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월E가 택한 지구 최후의 장난감 ‘뽁뽁이’
로봇 월E가 택한 지구 최후의 장난감 ‘뽁뽁이’
  • 김희준
  • 승인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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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의 은찬이 한성에게도 권한 것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지구가 멸망하고 인간이 멸종한 후 지구에는 어떤 것들이 남아있을까.

요즘 영화들은 그 현장을 미리 보여주기를 즐긴다. 생명이 사라진 지구의 모습이 어떨지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는 적어도 인간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영화가 그 현장을 상상하고 무엇을 남길까 선택하는 것은 신이 느꼈을 창조의 전율을 느끼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그래도 인간에게 미련을 보여 과학자 네빌과 변종 인류를 멸망한 지구에 남겨놓았다.

하지만 지금 개봉중인 영화 <월E>에서는 지구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폐기물 처리 로봇과 바퀴벌레만 남겨 놓았다. 그리고 월E가 폐기물 사이에서 모아두는 ‘보물’로 지포라이터, 큐빅스 큐브 등을 택했고 장난감으로 ‘뽁뽁이’를 선택했다. 지구 탐사 로봇 이브에게 한눈에 반한 월E는 뽁뽁이를 건네주고 이브는 희고 매끄럽고 뾰족한 끝으로 뽁뽁이를 누른다. 뽁.

월E가 뽁뽁이를 가지고 놀 줄 안다는 데서 뽁뽁이 마니아들은 무한공감대를 가졌을 것이다. 아니, 내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즐겨 가지고 노는 것은 로봇도 좋아하네! 하는 놀라움.

뽁뽁이는 포장할 때 내용물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작은 구멍 안에 공기를 주입해서 만든 에어캡을 뜻한다. 그 작은 구멍을 누를 때마다 그 속에 갇혀 있던 공기가 밖으로 나오면서 뽁, 뽁, 소리를 내는데 여기에 빠지면 다 터트릴 때까지 다른 일을 못한다. 은근 중독성이 강한 것이다. 일일이 구멍마다 다 터뜨린 후 아예 전체를 꼬집듯 비틀어가며 최후의 공기까지 비명을 지르고 나오게 한 뒤에야 속 시원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월E만 뽁뽁이의 중독성을 안 것은 아니다.

최근 오토바이 사고로 아깝게 생을 달리 한 모델 출신 배우 이언이 출연했던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에서도 은찬(윤은혜 분)이 뽁뽁이에 대해 좀 아는 캐릭터로 나온다.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는 은찬은 자기 몸집만한 쓰레기를 버리려 바깥으로 나왔다가 한성(이선균 분)과 마주친다. 그때 은찬이 내미는 것이 뽁뽁이다. 해보면 재미있다며.

월E나 은찬은 상대에게 호감을 표하는 방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놀잇감인 뽁뽁이를 주지만 <두 얼굴의 여친>에서 하니(정려원 분)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뽁뽁이를 자주 터뜨린다. 다중인격 여자 하니가 뽁뽁이를 터뜨린다는 설정은 웬지 잘 어울린다.



뽁뽁이가 대량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로는 애쉬턴 커처(듀드 역) 주연의 2000년작 <내 차 봤냐? Dude, Where's My Car>다. 바보 친구 두 명이 넌센스식 코미디로 일관하는 이 영화에서 우주여행을 간다고 입는 우주복이 ‘뽁뽁이 우주복’이다.

월E가 지구 최후의 장난감으로 뽁뽁이를 택한 데는 은찬이나 하니나 듀드의 열렬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포장용지에서 장난감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빠르고 재치있는 일본의 상술은 뽁뽁이 중독자들을 위해 휴대용 뽁뽁이 장난감을 만들었다. 작년에 뽁뽁이의 일본식 의성어라고 할 ‘푸치푸치’를 붙여 ‘무한 푸치푸치’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했다. 가로세로 5cm 가량 되는 네모난 장난감에 8개의 반투명 버튼이 설치되어 있어 이것을 계속해서 눌러 주면 이상한 소리들이 나온다.

그런가하면 미국에서는 숫자를 죽 써놓은 위에 뽁뽁이를 덮어 달력으로도 사용하는 아이디어 상품도 있다. 엄마가 오늘 며칠이지? 하고 물으면 아이들이 해당 날짜를 뽁뽁뽁 눌러 터트리는 장난감 겸용 달력이다. 또 타자연습용 뽁뽁이 프로그램도 개발돼 있다. 키보드 자판 연습 대신 한글 타이핑을 익히는 프로그램으로 성경을 치면서 뽁뽁뽁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잘 치면 박수를 받는다.


로봇 월E가 뽁뽁이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논다는 사실 하나에 여기까지 달려와 버렸다. 이 물음 하나를 던지기 위해서다. 왜 <월E>의 제작자나 시나리오 작가는 월E의 마지막 장난감으로 뽁뽁이를 택했을까. 일본 장난감 회사의 PPL도 아닌 것 같은데.

사이보그형 장난감이 난무하는 요즘 누르고 떠트리는 단순한 재미를 반복하는 뽁뽁이가 지구의 마지막 장난감이 됐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그 무수한 최첨단의 것들은 인류 멸망과 더불어 무의미해진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7백년 동안 지구에서 폐기물 처리를 하면서 인간처럼 감정이 생겨버린 로봇인 월E는 인간처럼 살아있고(?)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뽁뽁이를 터트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지구에서 인간처럼 일하고 살아간다는 것, 로봇이 느끼기에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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