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김정우
제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김정우
  • 이신숙
  • 승인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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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인생 2막

【인터뷰365 이신숙】제주시 노형동에는 제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이 센터의 수장은 센터장 김정우(72) 선생. 김정우 선생은 제주에서 72년을 산 토박이다. 제주동여중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직 생활 40년을 마감하던 해에 제주여행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 2막이 열리게 되었다. 그 후로 10년, 그는 제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정우 선생을 통해 아직은 낯선, 외국 이주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미 우리의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았으나 아직은 ‘통역’이 필요한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제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얼마나 되며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우리나라 어디나 비슷하지만 제주에도 일을 하러 온 외국인근로자와 결혼이주민이 주를 이루죠. 2011년 현재 각각 2007명, 2400명 정도 됩니다. 외국인근로자들은 주로 동남아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많고 양돈, 양계, 양식장, 플라스틱 제조공장 등 우리나라 사람은 일하기를 꺼리는 소위 3D업종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많죠. 결혼이주민은 중국,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남편 하나 믿고 이곳까지 와서 적응 하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제주에 사는 외국인들과 언제부터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2003년 2월에 제주동여중 교장을 마지막으로 40년 교직에서 정년퇴임하게 되었거든요. 퇴임식에서 ‘이제껏 동료 교사, 사랑하는 제자들, 학부모님들께 입은 큰 은혜를 갚을 길은 섬기고 나눌 길을 찾는 일이 될 것이다. 퇴직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퇴임사를 했어요. 그해 8월 1일에 서울 광주 등지에서 이주노동자 4백여 명이 제주로 문화체험을 온다는 걸 알고 기꺼이 봉사를 자원했죠. 그분들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산업역군들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작업환경도 열악하기 때문에 혹시 우리나라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갖고 자국으로 돌아 갈까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3박4일 동안 이분들과 버스여행을 함께 하면서 내가 할 일이 바로 이거다 싶어 바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국문화학교도 세우셨다고요.
장학사와 교장을 역임하면서 행정적으로 좀 훈련이 되었어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외국인노동자센터를 방문했는데 시민단체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일손이 부족하고 행정적으로 정리가 잘 안되고 등등. 그래서 그날부터 눈에 보이는 대로 조직관리 등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제주시청에서 공모사업을 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제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을 위해 우리말과 태권도, 컴퓨터 등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로 응모를 했는데 1500만원 상금을 타게 되었죠. 그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제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결혼이주민여성과 함께. 왼쪽부터 조이스(필리핀), 김정우 센터장, 쩐티투(베트남 ), 체첵(몽골).


제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은 제주외국인노동자센터였어요. 2008년에 노동자센터장이 되어 이주민센터로 명칭 변경하고 제주다문화가정지원센터 운영을 위탁받아 지금에 이른 겁니다.”


외국인들을 만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노동자나 결혼이주민 모두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대체로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저임금인 그분들이 혹시 우리나라에 대해 반한감정을 갖지 않을까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최근에는 결혼이민자의 결혼생활 갈등과 이혼이 큰 문제가 됩니다. 체류기간이 만기가 되면 이혼한 경우 신혼보증을 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불법체류자가 된단 얘기죠. 이런 경우 제가 신원보증을 서주는 일도 많습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국제적인 딸들이 많아요.


불법체류자요?
네. 결혼을 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2년 이상 살아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거든요. 결혼생활을 그만큼 하지 못하고 이혼을 했을 경우 체류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비자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일이 많다는 얘기죠. 아이들 문제, 시댁과의 문제, 쉽지 않은 일들이 많죠.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연들을 많이 접하시겠군요.
다문화가정에 대해서 우리가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남편 하나만 믿고 제주에 왔지만 막상 여러 편견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난여름 얼마나 더웠습니까. 특히 제주의 한 여름 더위와 습기는 대단하죠. 8월 한 달간 여덟 가정이나 이혼을 하겠다고 저를 찾아왔어요. 계속 설득하고 남편들 야단도 치고 해서 다섯 가정은 화해의 악수를 하고 돌아갔죠. 두 가정은 끝끝내 이혼을 했지만.


특별한 분들도 만나실 것 같은데요.
조옥란 씨라는 30대 초반의 조선족이 있는데 중국에서 3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로 시집을 온 분이에요. 상담간사로 성실하게 일을 하며 자원봉사를 열심히 해서 저희가 사례도 조금씩 하곤 했죠. 이분이 방통대를 졸업을 하고 통역대학원에서 한중통역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을 마치면 사회복지를 공부하라고 권하고 있어요. 결혼이민자 중 귀감이 될 걸로 생각합니다.


남성 결혼이주민은 없습니까?
왜요. 남성도 2백여명 있지요. 주로 백인이고 선진국에서 온 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편견 같은 것엔 해당되지 않지만 우리말을 배우러 센터에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어떻게 생활합니까.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분들이 많아요. 올해 추석 아침에 서귀포에서 긴급한 전화가 왔어요. 우즈벡 출신 노동자가 술을 먹고 2층에서 떨어져 병원에 후송을 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만 일단 병원으로 출동을 해서 그날 바로 수술을 하도록 협조를 구하고 바로 병원비와 입원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시청과 공동 모금을 했습니다. 그분은 치료를 잘 받고 완치가 되어 우즈벡으로 돌아갔습니다. 또 금년 설에 양돈장에서 근무하는 태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돼지 간을 먹고 균에 감염이 되어 한라병원에서 손가락과 양 발을 자르는 심각한 사건이 있었어요. 치료비가 2천5백만 원이 나왔어요. 산재처리가 되면 좋겠는데 근무 중에 먹은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 후에 자의적으로 먹은 거라서 근로복지공단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일단 급한 대로 3백만 원을 모금했고 보험회사에서 1천5백만 원을, 본인 부담 약간과 병원에서 후원을 해주어 치료를 받고 퇴원하여 자국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어요.


주로 휴일과 명절에 ‘출동’하시네요.
근무 중 일어난 사고는 산재처리가 되기 때문에 복잡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휴일이나 자발적인 행위로 사고가 난 경우는 도움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연락이 오는 일이 많죠. 얼마 전에 서귀포지부가 생겼지만 관할이건 아니건 무조건 저희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러면 또 무조건, 명절이건휴일이건 병원으로 경찰서로 뛰어 갑니다.”


그런데 무급으로 일을 하시잖습니까.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센터장의 인건비가 당연히 책정되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센터장 월급이야 책정이 되어 있죠. 직원들도 받으라고 합니다만 제 것을 안 받아야 직원을 한 명이라도 더 쓰죠. 예산이 정말 빠듯하거든요. 저는 연금 받는 사람이잖아요. 나라에서 이미 연금을 주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이 연금도 털어서 사무실 칸막이 공사도 하고 또 봉사비로도 씁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저희가 세 들어 있는 건물도 근처의 병원 원장님이 몇 년째 무상으로 임대해주신 거예요. 올해는 미안한 마음에 임대료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만 ‘걱정 말고 있을 만큼 마음 편하게 계시라’는 고마운 전화를 얼마 전에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부인께서는 걱정 안 하십니까. 연세도 있고, 은퇴하셔서 편히 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이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입니다. 일흔이 넘었지만 건강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집사람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명예퇴직 후 제주 성안교회노인복지센터 관장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대화가 무엇보다 잘 통합니다. 사실 제 주머니를 털어 일을 하기 때문에 집사람의 이해가 없으면 이 일을 못할 거예요. 아이들(2남1녀)도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애들도 포기했는지 이제는 쉬라고 성화를 대지 않네요. 하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특별한 건 없고...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회가 계속되는 한 이분들을 섬길 겁니다. 다만, 잘 아는 선교사 한분이 파라과이에 학교를 세웠어요. 그곳에서는 오전에만 수업을 한답니다. 한국식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면 훌륭한 학교가 될 것 같다고 현지에 와서 2년만 일해 달라는 그분의 말씀이 마음의 빚이 되어 여기를 그만 두게 되면 파라과이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이신숙 전문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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