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⑤ <끝>
“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⑤ <끝>
  • 송명호
  • 승인 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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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거리에 휘날린 한국의 자긍심 / 송명호

[인터뷰365 송명호] 숙소는 어느새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예술단원의 움직임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는 사람, 북이며 장구를 챙기는 사람, 몸에 걸친 북춤 의상을 제대로 입었는지 살펴봐달라는 사람, 맨 머리에 고깔을 쓰면 흔들거리니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고 그 위에 쓰라는 등 어수선할 정도였다. 우리 민속예술단 선두에서 태극기를 들고 길잡이로 나설 나도 고깔을 써야 한다기에 하나 챙겼다. 이때 여행사 주소장과 함께 내 방으로 들어온 주인아저씨한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극기 깃대를 손수 만들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만나서라도 답례를 하려고 했었는데 마침 내 방까지 찾아 왔으니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인사를 한 것이었다.

주인아저씨가 뭐라고 하는데 일본어가 여물지 못한 내가 어색해하자 이를 알아차린 주소장이 나서서 자상하게 통역을 해주었다. 오늘 조선통신사 행렬 때 태극기를 높이 들고 흥겹게 걸어가면 대마도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 할 것이라면서 그런 깃대를 손수 만들게 되어 자랑스럽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고마워서 다시 한 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로 마무리 답례를 했다.



오후 세시에 시작되는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두시 반쯤에 숙소를 떠나 쯔쯔 민박집의 예술단과 대마도 시청 앞에서 만나야 했다. 다행히 날씨는 아침에 비가 내려 어제보다는 훨씬 서늘한 기운이었다. 나는 태극기 깃대를 들고 앞장섰다. 골목을 벗어나 하찌만구(八幡宮) 신사의 큰 거리로 나오자 벌써부터 경찰관들이 교통을 정리하느라고 부산하였고, 이즈하라 쇼핑센터의 만남의 광장에는 구경꾼들로 꽉 차 있었다. 태극기 깃대를 든 나와 예술단원들을 보고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조금 있으면 이곳을 지나갈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를 보러 온 한국의 관광객들이었다.



대마도 시청 현관에는 왼쪽에 태극기와 오른쪽에 일본기가 꽂혀 있었다. 쯔쯔 민박집 예술단원과 만나 대마도 시청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 출발 장소인 이씨왕조가 유적지로 향했다. 입구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오늘 행사를 선도할 군악대 뒤로 정사, 부사, 종사관의 가마를 비롯해서 학사, 상관, 훈도, 포수, 순시기수, 영기수, 청도기수, 마상고수, 세악수, 풍악수 등 순서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예술단원은 행렬의 대미를 장식할 굿거리 임무를 맡았기 때문에 맨뒤로 갔다. 박단장이 행사 시작에 앞서 몇 가지 사항을 당부했다.

“우리는 맨 앞에 태극기 기수가 가고, 그 다음에 구홍덕 박사님과 김영준 선생님은 진도북춤기를 들고 따라 가시고요, 상쇠 내 뒤로는 연습 때 말씀드린 순서대로 따라오면 됩니다. 그리고 제발 웃으세요. 다 아셨죠?”

“네에!”

예술단원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고깔을 단단히 묶고 연습 한번 하자는 박단장의 제의에 기다렸다는 듯이 북치고 장구를 친다. 어느새 박단장의 꽹과리에 맞춰 한바탕 굿거리 판이 신명나게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군악대의 군악이 울렸다. 대장정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가 시작되었다. 책에서만 읽었던 조선통신사 행렬에 구경만 해도 큰 자랑거리인데, 직접 참여하다니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교과서에다 천명한 중대한 사건으로 한일 감정이 미묘한 시기에 내가 태극기를 들고 이 행사에 참여하여 일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마도 시가지를 당당히 걷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 사람의 자긍심이라고 생각했다. 거리의 구경꾼들 중에는 태극기를 보면서 손을 흔들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며 최고라는 표시도 보여 주었다. 내 앞에서 일본 NHK 텔레비전 카메라가 한동안 태극기를 촬영하기도 했다. 뒤에 들은 이야기인데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에서 태극기가 나타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대마도 시청을 지나서부터는 언론사 취재가 부쩍 늘어 진행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구경꾼들에게 볼 만한 것은 우리 예술단의 굿거리였다.

대마도를 진동시키는 태평소 소리 아래로 원색의 고깔을 쓴 예술단원들이 각자의 북 장단에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 발짝 나서다가 멈추듯 무릎 박자로 뒤로 조금 물러서기도 하고, 쌍북채 손에 들고 어깨를 들썩들썩 흥을 돋우며 생긋생긋 웃는 모습이야말로 천상에서 내려온 축제의 천사 같았다. 내 뒤에서 진도북춤기를 든 구홍덕 박사는 본디 낙천적인 기질로 포수 행세를 하면서 온갖 재주를 부려 구경꾼들에게 박수를 받곤 했었다.

행렬은 하찌만구 신사 네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곧 수로 길을 따라 이즈하라항 쪽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구경꾼들 속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도 있었는데 우리 예술단이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란 전통의 맥이자 자랑거리였다. 이런 큰 행사가 있는데도 거리며 골목에는 노점상이나 잡상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즈하라 전체가 깨끗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사람이 조금 모일 기미만 보이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잡상인과 노점상이 아니던가. 아마 한국에서 이런 정도의 행사가 있다면 노점상과 잡상인으로 그 지역은 무질서와 쓰레기로 초토화가 되고, 각종 사건 사고로 얼룩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비교를 해보니 태극기를 들고 이즈하라 시내를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일본 사람은 최고의 덕목은 애국과 준법정신이다. 개인은 희생되어도 나라는 잘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정신인 것 같다. 그래서 일본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가미가제 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을 언제 어디서든지 발휘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또 일본 사람은 남에게 피해 끼치는 일을 금기시하여 항상 쓰미마셍(미안 합니다)이라는 말을 생활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다.

일본 사람이 가장 무서워한 것은 아버지, 지진, 불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모범되지 못하면 자식이 흐트러지고, 아버지가 애국심과 예절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으면 가정과 이웃 사회가 망한다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란 곧 최고의 존경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은 천황, 조직의 대장(오야봉)에 대한 충성심은 목숨과도 바꾼다. 그런 정신이 오늘의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을 뛰어 넘기 위해 키워야 할 것은 반일 감정도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능가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문화의 힘이다. 요즘 위 아래도 없고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하는데, 곧 우리의 전통 문화가 붕괴 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려우면 뭉치고 쓰러뜨려도 일어난다는 정신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는 것은 뜨겁게 달구었다가 얼음처럼 시들어버리고, 셋만 모이면 편을 가른다는 속성이다. 따지고 보면 독도 문제도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저지른 속셈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착잡하기만 했다.

우리 예술단이 일본의 언론과 구경꾼들의 이목을 받으면서 이즈하라항 무대에 도착하였을 때는 조선국왕의 국서를 전달할 한국으로부터 임명받은 정사(正使)와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을 소개하고 있었다. 약 2.5km의 거리에서 재현된 401회 조선통신사행렬은 여기서 끝났다. 우리 예술단은 오후 늦은 시간 6시 45분에 어제 이 무대에서 선보였던 진도북춤 공연을 다시 한차례 가졌다. 이때도 태극기 깃발은 빠지지 않고 나타나 공연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힘을 주는 정신적 에너지이다. 개인적으로 남북 행사 때 한반도기가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기는 국기가 아니다. 자칫하면 태극기에 대한 정체성을 흐리게 할 빌미가 된다. 북한 땅에 태극기가 나타나면 안 되고, 남한 땅에 북한기가 나타나면 안 되니 대신에 한반도기를 사용하자는 것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밖에 안 된다. 가까운 현미경보다는 멀리 보는 망원경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진도북춤 공연이 끝나자 아사히 텔레비전 카메라가 다가오더니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번 이즈하라항 대마도 아리랑 축제에 태극기를 보니 특별한 느낌이 든다면서 이 행사에 참가하게 된 소감을 물었다. 나는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는 이즈하라항 축제이면서도 한일간 좋은 문화교류이자 세계적인 볼거리이니 더 좋게 발전시키고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대마도 아리랑 축제는 밤 9시 불꽃놀이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 민박집에서 아침 뉴스로 NHK 텔레비전을 보니 독도를 일본 교과서에 표기한 것에 대하여 한국이 크게 반발하여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에 민간사절단을 축소하여 파견한 것을 보도하고 있었다. 한일간의 역사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한다. 우리 민족처럼 끈질기고 생명력이 강한 민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일간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얕잡아 보는 단점을 없애는 일이다. 그리고 일본을 보는 시각은 현미경 속의 티끌이 아니라 망원경 속의 미래라야 한다. 내가 행사 기간 동안에 받들고 다녔던 태극기는 마지막날 이즈하라항을 떠나면서 아지트 식당에 선물하였다.

이번 조선통신사행렬 재현 행사에 참여한 나의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진도북춤과 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였다.



■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 송명호(시인)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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