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게임 중독과 김환기 회고전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과 김환기 회고전
  • 정중헌
  • 승인 201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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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정중헌】최근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인터넷과 가상현실이 지배하는 세상은 장밋빛일 것이라는 환상은 사라지고, 인터넷의 역기능이 마약보다 더 무섭게 청소년들의 정신과 육체를 병들게 하고 있다.


여기에 학교 폭력과 왕따 현상까지 겹쳐 청소년 교육이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청소년 문제를 인터넷이나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회피일 뿐이다. 부모의 역할 부족과 무관심, 학교의 방임과 전인교육 소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매체에 함몰되고, 입시위주 교육행태는 인성 개발을 도외시하다보니 게임중독과 학교폭력이 기승하는 것이라고 본다.


기술의 발달로 생활의 편의가 증대될수록 외로운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보도가 있었다. 쿨매체인 기계에 매달리다 보면 인간관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외부와 단절한 채 방안에 박혀 인터넷에 중독되는 외톨이가 늘어나고, 우울증 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현대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해결책은 문화예술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기계문명이 지배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진 현대사회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면 문화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더 나아가 직접 배워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사이버가 아닌 현장 분위기(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아 오감으로 느끼는 체험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데려가고, 학교에서 서로 어울려 공감하는 예술교육과 인성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게임 중독자나 학교 폭력 가해자는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부모들은 인터넷에 아이를 맡기고 학교는 입시에 매여 학생들을 방치한 결과가 각종 후유증을 유발시켜 청소년들의 심신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환기 화백이 1973년에 그린 대작 ‘10만개의 점’ 사진 제공=갤러리현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환기 화백 회고전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의 해법이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만능시대라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의 정서와 교육을 위해 이 같은 아날로그 예술행사가 더 많이 열려야 한다.


김환기 회고전은 미적 감상을 넘어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길러주고 인간답게 해주는 산 교육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년으로 탄생 100년을 맞는 김환기는 오래 전에 우리 곁은 떠났지만 우리 것에 대한 그의 사랑과 치열한 작가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미적인 감동과 함께 세계 속에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방학이면 블록버스터형 수입 전시들이 대형 미술관을 점유한지 오래이나 그럴수록 우리 화가들의 대형 전시도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환기 회고전은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세계화되고,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둔 학부모들에게 관람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환기가 즐겨 그렸던 우리의 강산과 달과 구름, 학과 매화와 백자 항아리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응용해 보라고 하면 우리 것도 알게 되고 창의력도 향상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환기 회고전은 근래에 접한 전시회 중에서 작품의 질과 내용면에서 매우 뛰어나다.


서울 시내의 화랑과 미술관을 자주 다니지만 볼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독창성이 약하거나 주제나 이야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기의 작품은 그간 수십 차례 보아왔지만 볼 때마다 감회가 다르다.


특히 이번 회고전은 김환기의 대표작을 시대별로 망라하여 환기예술의 에센스를 접할 수 있게 한 기획력이 뛰어나다. ‘서울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로 나눠 선정한 60여 점 중 상당수가 콜렉터들의 애장품이어서 공공미술관도 하기 어려운 전시를 개인 화랑이 해낸 것이다.


뉴욕시대 추상작업들을 전시한 신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우주05-Ⅳ-71>이다.


<어디서…>는 유홍준 교수가 “백년 후의 국보”로 꼽은 뉴욕시대 대표작이고, <우주…>는 관람객 1000명이 선호하는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른 역작이다.


두 작품 모두 수만 개의 점으로 채워진 대작이다.


청회색의 화면에 빼곡이 들어 찬 점들은 밤하늘의 별빛 같기도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삼라만상의 기운을 품은 만다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으로 그린 점이고 그림일 뿐인데 환기의 작품들은 보는 이를 우주의 무한공간으로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뉴욕의 작은 화실에서 조국 강산을 그리며 고독 속에 찍어 낸 수십만 개 점들의 사연을 떠올리면 가슴 짠한 감회가 밀려 온다.

회화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다.


오래 전 뉴욕의 모마(MOMA)에서 반 고흐 특별전을 대하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는데 환기 회고전을 보며 그때 버금가는 진한 여운을 느꼈다.


김환기 전시회를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들에게 권하는 특별한 이유는 우리 것의 세계화에 있다.


최근 한류가 세계로 확장되면서 K팝을 넘어 K컬처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고 있는데, 막상 젊은 세대들은 한류의 뿌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환기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우리 것’의 바탕 위에서 ‘한국의 미’ ‘한국 정서의 세계화’를 추구했다.


‘서울시대’(1937~1956)부터 환기는 한국의 전통미를 살리는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신념을 바탙으로 민족의 정서를 조형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파리시대’(1956~1959)에는 항아리, 십장생, 매화 등 한국적인 소재에 서구의 기법을 접목시키는 추상의 세계를 열었다.


본관에 전시된 구상 작품들은 산과 달, 구름 등으로 우리의 산하를 모던하게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러나 환기가 작고한지 30여년이 흐른 한국 화단은 양적으로 풍성해지고 국제 교류도 활발해졌건만 우리의 정체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서구의 기법을 따라잡으려 하지만 그들을 능가하기 어렵다.


우리 것에 대한 이해 없이 시류에 휩쓸리다 보니 우리 정서에 와닿는 화가나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학들도 말로는 ‘우리 것의 세계화’를 강조하지만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우리 전통이나 예술에 대한 교육은 형식적일 뿐이다. 우리 것에 대한 뿌리가 약하면 해외에 나가서 그들과 부딪쳐 승화되지 못하고 동화돼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환기 회고전은 우리 것을 어떻게 조형화했는지 알기 쉽게 보여줄 뿐 아니라 파리와 뉴욕 등 해외에 나가서 더욱 굳어진 작가 정신을 되새겨 준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장 한 켠에서 읽은 환기의 다음 글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김환기가 어떻게 국제 화단에서 인정받게 되었는지 명징한 답을 주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한류와 K컬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환기와 같은 예술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게임에 중독되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심신이 병들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온갖 편리를 제공하는 세상이지만 이 같은 격조 있는 예술을 현장에서 접하고 정서적으로 수용할 때 마약 같은 독성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킬수 있지 않을까.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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