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림역에는 ‘고-스톱맨’이 필요하다
신도림역에는 ‘고-스톱맨’이 필요하다
  • 김희준
  • 승인 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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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시간 8분 동안 느낀 공포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시계를 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오후 6시57분.

지난 월요일 신도림역에서였다. 2호선을 타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계단 주변에 사람들이 검은 양떼처럼 모여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계단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신도림역이지만 그날은 유난히 더했다.

키 작은 아주머니가 필자 앞으로 비집고 서더니 “왜 그런데요, 난 7호선만 타다가 처음 2호선을 타려는데...”하고 발꿈치를 들고 목을 뺐다. 그 아주머니 키로는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되는 어떤 새로운 사실도 볼 수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래로 내려가는 걸 막고 있나 보죠?” 아주머니는 다시 물었다.

그러는 사이 아주 조금씩 움직임이 있었다. 이미 뒤로 몸을 뺄 수도 없게 그 아주머니와 필자는 미세한 움직임의 중간에 서있었다.

잠시후 드디어 저 아래가 보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2호선 승강장이었다. 밑으로 보이는 광경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백개도 넘을 성싶은 눈들이 일제히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2호선 잠실 쪽으로 가는 것과 신촌 쪽으로 가는 것이 마침 거의 비슷한 시간에 승객들을 내려놓았고 여기에 2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 마주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계단에 꽉 들어차있었고, 위에서는 아래로 내려갈 사람들이 아래서는 위로 올라올 사람들이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묘한 공포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만약 누구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넘어질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누군가 ‘묻지마’식 해코지를 하려 들면 예기치 않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싶었다. 예사롭지 않는 기운이 싸아하게 흘렀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고 밀려가는 흐름에 맡기고 있는 그 상황에 모두들 불안하고 불길한 느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시절이 하도 수상한 때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빨리 그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긴장감 때문인지 객기어린 말 한 마디 하는 사람 없었다.

7시5분, 한발자국씩 계단을 딛고 내려와 마침 기다리고 있는 2호선에 올라탄 시간이었다. 겨우 8분이라는 시간이 이리도 길고 공포스러울 수 있다니. 함께 3호선을 탄 한 20대 여성이 바로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다. “오빠, 나야. 나 신도림에서 전철 탔는데 사람들이 장난이 아냐, 너무 무서웠어.” 필자가 느낀 스산한 공포감은 혼자만의 민감한 상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전, 전철 역 가운데 신도림역과 교대역에서 성추행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는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필자가 그날 본 것은 비단 성추행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형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참사 같은 것이 다른 식으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퇴근시간에 한정된 일이라고, 그 시간만 넘기면 괜찮다고 할 일이 아니다. 네거리 교차로에 서로 엉켜 정체를 빚는 차량들에게만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퇴근시간,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간에 안전요원을 환승 통로에 배치해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을 열차 안으로 밀어넣는 지하철 푸시맨이 이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그만 타게 막는 커트맨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하나 더해, 환승역 혼잡을 정리해주는 ‘고-스톱맨’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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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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