하고 쳐다보니
한 프레임에 잡힌 저 둘은 아까보다 외롭지 않아 보인다.
천년 전에 못다 흐른 눈물이, 내 마음을 적시던 빗속에선 그리도 처연하더니...
탑을 보고 이렇듯 마음가짐 어렵기는 또 처음이다.


빗속에 차를 돌려 가는데, 마을을 다 빠져 나오기도 전에 비는 그치고
돌아보는 눈에는 정갈해진 지붕 몇 고요히 잡힐 뿐
젖어 있는 석등이
무너져 내린 사랑을 지키는 자리는 어디인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면서 참 희한한 기분이다.
문풍지에 뚫린 구멍으로 먼 시간을 훔쳐본 기분이다.



임실용암리석등 보물 267호. 통일신라 중엽의 절 중기사 터에 남은 것으로 상륜부가 없어졌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다. 중기사 관련 기록은 분명하지 않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크다. 화려하지 않은 섬세한 조각들이 굉장히 매끈하고 조형미가 출중하다. 다만 그 이상의 울림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무너진 탑은 13층 탑이었다는 기록이있다는데 정확하지 않고 복원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저 탑이 영화를 누리던 시절엔 과연 볼 만하였으리라 짐작되는 풍모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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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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