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외할머니, 눈물의 여왕 전옥
최민수 외할머니, 눈물의 여왕 전옥
  • 김다인
  • 승인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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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띤 여배우 세대로 인기 정상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지금은 ‘이태원 사건’으로 칩거중인 배우 최민수의 연기 핏줄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눈물의 여왕’ 전옥의 시대로.

1920년대 등장한 여배우들 가운데는 유독 기생 출신들이 많았다. 여염집 규수들은 경주마처럼 다른 곳은 아예 쳐다도 보지 못할 시절이었다. 영화니 연극이니는 화류계라 하여 기생들과 한가지로 보던 시절이었다. 그래, 무대 위에서는 남자배우들이 여장을 하고 여자 역을 소화해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그같은 트릭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끼도 있고 섭외도 쉬웠던 기생들이 1세대 영화배우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들은 쉽게 등장한 만큼 화무십일홍의 인기를 누리다가 하차하기 일쑤였다. 장안의 한량들이 돈과 권력을 내세워 이들에게 접근했고 여기에 휘말리다보면 어느덧 인기는 시들해지고 점차 잊혀져 불운한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토월회 등을 중심으로 인텔리전트한 여성들이 점차 영화계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1세대 여배우들과는 달리 전문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력이 길었다.

그 중 눈에 띄었던 배우는 전옥이었다.

본명이 전덕례인 전옥은 어린 나이에도 우는 연기가 일품이라 하여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였다.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전옥은 권투선수로 활동했지만 여시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오빠 전두옥을 졸라 경성으로 오게 됐다.(전옥이라는 예명도 오빠 전두옥의 이름 끝자를 따서 지었다.)

전옥 남매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학교인 조선영화예술협회 연구생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시기를 놓치자 직접 극동키네마를 찾아갔다. 황운 감독의 1927년 <낙원을 찾는 무리들>으로 데뷔하게 된 전옥이 맡은 역은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며 눈물 짓는 역이었다.

하지만 극동키네마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자 이번에는 나운규 프로덕션을 찾아갔다. 자그마하고 선한 모습의 전옥은 전형적인 조선 여인의 표상이었다.

나운규는 전옥을 신일선이 여주인공인 <들쥐>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조연을 맡겼다. 전옥 나이 16세 때였다. 촬영현장에서 전옥은 감히 나운규 곁에도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후일 당시의 나운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너무 어린 데다 그분이 하도 엄해서 좀처럼 가까이 갈 수 없었어요. 촬영 때는 그나마 조금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죠.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대는 머리를 막 쥐어뜯곤 했어요. 옆에서 보기 무서울 정도로요. 그러다간 손가락 깊이 담배를 쥐고 멍청히 하늘을 쳐다봐요. 모두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을라치면 갑자기 벼락 떨어지는 소리로 이거다! 하고 소리를 질러요. 정말 간이 다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들쥐>에서 호평을 얻은 전옥은 이어 <잘있거라>에서 김연실과 공연 이후 <옥녀>에서 단독 주인공을 맡았고 <사랑을 찾아서>로 스타의 자리를 굳혔다.

순진한 외모의 시골 처녀 역을 주로 맡았던 전옥은 영화 출연과 함께 화조회, 토월회 등의 연극단체에서 연기를 하며 연기력을 키워 나갔다.

1931년 전옥은 극단 백조의 단장이자 성악가 강홍식과 만나게 되고 결혼, 딸 둘을 낳았다. 그중 한 명이 최민수의 어머니인 배우 강효실이다. 전옥은 강홍식이 6.25 전쟁 때 북쪽으로 가면서 헤어지게 됐는데 이때 강홍식과 함께 북한으로 간 다른 딸 강효선은 북한의 유명 여배우로 활동했다.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은 전옥은 나운규 프로덕션 해체 이후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을 했으며 목청이 고와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당시 전문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최민수가 가수로 활동하는 것은 아버지 최무룡의 유전자도 있겠으나 외할머니 전옥의 유전자 역시 무시못할 것이다.

노래와 연기가 다 가능했던 전옥은 1940년대에는 당시 악극무대에서 갈채를 받았다. 특히 가슴 깊이 저민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정제해 우는 연기는 일품이어서 관중들은 그의 연기를 보고 함께 울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1950년대 전옥은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지만 이미 신파조 연기는 퇴조한 후여서 그리 큰 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옥은 불운한 사생활을 한 다른 여배우와는 달리 시골 과수원에서 1969년 58세로 타계할 때까지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함경도 사투리를 잘하는, 캐릭터 강한 여배우로 활동했던 강효실은 생전의 전옥에 대해 “꽃 가꾸고 책 읽으며 소일, 특히 소월 시를 좋아해 진달래꽃 등을 애송하시는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배우 최민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처럼 한국영화 ‘눈물의 여왕’ 전옥이 있었다. 때문에 최민수가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것에 더욱 감사하고 겸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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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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