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되기 위해-웨스 볼랜드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되기 위해-웨스 볼랜드
  • 이근형
  • 승인 200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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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 비즈킷 벗어나 마릴린 맨슨과 손잡아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림프 비즈킷의 전성시대를 알린 노래 Nookie를 들어보면, 기타리스트 웨스 볼랜드(Wes Borland) 의 펑키함 넘치는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물론 전체적인 곡의 특성상 웨스 볼랜드가 헤비하게 밀어붙이는 파트가 많지만, 프레드 더스트가 랩핑을 던지는 기본 골격에서는 그의 랩핑에 살을 덧붙이는 펑키한 기타 주법을 들려준다. 그렇게 웨스 볼랜드는 랩 메탈의 정점에 서있는 림프 비즈킷에 철저히 맞춰서 살아왔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웨스 볼랜드의 개인 생활은 생각지도 못했고, 오로지 림프 비즈킷의 이름 안에서 움직이는 보통의 리드 기타리스트였을 뿐이었다.

여기서 평단에서는 림프 비즈킷 3집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 Dog Flavored Water에서 들려지는 웨스 볼랜드의 기타 리프를 일컬어 “스래쉬 메탈, 혹은 인더스트리얼 록 같은 냄새가 난다” 며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문장에는 당시 2000년만 하더라도 결코 ‘웨스 볼랜드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웨스 볼랜드의 기타 주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그만큼 림프 비즈킷이 자아내는 록음악이 한층 다양해졌다는 일종의 칭찬이었다. 3집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 Dog Flavored Water는 림프 비즈킷 전성시대의 절정기였고, 그 어떤 인터뷰에서도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었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프레드 더스트 / 웨스 볼랜드 조합이 세계 록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프레드 더스트와 웨스 볼랜드의 불화(양강 체제에서의 기싸움, 음악적 견해 좁히기 실패 등)가 일어나며 웨스 볼랜드는 3집 발매 후 얼마 안있어 림프 비즈킷을 탈퇴했다. 웨스 볼랜드는 탈퇴를 하며 마치 림프 비즈킷에게 똑똑히 들으라고 “돈만 밝힌다” 라며 일침을 놓았다. 이것은 림프 비즈킷을 나락으로 빠지는 단초였다. 웨스 볼랜드의 파워풀한 기타 사운드를 잃은 림프 비즈킷은 날개를 잃어버린 새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스 볼랜드가 림프 비즈킷을 탈퇴한 이유와, 그가 림프 비즈킷을 향해 “상업적이다” 라고 비판을 가한 이유에 대해 말이다. 먼저 가장 단순하게 림프 비즈킷을 탈퇴한 이유는 프레드 더스트가 맨날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겠고, 이제서야 드러나는 이유이지만 핵심이 되는 문제는 바로 ‘랩 메탈의 포화 상태로 인한 쇠퇴, 그리고 웨스 볼랜드의 현명한 대처’였다고 말이다.


그렇다, 림프 비즈킷이라는 슈퍼 밴드의 등장으로 인해서 랩 메탈의 순수한 음악성은 사라졌다. 림프 비즈킷이 내놓는 음반마다 록 차트 상위권을 달리고, 또한 인터넷 시장 역시 림프 비즈킷이 주물럭거리기 때문에 수요자들의 끊임없는 음원 수집과 거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는 랩 메탈이라는 장르를 순식간에 ‘돈이 되는 음악’ 으로 만들어버렸다. 바로 그 원인이 림프 비즈킷의 거대화, 거기에 뒤따르는 지나친 상업성에 있었다.

림프 비즈킷은 힙합과 록을 잘 섞었다라고 포장을 해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새로운 시도로 하여금 돈을 긁어모으는 행위였다. 어찌보면 랩 메탈의 정상 림프 비즈킷이 결국 그 장르를 쇠퇴하게 한 원인일지도. 그래서 웨스 볼랜드는 미리 앞을 내다보고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나왔을 뿐이다. 인더스트리얼 록으로 음악적 지향점을 바꿨다는 분명한 이유와 함께 말이다.


탈퇴의 중점 (1) 웨스 볼랜드가 영향을 받은 음악

웨스 볼랜드가 림프 비즈킷을 탈퇴한 이후의 이야기들을 점검해보기 전에, 그가 영감을 받은 음악 및 거기에 뒤따르는 웨스 볼랜드의 음악적 결과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웨스 볼랜드는 기타를 정식적으로 배우기 전까지, 여타 록 아티스트들의 유년기와 다를 바 없이 메탈리카 같은 헤비메탈 그룹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 역시 프레드 더스트와 마찬가지로 메탈리카 예찬론자였으며, 림프 비즈킷의 공연에서 시간이 날때마다 Master Of Puppets 등의 메탈리카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그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메탈 뮤직을 베이스로 깔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 웨스 볼랜드가 뉴 메탈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랩 메탈, 펑크 메탈(Funk metal) 등의 흑인 음악과 밀접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펑크 록그룹 프라이머스(Primus) 의 공이 가히 컸다. 웨스 볼랜드는 특히나 프라이머스의 기타리스트 레스 클레이풀(Les Claypool) 을 존경했는데, 레스 클레이풀은 프라이머스의 음악에서 그루브를 느낄 수 있는 펑키한 기타 주법을 덧붙여서 펑크 록의 대부로 불리우는 인물이다. 웨스 볼랜드가 랩 메탈의 넘버원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레스 클레이풀에서 영향을 받은 그루브감 넘치는 기타 주법에 포인트가 있었다.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웨스 볼랜드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기타리스트라는 직업 외에도 ‘행위 예술가’라는 좀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행위 예술가라는 직업을 명함에 달 수 있을 정도라면 그 분야에 도통해야 할텐데, 웨스 볼랜드는 록계에서 최고로 인정해주는 퍼포먼스의 달인이다. 림프 비즈킷 시절 꽃을 피웠는데, 그는 온 몸을 검은색 페인트로 칠한 다음 고릴라 혹은 악마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문자 그대로 ‘빠짐없이’ 무대에 올라섰다. 더해서 시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검은색’ 서클 렌즈까지 끼며 기괴한 외모로 대중들 앞에 섰다. 웨스 볼랜드의 음악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뜬금없이 그의 복장이나 퍼포먼스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여기서 바로 인더스트리얼 록과의 연계가 맺어지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얼 록은 사실상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의 주도권에서 움직여진다. 그가 이 장르의 최고봉에 올라 지금까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만드는 족족 인더스트리얼 록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실 록계에서 마릴린 맨슨을 빼놓고 퍼포먼스 혹은 행위 예술의 달인을 언급할 수가 없는데, 마릴린 맨슨은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여성용 원피스, 혹은 이보다 더 수위가 높은 티 팬티 복장까지 하고 나오니, 가뜩이나 메이크업도 부담스러운데 복장까지 이러니 어떻게 감히 그를 제외하고 퍼포먼스를 논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마릴린 맨슨과 웨스 볼랜드의 공통분모(행위 예술로 일가견이 있는) 가 생기는 것일테고, 그래서 미리 밝히지만 지금 현재 웨스 볼랜드는 인더스트리얼 록의 마릴린 맨슨 밴드 소속의 리드 기타리스트다.




이렇듯 웨스 볼랜드는 림프 비즈킷 후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 메탈 등에서 유래된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 이라는 장르에 완전히 매진한 상태이다. 인더스트리얼 록은 녹음된 레코드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각종 전자음 샘플링, 그리고 기타리스트가 계속 반복된 기타 리프를 주입시켜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흐르는 양상이 주요 포인트다. 이런 인더스트리얼 록은 웨스 볼랜드처럼 뉴 메탈 밴드에 소속되어있던 몇몇 아티스트들이 랩 메탈의 종말과 함께 다른 길로 돌아설 때, 가장 유용하게 갈아탈 수 있었던 장르 중 하나였다. 평단에서는 인더스트리얼 록과 얼터너티브 메탈에서 비슷한 점을 주목하는데, 이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하드코어 뮤직과 부분적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탈퇴의 중점 (2) 스스로 혼자 힘으로 일어서려는 마음

웨스 볼랜드는 림프 비즈킷 탈퇴 직후 잇더데이(Eat The Day) 라는, 자신의 첫 번째 솔로 프로젝트를 꾸몄다. 이를 두고 림프 비즈킷은 2003년 앨범 Results May Vary의 수록곡 중 Eat You Alive를 통해, 잇더데이 소속의 웨스 볼랜드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가사를 써내려가기도 했다. 아무튼 웨스 볼랜드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잇더데이를 유지시켰으나, 결국 별다른 음악적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웨스 볼랜드는 황급히 잇더데이 프로젝트에 끝을 내리고, 1998년부터 제대로 멤버들을 모아서 모의 실험했던 두 번째 프로젝트 빅덤페이스(Big Dumb Face) 를 내놨다. 빅덤페이스는 자신의 친동생인 스캇 볼랜드(Scott Borland) 를 빅덤페이스의 멤버 리스트에 올리는 등, 최선을 다해 빅덤페이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밴드 Duke Lion Fights The Terror를 내놨다.

빅덤페이스는 코믹한 보컬과 전체적으로 마치 서커스 유랑단을 연상시키는 브라스 밴드 삽입 및 흥겨운 멜로디로 얼터너티브 메탈 및 인더스트리얼 록의 새로운 장을 열려고 했다. 물론 이런 도전은 웨스 볼랜드라는 희대의 인물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아이디어인 만큼, 객관적으로 보자면 꽤나 신선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팬들 및 평단의 반응은 말 그대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 누구도 웨스 볼랜드의 두 번째 프로젝트 빅덤페이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평단에서는 “서커스 유랑단처럼 밴드를 꾸며서 이상한 음악을 조장한다” 라는 아주 기분 나쁜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러면서 웨스 볼랜드의 네임 밸류 및 그의 음악적 취향에 뒤따르는 결과물 전체가 격하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웨스 볼랜드는 림프 비즈킷 시절, 음악적으로 상당히 림프 비즈킷 내에서 한 목소리 했다. 물론 프레드 더스트의 술술 넘어가는 랩핑 및 그의 작사, 작곡 능력에 림프 비즈킷이 많은 빚을 졌지만, 웨스 볼랜드의 천재적인 ‘하드코어용’ 기타 리프 제작과 사이키델릭 록, 인더스트리얼 록에서 영향 받은 박식한 음악적 지식 역시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웨스 볼랜드의 이러한 능력이 결국 프론트맨 프레드 더스트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었다. 웨스 볼랜드는 자신의 능력이 결코 누군가에게 밀릴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프레드 더스트만큼의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했기에 프레드 더스트 본인과 트러블이 생긴 것이고, 림프 비즈킷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래서 잇더데이와 빅덤페이스를 통해 혼자의 힘으로 팀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대중 앞에서 피력했고, 웨스 볼랜드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가늠해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 그 두 가지의 프로젝트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웨스 볼랜드는 이러한 실패를 통해, 자기는 어느 밴드의 일원으로 들어가 2인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낫다고 깨닫게 되었다. 물론 웨스 볼랜드가 림프 비즈킷 시절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나, 프로듀싱 및 밴드의 음악적 조력자 모으기에다가 랩 메탈 특유의 통통 튀기는 아이디어를 발산한 것은 우리가 잘 알듯 ‘아이디어 뱅크’ 프레드 더스트의 몫이었다. 웨스 볼랜드는 미안한 말이지만, 소량의 의견을 제시하고 팀에서 리드 기타로 2인자를 맡는 것이 제격이었다.




탈퇴의 중점 (3)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되기 위해


이후 웨스 볼랜드는 빅덤페이스라는 실패작에 빨간 줄을 긋고는, 2002년 결성된 하드코어 밴드 프롬퍼스트투래스트(From First To Last) 의 멤버로 영입되었다. 프롬퍼스트투래스트에서 잠시간 활약한 다음, 다른 밴드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의 이름으로 솔로 선언, 본격적으로 인더스트리얼 록과의 조우에 힘을 다했다.

인더스트리얼 록에서 빠질 수 없는, 원맨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와 수많은 합동 작업을 펼쳤다. 웨스 볼랜드와 나인 인치 네일스의 만남은, 곧 웨스 볼랜드로 하여금 인더스트리얼 록의 마니아로 빠지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웨스 볼랜드는 얼터너티브 록 슈퍼밴드 어 퍼펙트 서클(A Perfect Circle) 등의 활동을 하며 나인 인치 네일스와 음악적 듀오가 된 대니 로우너와 특히 친했다.

사실상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 와 대니 로우너는 웨스 볼랜드의 인더스트리얼 록에 대한 비교적 빠른 음악적 이해도와, 거기서 비롯되는 훌륭한 기타 리프에 흡족해하며 그와 강력한 연계를 맺었다. 역시 웨스 볼랜드도 나인 인치 네일스가 자신을 인정해주니, 거기에 부응하도록 수많은 피처링과 음악적 지원을 해가며 조금씩 인더스트리얼 록계에서도 웨스 볼랜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리하여 나인 인치 네일스는 2003년 ~ 2004년 즈음에 기타를 맡아주던 로빈 핑크의 탈퇴를 대신해, 웨스 볼랜드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기타를 맡아달라고 요청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웨스 볼랜드는 2004년부터 프레드 더스트와 화해 무드를 조성해가며 약 3년여 만에 림프 비즈킷에 재가입, 웨스 볼랜드 재가입 후 처음으로 내놓는 EP 앨범 The Unquestionable Truth, Part 1 (2005) 을 내놨다. 평단에서는 전자음을 중요시여기고, 반복된 패턴에다가 헤비한 힘을 실은 웨스 볼랜드의 ‘전혀 색다른 림프 비즈킷 기타 사운드’ 에 극찬을 했으며, 곧 그것이 림프 비즈킷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웨스 볼랜드는 이 작품 이후 또다시 림프 비즈킷을 탈퇴했다. 프레드 더스트와의 원활한 합의가 안 이뤄졌기 때문이다.

림프 비즈킷은 또다시 오랜 침묵으로 돌아갔고, 웨스 볼랜드는 2005년 재탈퇴 후 자신의 기타 주법에 상당히 많은 발전이 가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후, 완전히 인더스트리얼 록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웨스 볼랜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림프 비즈킷 그 누구도 월드 투어 같은 라이브 공연을 원하지 않아서였다”라는 변명 비슷한 재탈퇴 이유를 밝혔지만, 사실상 그의 마음속에는 림프 비즈킷을 잊고서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되기 위한 메시지에 불과했다. 곧바로 그의 마지막 성공적 프로젝트가 될지도 모르는 블랙 라이트 번스(Black Light Burns) 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블랙 라이트 번스는 앞서 언급했던 나인 인치 네일스의 대니 로우너가 정식 멤버로 가입, 인더스트리얼 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2007년 1집 Cruel Melody를 발매했다.


하지만 또다시 평단에서는 비교적 날카로운 지적을 해가며 웨스 볼랜드의 솔로 프로젝트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블랙 라이트 번스는 주지하다시피 리드 보컬이 무려(!) 웨스 볼랜드다. 보컬 능력이 뒷받침 되지 않은 웨스 볼랜드가 무리하게 리드 보컬과 기타를 맡은 셈이다. 그래서 평단에서는 “멜로디를 파악하지 못하고 보컬이 따로 노는 격” 이라며 비판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암울한 이미지 속에서 강력한 기타 리프를 바탕으로 인더스트리얼 록 및 코어 뮤직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이전 프로젝트인 잇더데이나 빅덤페이스보단 많이 발전했다. 대니 로우너의 지원사격이 있었음에도 실패한 것을 보면, 확실히 웨스 볼랜드 옆에는 인더스트리얼 록의 지도자가 도움을 주어야 마땅했다.


마릴린 맨슨과 손잡고,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된 웨스 볼랜드


2007년 웨스 볼랜드의 본격 인더스트리얼 록 프로젝트 블랙 라이트 번스는 Cruel Melody 앨범 발매 후 프로모션 투어를 돌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후를 처리했으나, 결과론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대 이하란, 음악적으로는 상당 발전했으나 대중들의 입맛에는 그리 착 감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웨스 볼랜드의 인더스트리얼 록에 대한 사랑이 평범하게 끝나나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더스트리얼 록의 마왕 마릴린 맨슨이 위기에 처한 웨스 볼랜드의 SOS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웨스 볼랜드의 마릴린 맨슨 가입을 공식 선언했다.



마릴린 맨슨은 밴드 멤버들을 이끌고 2008년 8월 우리나라를 찾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서태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록 페스티벌 ‘ETP 페스트 2008’ 에 마릴린 맨슨 밴드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서기로 한 것이다. 프레스와의 공식 인터뷰에서 마릴린 맨슨은 역시 행위 예술의 제왕답게 엄청난 높이의 굽이 달린 구두와 기괴한 복장, 그리고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냥 간단하게 서태지와의 인연, 그리고 ETP 페스트를 맞이하는 소감만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마릴린 맨슨은 돌연 “웨스 볼랜드가 우리 밴드의 공식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라는 폭탄 발언을 던졌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이런 엄청난 소식을 급하게 받아 적고 인터넷에 알렸으며, 그것은 마릴린 맨슨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빠른 시일 내에 공식 보도문으로 완성되는 등, 록계의 슈퍼스타 웨스 볼랜드의 마릴린 맨슨 가입이라는 충격적 소식이 만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웨스 볼랜드의 마릴린 맨슨 밴드 공식적 활동은 ‘영광스럽게도’ 서울 잠실의 ETP 페스트 공연장에서 즉각 이뤄졌다. 물론 웨스 볼랜드가 잿더미에 박힌 악마처럼 코디했기 때문에 많이들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록 마니아들은 “웨스 볼랜드다!” 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해서 웨스 볼랜드는 마릴린 맨슨 밴드의 정규 앨범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투어 멤버로서 역할을 다하게 되었다.

웨스 볼랜드의 지독한 인더스트리얼 록 사랑은, 결국 그 쪽 바닥의 1인자 마릴린 맨슨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마릴린 맨슨은 인더스트리얼 록 계열에서 신인이나 다름없는 웨스 볼랜드에게 손을 내밀은 셈이다. 이제 웨스 볼랜드는 “마릴린 맨슨 밴드 활동에도 불구하고 계속 블랙 라이트 번스를 이끌겠다” 라는 말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물론 마릴린 맨슨 정규 앨범은 녹음하지 않지만, 그 쪽 바닥의 1인자에게서 직접 배우는 인더스트리얼 록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할 것이다. 그래서 평단에서도, 대중들의 의견에서도 웨스 볼랜드가 마릴린 맨슨에게 한 수 배운다면 블랙 라이트 번스의 2집이 더욱 더 알찬 인더스트리얼 록 명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물론 아직까지 웨스 볼랜드가 마릴린 맨슨 밴드 활동을 모두 마친게 아니고, 또한 대니 로우너와의 블랙 라이트 번스 프로젝트 역시 차기작을 발표하는 시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웨스 볼랜드는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이 되었다. 굳이 마릴린 맨슨 밴드라는, 세계적인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고 표면적으로 그런 극찬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엑스재팬(X-Japan) 의 재결성 기념 콘서트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인더스트리얼 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곧 마릴린 맨슨의 눈에 띈 것이고, 그것은 직설적으로 웨스 볼랜드의 인더스트리얼 록 자질이 한 층 약진했음을 증명케 한다.

농담이지만 이렇게 인더스트리얼 록의 제왕 자리에 올라간 웨스 볼랜드가, 최근 에반에센스 기타리스트 테리 발사모(Terry Balsamo) 를 영입해서 다시 5인조의 형태를 구축한 림프 비즈킷과 같은 록 페스티벌의 라이너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참 재밌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마릴린 맨슨 밴드와 림프 비즈킷은 당분간은 같은 록 페스티벌과의 계약을 삼가해야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웨스 볼랜드는 림프 비즈킷과 틀어질대로 틀어졌고, 그는 이미 인더스트리얼 록에 매진하며 림프 비즈킷 멤버들 따위(?) 와는 상종도 안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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