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아흔아홉칸, 정읍 김동수 고택
검소한 아흔아홉칸, 정읍 김동수 고택
  • 이 달
  • 승인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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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한 뼘도 외면하지 않은 알뜰한 아름다움 / 이 달


[인터뷰365 이 달] 정읍 산외면은 정읍시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속한다. 정읍 산외면과 임실 순창은 옥정호를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룬다.

김동수고택을 찾아가는 길, 옥정호에서 떨어지는 물을 전력으로 바꾸는 시설이 산 높은 곳에 보였다.

급경사를 이루는 그 시설물이 소심한 내 눈에는 위태롭고 불안해 보인다.


작은 꽃잎이 흔들리는 좁은 시골 길과 그 길 위를 지나가는 자전거 탄 할아버지와 낮고 울퉁불퉁한 흙담과 그 위에 고개를 내민 능소화들이 혹시나 물에 잠겨 버리면 어쩌나…. 그런 바보같은 염려를 하며 동네 개천 둑길을 건너 집 앞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정한 행랑채의 담벽 그리고 동편의 숲.

부잣집들은 대부분 집 앞 뒤에 멋진 숲을 가지고 있다.








'99'라는 숫자는 실체보다 엄청난 규모를 연상하게 하지만 일단 집 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 소꿉놀이 세트를 돌아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한옥의 매력일까. 구석구석 오밀조밀 알뜰한 구조에 시선을 뺏기는 때문일까.


아흔아홉칸 저택을 전에도 구경한 적이 있다. 경상도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짐작하기를, 대단히 으리으리하고 권위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다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동수고택은 거기에 하나 더, 검소함까지 느껴진다.

아흔아홉칸 대저택의 검소함이라니…말 자체가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으나 집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 꼭 사치와 상통하는 것은 아니리라.


건축물을 볼 줄 모르니 그저 집안의 요모조모를 살펴 볼 뿐 어떤 견해를 정리 할 순 없다. 다만 기둥으로 사용한 목재나, 단정하게 깎아 끼운 문창살 앞뒤로 내어 놓은 마루, 미로처럼 만들어 놓은 다락 등을 돌아보자니 이 집을 지은 사람은 검소하고 조용한 성품의 사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평의 땅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투리 공간이라도 알뜰하게 꾸며 놓았음에 탄복을 하게 된다.

그 알뜰함이 만들어 내는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존경할 만한 것은, 폐쇄적인 듯하면서도 모든 공간이 통하게 되어있는 구조. 그에 담긴 정신.

경계를 구분하는 상징의 벽이 공간을 나누지만 그 벽에는 반드시 소통을 위한 문이 있고 하물며 은밀한 멋까지 더해 놓았으니 문과 문이 열려 이어지는 세상은 오히려 막힘없는 세상보다 강력한 소통을 이루지 않던가.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다른 문을 열고 건너 세상을 내다보다가 담을 돌아 건너 편 세상에 몸을 넣는다.






아흔아홉칸 저택에서 살래, 단칸 오두막에 살래, 하는 감격적인 선택의 기회가 혹시라도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단칸 오두막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은 어떤 상황, 가령 내가 지금처럼 가난뱅이가 아닌 엄청난 부자라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김동수고택에 가기 전 40대 중반의 부부를 만났다.

지방대학의 선생인 두 사람은 주말엔 농사를 짓는다. 부부의 농장은 산외면 남쪽으로 '쌍치'라는 외진 마을에 있다.

그들의 농장은 너무 벽지에 있어서 농장으로 가는 길에 다른 차를 만난 적이 드물다 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릴 때면, 이 길은 나의 길이다, 하고 생각한다는

꽃과 나무 가득한 산과 들에서, 이곳이 나의 정원이다,고 생각한다는

그래서 집안에 화분을 두지 않고 꽃을 꺾어 담아두지 않는다는

여유로운 두 사람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눈에 보이는 세상 모두를 안고 사는 그들이 아흔아홉칸 저택의 소유자보다 더 대단한 부자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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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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