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모던 록그룹 콜드플레이는 ‘진화’한다
영국 모던 록그룹 콜드플레이는 ‘진화’한다
  • 이근형
  • 승인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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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Viva La Vida로 예술의 경지에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1997년 1집을 내놓고 영국 브릿팝계에 이름을 내민 스코틀랜드 출신의 록그룹 트래비스는 1집 Good Feeling의 수록곡 All I Want To Do Is Rock을 부르며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것은 록이다”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나중의 트래비스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니, 이것은 영국 모던 록을 브릿팝(Britpop)이라는, 다소 대중적인 요소가 가미된 경멸적 단어로 변모케 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트래비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일단 잠잠한 가운데 펼쳐지는 노래에도 분명 음악성이 존재했고, 그것은 트래비스가 1999년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로 증명했다.


1998년 닻을 올린 영국 런던 출신의 4인조 록그룹 콜드플레이 (Coldplay)는 이런 브릿팝계의 떠오르는 강자 트래비스의 음악을 듣고 자라났다. 모두들 기억하지 않은가. 콜드플레이의 프론트맨이자 리드 보컬 크리스 마틴 (Chris Martin) 이 스스로 이야기하길, “우리는 트래비스의 음악에서 비롯되었으며, 트래비스로부터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 콜드플레이는 자기네 밴드의 네임 밸류에 비해 굉장히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트래비스의 아류 밴드라고 자청하니 대중들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이렇게 화려하지도, 목을 뻣뻣이 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수줍게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며,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있는 슬픔의 감정과 우울함, 그리고 감수성을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있는 힘껏 뽑아낸다. 굳이 크리스 마틴이 저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이렇게 겸손하고, 조용하고, 고요하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크리스 마틴이 그나마 콜드플레이 멤버 중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는 것은. 물론 그의 잘 생긴 외모나, 그가 리드 보컬이라는 점, 그리고 세계적인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의 남편(그것도 연하남!) 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없다. 나머지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콜드플레이의 이름하에 움직일 뿐이다.


트래비스의 아류라 자청하며 1998년 닻을 올려 2000년 데뷔 앨범 Parachutes를 시작으로 영국 모던 록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히트 가도를 달려 온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각종 록 페스티벌의 단골손님이자, 등장했다 하면 헤드라이너 밴드로써 수많은 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다. 콜드플레이가 인터넷상이나 싱글 앨범을 통해 신곡을 뽑아내면, 역시 세계 록계는 동요한다. 이번 2008년 6월 내놓은 그들의 4집 Viva La Vida 역시 세계 각지 앨범 차트 1위를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드플레이는 조용하다. 더 이상의 부가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그냥 대중들의 평가에 맡긴다. 말 그대로 영국 모던 록계의 튼튼한 거목이다.




콜드플레이 - 브릿팝이라는 단순한 장르에 휘말렸던 지난날들


크리스 마틴이 20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악기를 다룰 수 있었다는 사실은, 늦게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후천적 음악성과 노력이 결집하여 결국 성과를 이룬다는 극적인 이들의 형태를 대변한다. 그렇게 콜드플레이는 런던대학교(UCL) 에서 결집되었다. 크리스 마틴이 대중 음악계에 데뷔할 수 있었던 이런 ‘비교적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 느낌은 아무래도 콜드플레이라는 밴드를 더욱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10대부터 음악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앨범 작업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다듬을 것은 제대로 다듬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콜드플레이의 2000년 데뷔 앨범 Parachutes는 정말로 데뷔 앨범치고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대중, 특별히 이야기해서 브릿팝 소비자들은 Parachutes의 등장에 환호성을 질러댔고, 그것은 엄청난 판매고와 함께 2000년 7월 22일부터 28일까지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Parachutes의 발매 당시의 성적표는 중요치 않았다. Don't Panic, Yellow, Trouble 등 콜드플레이 하면 딱 떠오르는 메가 히트곡들이 죄다 Parachutes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콜드플레이는 이 작품으로 200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상>을 수여받게 되었다.


대중은 콜드플레이의 아름다운 선율에 반했고, 평단 역시 콜드플레이를 예의 주시했다. <롤링스톤> 같은 세계적인 음악지에서도 연일 콜드플레이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냈다. 콜드플레이는 이런 대중의 엄청난 기다림과 반응에 보답하듯, 2002년 8월 그들의 2집 A Rush Of Blood To The Head를 내놨다. 역시 이것도 작품 중의 작품이었다. 자아 성찰과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The Scientist,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아름다운 러브송 In My Place,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까와 마찬가지의 시기인 200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상>과 2004년 그래미의 <올해의 레코드상>의 결정적인 주인공이었던 명곡 Clocks가 있었다.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이제 그래미가 인정하고, 세계가 승리의 손을 들어주는 절대적 무언가가 되었다.


역시 2004년 이후 콜드플레이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와 대중의 관심은 그들을 맴돌았다. 하지만 일각에서 계속 콜드플레이를 향해 나쁘게 바라보는 시선을, 콜드플레이 자신들은 어떻게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 부류는 콜드플레이의 작심한 듯한 ‘과욕의 대중성’과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돈벌이 술수로만 평가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콜드플레이의 하늘 찌를 듯한 인기를 시기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군다나 감수성 충만한 콜드플레이를 더 자극했고, 평단 역시 점점 콜드플레이를 평가하기를 “정체된, 보수적인, 낭만적인, 우유부단한” 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영국산 모던 록을 비하하는 말, 브릿팝의 단점이었다. 브릿팝의 단점을 굳이 콜드플레이의 경우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왜냐면 그들의 선배격 밴드인 트래비스나 오아시스, 스웨이드 모두 다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특히 세계 모던 록계를 확실히 휘어잡은 오아시스에 대해 비판의 화살이 마구 날아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과 같은 맥락을 함께 하고, 21세기 브릿팝을 책임질 콜드플레이에게 이런 화살이 안 날아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콜드플레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은 너무 보수적이고, 일반적이고, 게다가 감수성만 추구했다.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것 외에는 그다지.



반성과 자아 성찰의 계기, X&Y


그러나 콜드플레이가 바보같이 이러한 자기네들의 상태를 가만 둘 밴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엄청난 결심을 했다. 이런 형식적인 자기네들의 음악에서 탈피하고, 그래서 콜드플레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대중들에게 더욱 더 유연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하자고 말이다. 2004년 3월, 콜드플레이는 프론트맨 크리스 마틴의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3집 작업에 들어간다고 세계에 알렸고,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콜드플레이의 2005년 3집 X&Y였다. 공식 발표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얼터너티브 록 부문의 상을 휩쓴 콜드플레이였기에 당연 기대치가 엄청 높았다.


그러나 X&Y에 대한 작품의 평가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다. 먼저 이전보다 더 성숙한 록음악을 들려준다며 호평하는 부류, 그리고 대중성을 잃은 채 표류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걱정하는 그룹으로 말이다. X&Y 역시 사람들의 기대치에 비례하여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지만, 이 작품은 결과론적으로 1집 Parachutes와 2집 A Rush Of Blood To The Head보다 대중의 가슴을 후려치는 임팩트가 조금 약했다. 이 앨범에서는 Fix You, X&Y, Speed Of Sound 등이 히트를 쳤다.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진 일렉트릭 사운드, 그리고 달콤하게 들려오는 후렴구를 많이 뺀 듯한 모습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Yellow나 In My Place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단의 일부 반응, 그리고 일각에서는 콜드플레이 3집 X&Y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먼저 콜드플레이가 대놓고 사람 가슴 울리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많이 자제했다는 점, 그리고 뮤직비디오 등을 통하여 추상적인 이미지를 삽입, 무언가 콜드플레이 내에서 자성하거나 자아 성찰하는 모습을 많이 가졌다는 점에서 말이다. 콜드플레이는 X&Y에서 투박한 러브송보다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내면의 그 무엇인가를 더욱 더 많이 부각시켰다. 그래서 대개의 X&Y 트랙 수록곡들은 꽤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며 찬찬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인다. 대중적 멜로디를 신경 안 쓰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 같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콜드플레이의 다음 작품에 대한 하나의 예고편이었다. 콜드플레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대중들을 위한 브릿팝으로 정체된 상태이고, 이대로 계속 대중들의 입맛을 바라는 달콤한 음악만을 만들었다간 자기네들도 콜드플레이라는 거대한 브랜드 네임을 잃을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드플레이는 X&Y를 내놓은 다음, 다음을 기약하며 잠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디스코그래피가 3집에서 멈췄기 때문에, 대중적인 앨범 두 장과 준작 1집이 더해진 반응이었다. 한마디로 “1~2집 잘 나가다가 3집에서 삐끗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콜드플레이에 대한 단순한 평가에 불과했다.



Viva La Vida, 그리고 예술의 경지에 오른 콜드플레이


콜드플레이는 4집을 만들기 이전에, 어느 빈 건물을 하나 빌려서 녹음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숙식도 하며 음악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크리스 마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히 환상적이고, 집중적으로 음악 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고 한다. 이런 콜드플레이 밴드의 만족스러운 녹음 환경은, 그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몰라도 드디어 콜드플레이라는 이름을 ‘브릿팝 밴드’ 에서 ‘모던 록의 거목’ 으로 바꿔주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지금 이 작품을 미리 표현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쨌거나 이 작품은 콜드플레이 일대 혁명이다.


2008년 6월 11일, 콜드플레이는 2005년 이후 3년 만에 4집 신보를 내놨다. 제목부터가 심오하다. Viva La Vida. 우리나라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인생 예찬, 인생 만세‘ 즈음이 되겠다. 콜드플레이는 이 앨범을 내놓기 이전에, 대중들 앞에 맛보기로 앨범 수록곡 Violet Hill을 선보였는데, 이것 역시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과연 콜드플레이 차기작은 무엇일까‘ 하는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결과론적으로 Viva La Vida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동요를 일으키고 있으며, 발매 당시는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Viva La Vida의 동명 타이틀곡 Viva La Vida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콜드플레이와는 너무나도 다른 형태였다. 이전만 하더라도 콜드플레이는 어쿠스틱 기타나 잔잔한 일렉트릭 기타, 혹은 키보드 연주로 인트로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대규모의 스트링 사운드가 인트로의 온 공기를 잠식하면서, 그 스트링 사운드는 끝을 알 수 없는 그 어디론가 계속 퍼져나가는 웅장함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이전 작품보다 더 성숙한 크리스 마틴의 보컬, 그리고 드러머 윌 챔피언 (Will Champion) 의 퍼커션 연주는 거기에 더욱 더 힘을 보태주는 식이다. 인트로부터 사람의 귀를 확 끌어당기고, 그것 역시 달콤한 요소가 아니라 클래식의 형태를 빌린 듯한 “진짜 예술” 이었기에, 그리고 곡의 전개가 너무나도 황홀해서 감동 요소가 200퍼센트 작용했다.


평단에서는 “인트로 8마디만 들어도 황홀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인생 예찬이다”, “콜드플레이의 새로운 모습” 이라며 두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줬고, 대중의 반응 역시 이에 부응하듯 일본 앨범 차트를 제외하고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의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Viva La Vida 앨범의 다른 곡 들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이 타이틀곡 Viva La Vida만 들어봐도 콜드플레이가 얼마나 약진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가사 내용 역시 중세 시대의 영웅을 노래하듯 상당히 고전적이고, 문학적이다. 사랑 이야기를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이런 고전적 형태에 들어맞는 클래식적 음악 접근은 말 그대로 콜드플레이 음악의 혁명이었다.



앨범 재킷부터가 일단 '먹어주고' 들어간다. 멕시코 미술계의 전설적 인물인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의 미술 작품 Viva La Vida를 앨범 제목으로, 그리고 앨범 재킷으로는 프랑스 미술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으로 사용했다. 이것 때문에 한창 음악계에서는 일본 출신의 랩 메탈 밴드 드래곤 애쉬 (Dragon Ash) 1999년 앨범 Viva La Revolution의 앨범 표지와 비슷하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콜드플레이의 음악과의 앙상블이 중요했다. 기존의 고정관념, 핍박, 기성세대를 향해 혁명의 깃발을 내리꽂는 하나의 모션은 이 앨범의 재킷과 너무나도 흡사하게 들어맞았고, 그것은 곧 타이틀곡 Viva La Vida를 상징한다. 콜드플레이는 이렇게 밴드 내면의 탈피를 꾀했고, 4집 작품에서 그러한 노력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콜드플레이는 고로 진화한다


지금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Viva La Vida의 출현은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다. 어느 평단에서는 이것을 두고 더 버브 (The Verve) 의 클래식 Bitter Sweet Harmony, 오아시스 특유의 스트링 사운드의 결정판 Whatever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명작이라고 과찬을 덧붙였다. 콜드플레이는 날로 쏟아지는 자기네들 관련의 헤드라인 기사와, 회를 거듭할수록 팔려나가는 Viva La Vida의 판매 향연에 대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물론 유투브에서 어느 무명 록밴드가 말도 안되는 “Viva La Vida의 표절” 을 주장했지만 말이다.


콜드플레이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다. 그들은 트래비스를 존경하는 가운데에서도, 자기들 생각에는 콜드플레이 특유의 감수성을 창조하여 지금까지 상이란 상은 다 따내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겸손한 콜드플레이가 외부로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아마 속으로는 엄청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Viva La Vida였다. 1번 트랙 Life In Technicolor부터 시작의 차원이 달랐다. 점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면서도, 지금까지 콜드플레이가 X&Y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양산해왔던 내면의 자아 성찰과 그 안에서의 깨달음을 이 작품을 통해 일궈냈다. 그리고 앨범 재킷을 프리다 칼로의 명작으로 떡 하니 배치해놓고, 페인트로 칠한 듯이 휘갈겨 쓴 글씨로 “인생 예찬” 이라 했다. 내면의 ‘약간의 반항심’ 과 관념을 탈피하는 혁명이었다.


고로 콜드플레이는 진화한다. 이제 콜드플레이는 Viva La Vida를 통해 일렉트릭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밴드로 이름 날리게 되었으며, 스트링 사운드를 사용할 때 진부한 느낌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멜로디를 첨가하여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형태를 일궈놨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무 평범하게 생각하는 흔해빠진 가사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를 느낄 수 있는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글을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는가. Viva La Vida 앨범의 뒷부분을 장식하는 소제목은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혹은 죽음과 그의 친구들) 이다. 앨범을 조금 더 감상해봐야 이 문장의 내용을 깨달을 수 있는 하나의 장치다. 뻔한 결말에서 탈피하여 이런 효과적인 장치, 콜드플레이는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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