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낌없이 다 주는 선인장의 일생 ‘선인장 호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낌없이 다 주는 선인장의 일생 ‘선인장 호텔’
  • 이 달
  • 승인 200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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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네 어머니 삶과 같은... / 이 달



[인터뷰365 이 달] 뜨겁고 메마른 사막의 어느 날.

키 큰 사구아로 선인장에서 빨간 열매 하나가 툭!

까만 씨들이 쏟아져 나와 햇빛에 반짝인다.



씨가 그곳에 떨어진 건 정말 다행.

사막의 짐승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건조한 날이 지나고 비가 흠뻑 내리자

선인장 싹 하나가 땅을 뚫고 비죽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린 싹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자란다.

팔로버드 나무가 뜨거운 여름 볕과 추운 겨울밤을 지켜주고

십년이 지나자

선인장은 이제 겨우 엄마 손 한 뼘 만큼 자랐다.



비가 오지 않으면 몸속에 모아 둔 물로 자라는 선인장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자 통통했던 몸이 홀쭉해졌다.

이십 오 년이 지나

다섯 살 아이만큼 자란 선인장을 목마른 토끼가 갉아 먹는다.



오십 년이 지나자

선인장은 엄마 키 두 배만큼 자랐다.

선인장을 지켜주던 팔로버드 나무는 늙어서 선인장에 몸을 기댄다.

오십 살이 되자 선인장은 처음으로 하얗고 노란 꽃을 꼭대기에 피웠다.

그리고 해마다 봄이면 꽃을 피운다.

딱 하룻밤 피는 꽃은 뜨거운 낮이 되면 바로 지고 만다.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리고 한 달이 지나

열매가 빨갛게 익어 벌어지자 도마뱀무늬딱따구리가 열매를 먹으러 날아들었다.

도마뱀무늬딱따구리는 이곳이 맘에 든다.

가시가 있어 안전하고 열매도 먹을 수 있는 선인장에 도마뱀무늬딱따구리는 집을 짓기로 했다.



딱따구리는 길고 딱딱한 부리로 딱!딱!딱!

선인장을 쪼아 둥글게 판 다음

딱!딱!딱! 선인장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방을 만들었다.

편안하고 넓은 방이다.

딱따구리는 이제 더운 낮에 그늘지고 추운 밤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다.



육십 년이 지났다.

사막의 훌륭한 호텔이 된 선인장은 아빠 키 세 배만큼 자랐다.

큰 가지가 하나 더 뻗어 호텔도 넓어졌다.

딱따구리는 난쟁이올빼미에게 헌집을 물려주고 새 구멍을 만든다.

옆 가지에는 흰줄비둘기가 둥지를 튼다.



백 오십 년이 지났다. 이제 선인장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선인장의 키는 아빠 키의 열 배.

뻗어 나간 가지는 일곱 개.

무게는 팔천 킬로그램.

자동차 다섯 대를 합한 것만큼이나 무거워진 몸이다.

선인장의 몸에도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생겼다.



모두들 선인장 호텔에 살고 싶어 한다.

새들은 알을 낳고 사막쥐는 새끼를 기르고 곤충도 박쥐도 이 호텔에 산다.

한 가족이 이사 가면 다른 가족이 들어오고

해마다 봄이면 달콤한 빨간 열매로 호텔 투숙객들은 잔치를 한다.



이백 년이 지났다.

마침내 늙은 선인장 호텔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모래 바닥에 쿵! 쓰러졌다.

팔천 킬로그램의 거대한 몸이 말라가고

가시가 돋은 거대한 가지들도 힘없이 부서진다.



선인장 호텔에 살던 동물들은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대신 낮은 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들이 이사를 왔다.

지네, 전갈, 개미, 알록도마뱀, 땅뱀.

여러 달이 지나자 선인장 호텔은 뼈대만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주위에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선인장 숲이 생겼다.




처음 이 그림책을 보았을 때, 사막 위에 툭! 떨어졌던 빨간 열매 하나처럼

내 마음이 쿵! 떨어졌다. 눈물도 하나 후둑! 떨어졌다.

사구아로 선인장은 미국 애리조나 주 남부의 소노란 사막과 멕시코 북부에서만 자라는 선인장이다.

이 선인장이 사는 곳에는 '사구아로 숲'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고 한다.

선인장의 숲... 과연 그럴 것도 같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사구아로 몸통 속의 긴 줄기, 즉, 쓰러진 후 살이 다 마른 후 남는 뼈대 같은 줄기로 집을 짓는다.

이 줄기는 지붕이나 담을 만드는 목재로, 연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구아로는 몸속에 나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사구아로 나무.

사람들은 이 길고 튼튼한 사구아로 줄기를 이용해 사구아로 열매를 딴다.

키가 크고 가시가 돋친 선인장 꼭대기의 열매를 과연 무엇으로 딸 수 있겠는가.

그 나무에서 나온 줄기로 밖에는 방법이 없겠지...


어려서부터 우리집엔 선인장 화분이 많았었다.

그래서 어떤 화초보다 선인장을 좋아했는데 관상용으로 많이 팔리는 이 선인장이 나도 좋아서 한번 집에 들여 놓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왠지 엄두가 안 나서 포기했다.


여행길에 마주치는 시골 할머니들을 보면

이가 빠져 흐물한 할머니들의 턱이나, 물기 하나 없이 말라버린 젖가슴이나

여기저기 구멍 숭숭한 몸빼를 보면

사구아로 선인장이 생각난다. 이 호텔에 머물다 떠나버린 예쁘고 작은 짐승들도...


브렌다 기버슨 글 / 미간 로이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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