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났다’를 보는 조금 다른 시선
‘엄마가 뿔났다’를 보는 조금 다른 시선
  • 김희준
  • 승인 200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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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함 속의 푸근함, 현실 속의 낯설음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대장정을 끝맺었다.

주말 중년주부들의 낙이 하나 사라진 것이다.

대가족의 일상을 소소하게 꾸려 나가는 중에도 ‘김한자의 반란’ 같은, 김수현다운 옹골진 이슈를 집어넣은 것이 중년주부들 마음을 특히 사로잡은 드라마였다.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은 절대 녹록치 않은 대사 처리에 있다. 분명 우리가 늘 쓰는 단어들로 이뤄진 말인데도 새롭게, 사람들의 감정을 헤집어 말로 풀어내는 데는 그를 따를 작가가 없다.

<엄마가 뿔났다>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연히 김수현의 ‘말’들을 한다. 뿔난 엄마 김한자에서부터 가장 어린 수민(큰딸 나영수의 딸이 된)까지 김수현의 말들을 자근자근 씹어서 뱉는다. 그 말들이 때로는 신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완벽주의적인 집착처럼도 느껴진다.

김혜자를 비롯해서 60대 배우들과 신은경 등 30대 배우들이 김수현식 대사를 소화해내느라 긴장을 늦추지 않는 가운데, 가장 편하게 다가온 인물은 일석과 이석 쌍둥이 남매였다. 백일섭과 강부자라는 베테랑 연기자들이 각각 맡은 이 캐릭터들은 깎아놓은 밤톨 같은 김수현의 대사에 윤활유를 쳐서 부드럽게 해줬다.

김혜자의 대사나 장미희, 신은경 들의 대사는 조금의 모자람도 허용하지 않아서 팍팍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백일섭과 강부자는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넉넉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 시청자들을 느긋하게 만들었다. 극중 쌍둥이라는 설정이 실제인 것처럼 어울리는 이 두 연기자는 쉴새없이 받아치는 다른 연기자들의 대사 사이에 쉼표 같은 역할을 했다.



강부자가 연기한 이석은 하소연과 넋두리를 적절히 섞어 혼자 사는 60대 여성의 징한 마음을 풀어냈고, 백일섭은 대단한 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아내, 아이들을 아끼며 사는 소시민 가장 역을 정감있게 해냈다.

까칠하고 피곤한 친정엄마 김혜자와 허영덩어리 시어머니 장미희의 연기가 ‘설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반면 백일섭과 강부자에게서는 바로 이웃에 사는 아저씨 아줌마의 푸근한 살냄새가 났다.


<엄마가 뿔났다>는 여태까지 김수현 작가가 써온 일련의 드라마적 성과에서 비껴감이 없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있다. 어느덧 연륜이 쌓인 작가의 삶에 대한, 시간에 대한 성찰이 여지껏의 드라마보다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석의 푸념으로 한자의 짜증으로 극화돼, 삶이 참 덧없고 시시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얼핏얼핏 내비친다.

김수현 작가가 쓰는 드라마는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비껴간 적이 없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일상의 감정 속에 감춰진 사람들의 진짜 모습들을 단호한 어휘로 풀어내는 것이 그의 드라마의 강점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은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른 세계, 미지의 세계와의 소통을 언급하고 있다. 은실이만 듣는 ‘소리’는 과하지 않게, 극의 재미를 더하는 정도로만 작용하지만, 현실과 일상을 떠난 또다른 공간과 인식이 있다는 설정은 작가의 생각 궤도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했다.

한참전에 방영된 그의 또다른 가족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매회 극중 아버지가 저세상에 간 부모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편지로 쓰는 형식으로 끝났다. 이번에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가 은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말을 건네는 설정을 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가장 탄탄하게 운용하는 현실 공간에서 시선을 옮겨 잠깐잠깐씩 위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변화다.

그러다가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는 작은 반전을 꾀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싸여있는 미연에게 은실이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간 모습을 봤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이냐고 묻는 이석에게 은실은 ‘위로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다시, 작가 김수현은 그의 공간,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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