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 리포트 ①
2006 독일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 리포트 ①
  • 이근형
  • 승인 200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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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공격력과 빗장수비로 24년 만에 정상 차지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세계인의 축제 2006년 독일 월드컵이 2006년 6월 9일, A조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으로 화려하게 출발, 2006년 7월 9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으로 1개월간의 페스티벌을 벌였다. 독일 월드컵의 포괄적인 정의는 이렇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세계 축구의 평준화가 8년만에 유럽 대륙에서 다시 펼쳐지는 월드컵 무대에서 ‘유럽, 남미 초강세’ 라는 트렌드와 함께 일찍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각 선수들의 주 포지션에 상관없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지점까지 발을 넓히는 ‘멀티 플레이어적 성향’ 이 돋보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조별리그 E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이탈리아가 피파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는 어느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전체적 스쿼드의 고른 상향세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뛰어난 지략술로 1982년 스페인 대회 이후 24년만에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은, 공격할 때에는 화끈하게 공격하고, 수비할 때에는 철저히 잠그는 일명 교과서적인 전술이 곧 ‘축구판의 정석’ 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뛰어난 공격력과 카테나치오 (빗장 수비) 를 통해 정상에 오른 이탈리아에 대해 2부에 걸쳐 분석해봤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유럽 지역예선 5조에 속해있었다. 이탈리아와 맞붙을 나라들은 각각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슬로베니아, 벨로루시, 그리고 몰도바였다. 이탈리아는 5조 예선에서 7승 2무 1패를 기록하여 승점 23점으로 조 1위를 기록, 곧바로 2006 독일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탈리아는 5조 예선에서 단연 돋보였지만, 예선 곳곳에서 삐끗하는 듯한 이름값답잖은 행보를 보인 적도 있었다. 2004년 10월 13일 파르마 홈 경기에선 약체로 평가받는 벨로루시와의 경기에서는 난타전 끝에 4-3으로 그들을 물리친 바 있다.


하지만 조 2위 노르웨이와의 승점 차를 5점으로 벌리며 월드컵 본선 합류, 이탈리아 언론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폐막 직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위기의 이탈리아를 구했다라는 부분에서 깊은 뜻이 있었다. 공격진의 매너리즘에서 뒤따르는 골 결정력 부족과 집중력 저하는 이탈리아 대표팀에게 있어서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 토너먼트 진출 실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다가왔다. 특히 이전 대회인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의 준우승이라는 기록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여론은 질타했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세리에 A 리그에서 훌륭히 역할을 소화하는 ‘비(非) 스타 플레이어’ 를 즉각 보강해서 실전 경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중요시 여겼으며, 이탈리아 대표팀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조타수 프란체스코 토티 (AS 로마) 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는 경기 운용을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토티라는 훌륭한 지휘자, 그리고 어느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는 팀 플레이는 결국 이탈리아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탈리아의 플레이가 프란체스코 토티의 컨디션에 따라 좌우된다며, 거기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탈리아가 반드시 월드컵 우승을 이뤄야 했던 이유


05-06 세리에 A 리그가 유벤투스의 우승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유벤투스가 몇 번의 경기에서 팀의 단장 루치아노 모지 (Moggi) 가 심판들을 매수해서 유벤투스에게 유리하게 경기가 돌아가도록 주문했다는 전화 통화와 물증이 적발, 이탈리아축구협회 (FIGC) 가 2006년 5월 이같은 사실을 접수한 다음, 2006년 7월 초에 유벤투스의 모지 단장과 이번 스캔들에 포함된 여러 인물들에게 형벌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유벤투스 승부 조작 사건 이후 터져나온 여러 스캔들 때문에 피오렌티나, AC 밀란, 라치오, 레지나 등이 연달아 법정에 오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가리켜 칼치오폴리 (Calciopoli,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 라 부른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그리고 세계 3대 리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 축구는 세계 축구계에서 질타와 비난을 받기 충분했고, 무엇보다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둔 이탈리아 대표팀으로서는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월드컵 본선에서 선전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해졌다. 특히 당시 칼치오폴리와 관련이 있는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잔루카 참브로타, 파비오 칸나바로, 잔루이지 부폰 (이상 유벤투스) 등은 “피파 트로피로 이탈리아 축구의 실력을 보이겠다” 라고 한 목소리 했으며, 이들은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 오를 때 유벤투스 승부 조작 사건 때문에 자살 미수를 감행한 유벤투스 코치 잔루카 페소토 (Pessotto) 의 쾌유를 비는 세레모니도 펼친 바 있었다.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로 인한 이탈리아 축구 자존심의 추락,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탈리아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자기네들이 세계 최고임을 증명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것을 두고 외부에서는 “이탈리아가 트로피를 가져감으로써, 이탈리아축구협회가 칼치오폴리를 덮을 수 있다”고 추측을 했으나, 이탈리아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과 칼치오폴리와는 연관이 없다며, 곧바로 당시 스캔들에 연루된 AC 밀란, 피오렌티나, 레지나 등에게 승점 삭감 및 벌금형을 내렸으며, 칼치오폴리의 가장 큰 범인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대표팀


사령탑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다. 선수는 각각 잔루이지 부폰 (1번, 유벤투스), 크리스티안 차카르도 (2번, 팔레르모), 파비오 그로소 (3번, 팔레르모), 다니엘레 데로시 (4번, AS 로마), 파비오 칸나바로 (5번, 유벤투스), 안드레아 바르찰리 (6번, 팔레르모),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7번, 유벤투스), 젠나로 가투소 (8번, AC 밀란), 루카 토니 (9번, 피오렌티나), 프란체스코 토티 (10번, AS 로마),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11번, AC 밀란), 안젤로 페루치 (12번, 라치오), 알레산드로 네스타 (13번, AC 밀란), 마르코 아멜리아 (14번, 리보르노), 빈첸초 이아퀸타 (15번, 우디네세), 마우로 카모라네시 (16번, 유벤투스), 시모네 바로네 (17번, 팔레르모), 필리포 인차기 (18번, AC 밀란), 잔루카 참브로타 (19번, 유벤투스), 시모네 페로타 (20번, AS 로마), 안드레아 피를로 (21번, AC 밀란), 마시모 오도 (22번, 라치오), 마르코 마테라치 (23번, 인테르 밀란), 총 23명의 자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원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으로써, 해외파는 없다.




이탈리아의 E조 조별리그


이탈리아 대표팀은 2006년 6월 12일, 독일 하노버에서 1라운드를 ‘아프리카의 돌풍’ 가나와 맞붙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대표팀이 프란체스코 토티의 컨디션에 좌우되기 때문에, 그가 최대한 편안한 경기 운용을 할 수 있게 옆에서 도우는 게 최선이라고 폄하했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사실상 토너먼트 티켓의 향방이 갈린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 유로 2004의 연속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가나를 맞이했다. 피를로의 로케트 프리킥 골과 더불어 이아퀸타가 골키퍼를 유린하며 득점에 성공, 가나를 2-0으로 누르고 1승을 기록했다.


이탈리아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미국을 상대했다. 예전 월드컵 본선에서도 그랬고, 이탈리아와 미국 사이에서는 승패가 확연하게 갈리지 않는 이상한 특색이 있었다. 역시 2006년 6월 17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벌어진 미국과의 2차전에서도 그 영향력이 존재했다. 전 경기에서 체코공화국에게 0-3으로 얻어맞은 미국은 이탈리아를 맞이해서 중원 싸움과 수비벽 건설에 강점을 보이며 그들을 압박했다. 전반 22분 질라르디노가 절묘한 헤딩골로 선취 득점했지만, 이후 오른쪽 사이드백 차카르도가 어이없는 자책골을 기록하며 승부는 거기서 딱 멈추고 말았다. 전세의 역전과 미국 선수들의 귀찮은 커버링에 이탈리아 선수들은 흥분했고, 결국 전반 28분 데로시가 퇴장을 당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탈리아는 3라운드를 목전에 두고 1승 1무를 받아냈다. 미국을 잡을 수 있었다면 가볍게 2승을 따내 토너먼트를 결정지을 수 있었지만, 미국 선수들이 이탈리아의 약점인 ‘흥분하면 경기를 날리는 양상’, ‘저돌적으로 파울 감행하면 무너짐’ 등을 파악하고 지저분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이탈리아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두 번째 미국전에서 드러났던 평정심 부족을 다시금 새겨 듣고, 마지막 경기 체코공화국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코는 마침 두 번째 라운드에서 가나에게 0-2로 당했기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2006년 6월 22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체코와의 세 번째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마테라치와 인차기의 골로 그들을 2-0으로 제압, 도합 2승 1무로 조 1위를 점했다. 체코라는 강한 상대를 향한 준비, 그리고 평정심 다지기가 성패를 좌우했다. 체코는 역시나 국제 대회 경험 부족으로 이탈리아에게 얻어맞고 짐을 꾸려야 했다.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성적은 5득점 1실점, 경기 MVP는 각각 피를로 (가나전) 와 네스타 (체코전) 가 가져갔다. 특히 가나, 미국, 체코를 상대로 필드 골 단 한 개만을 기록하는 놀라운 수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이탈리아 수비의 핵심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체코전에서 부상, 결국 마테라치와 교체되었다. 이것을 두고 언론은 앞으로의 이탈리아 행보가 상당히 불안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당사자인 이탈리아는 말할 나위 없이 암운의 그림자 속에서 괴로워했다. 결국 이탈리아 수뇌부는 기본적인 센터백 듀오를 칸나바로 - 마테라치 라인으로 새 편을 짰으며, 무리없이 토너먼트에 진출한 이탈리아의 가장 최대의 약점이 바로 여기서 드러났다. 또한 일각에서는 미국전에서의 그런 평정심 부족은 화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의 4강까지의 토너먼트


이탈리아는 E조 1위로 16강에 합류했고, 그들은 F조 2위인 호주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는 호주에 비해 한참이나 더 강한 내공을 지닌 팀이었지만, 호주를 이끄는 자는 다름아닌 ‘기적의 마법사’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외신들은 “이것은 마치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의 경기를 고스란히 복원한 듯 하다” 라고 헤드라인 게재, 호주의 이변이 가장 유력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이탈리아 내에서도 호주를 맞이해서 불안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호주 그들은 조별리그에서 브라질에게 완패했지만 그 경기 내용은 괜찮았고, 수렁에 빠지는 순간에서 터져나오는 천금의 골로 기적같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26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와 호주의 16강전, 역시 초반부터 양팀의 탐색전이 불을 붙기 시작하더니,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승부의 향방을 결정짓는 과감한 플레이들이 속출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루카 토니, 질라르디노 투톱에 처진 스트라이커 및 공격형 미드필더로 델피에로를 투입시켰다. 그리고 중원진은 각각 왼쪽부터 가투소 - 피를로 - 페로타가 책임졌다. 이들에게 있어서 호주 중원 제이슨 컬리나와 빈첸초 그렐라의 막강한 커버링에 대응하는 방법은 역시 중심 축 피를로의 공수 전환과 경기 조율에 포인트가 있었다. 그렇지만 컬리나 - 그렐라 라인이 굉장히 탄탄했기 때문에, 세 명의 공격진에게 패스가 원활이 진행되지 않았다. 호주의 페이스에 말려든 이탈리아는 결국 후반 50분 마테라치가 퇴장을 당하면서, 또다시 앞서 주변에서 경고했던 평정심 부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탈리아 수뇌부는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센터백 바르찰리를 투입시키고는 두 명의 공격 자원을 각각 넣으면서 사실상 득점 하나로 경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심산을 내비쳤다.



바로 그 두 명의 공격수 중 한 명이 프란체스코 토티였다. 그는 델피에로와 교체, 이아퀸타와 짝을 이루며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다. 토티가 투입되자마자, 그의 원활한 경기 운용에 다시 이탈리아가 숨이 트이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긍정적 영향은 이탈리아 양쪽 사이드백의 활발한 오버래핑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것이 스코어를 좌지우지했다. 활발하게 호주 문전까지 오버래핑한 이탈리아 왼쪽 사이드백 파비오 그로소가 호주 문전 안에서 루커스 닐에게 태클을 당해 넘어진 것이다. 당시 시각은 90분이 종료된 이후 남은 4~5분. 심판은 지체없이 페널티킥을 선언했으며, 토티가 PK 결승골을 넣은 직후 경기가 막을 내렸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의 독일 월드컵 토너먼트 경기 중 가장 치열했던 하드 게임이었으며, 그로소의 페널티킥 인정은 주심의 ‘마테라치 후반 50분 퇴장’ 에 따른 피해자 이탈리아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평가된다.


2006년 6월 30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우크라이나의 8강전은, 월드컵 3회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에 빛나는 ‘국제 대회 최강자’ 이탈리아의 완벽한 축구가 돌풍의 우크라이나를 여지없이 잡는 경기였다. 우크라이나는 공격진 솁첸코, 중원진 칼리니첸코, 티모슈크, 그리고 수문장 숍콥스키로 이어지는 무시못할 전력을 지녔지만, 국제 무대 경험 미숙으로 인해서 8강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조별리그 스페인전 1패 이후 계속 승부를 우크라이나 쪽으로 가져오며 승기를 잡았지만, 양쪽 윙 미드필더 페로타 - 카모라네시, 그리고 좌우 윙백 그로소 - 참브로타 라인을 가동하며 날개 공격의 진수를 보이는 이탈리아의 파상공세에 완전히 휘말렸다. 결국 이탈리아의 두 번째 플랜, 그러니까 날개 자원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결과물로 증명되었다. 참브로타는 경기 선취골과 루카 토니의 골까지 어시스트 하며, 이탈리아 수뇌부의 날개 작전 성공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루카 토니는 두 골을 몰아치며 타깃맨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그리고 골키퍼 부폰은 골대에 머리를 부딪히는 투혼을 불사르며 골키퍼의 면모를 보였다.


이탈리아는 4강에 오르기까지 단 한 번의 패전 없이, 그리고 차카르도의 자책골 이외엔 절대 상대에게 골문을 내주지 않으며 완벽한 경기 운영으로 결승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상대할 팀은 다름아닌 이번 월드컵의 개최국이자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독일이었다. 전문가들은 개최국 독일의 승리에 더 많이 힘을 실리는 평가를 했지만, 2006년 3월에 펼쳐진 그들의 평가전에서 이탈리아가 독일을 4-1로 대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그때의 모습이 재현될 것이라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아무튼 연승 행진의 개최국 독일과 이탈리아가 외나무 징검다리에서 만났다. 2006년 7월 4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독일의 4강전, 승부처는 다름아닌 중원에서의 싸움이었다.


독일은 지난 8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토르스텐 프링스가 경고로 이탈리아전에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예상에도 없던 중원 라인을 선보였다. 발라크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그리고 그 하부의 중원 3인방은 각각 보로프스키 - 켈 - 슈나이더로 꾸렸다. 그에 비해 이탈리아는 앞선 경기 우크라이나전에서 대성공한 ‘양쪽 윙어와 더블 볼란테’ 미드필드를 들고 나오며 안정적인 모양새를 갖췄다. 발라크는 경기 내내 피를로의 커버링에 꽁꽁 묶여 속수무책이었고, 발라크가 공격 조달을 해주지 않으니 스트라이커 클로제가 고립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렇지만 양팀의 공격진 중 하나가 승부를 가리는 과감한 행동이 없었기에, 약간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왼쪽 윙 미드필더로 델피에로, 원톱에 질라르디노를 집어넣으며 이탈리아가 먼저 공격으로 올인했다. 그것은 통했다. 파비오 그로소가 연장전에 넣은 선취골에 힘입어 이탈리아 공격 올인의 선봉장인 델피에로가 두 번째 골을 터트리며 독일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이탈리아는 그렇게 해서 독일 본국에서 도르트문트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독일 국민들 앞에서 그들을 2-0으로 제압하고 대망의 결승전 무대에 올랐다. 외신들은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1-0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오른 것보다, 이탈리아의 독일 제패 이후 결승 진출에 더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프랑스야 지단이라는 희대의 마에스트로의 힘에 기대 올라왔지만, 이탈리아는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11명의 손수 플레이에 의해 결전의 무대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세 명의 미드필더를 두는 첫 번째 플랜, 그리고 전형적인 4-4-2 형태를 쓰는 두 번째 플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어느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경기 운용을 펼쳤다. 그리고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결정적 순간에 마무리 킬러가 될 수 있는 공격수 투입, 승부를 갈라놓았다. 4강까지의 MVP는 각각 부폰 (호주전), 가투소 (우크라이나전), 그리고 피를로 (독일전) 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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