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이고 형형색색인 스매싱 펌킨스의 Today
선정적이고 형형색색인 스매싱 펌킨스의 Today
  • 이근형
  • 승인 200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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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코건의 ‘사랑병’이 담긴 뮤직비디오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빌리 코건이 2집 Siamese Dream에 들어갈 노래인 Today를 작곡할 때, 그의 심정은 상당히 우울했었다고 한다. 종종 매니저에게 미치도록 우울하다고 말한 적 있었으며, 스매싱 펌킨스를 따르는 팬들 또한 빌리 코건이 울적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빌리 코건은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이리저리 멜로디를 만들어 본 끝에, Today라는 곡의 생명이자 핵심인 ‘상승했다가 다시 아래로 꺼지는 듯한 섬세한 멜로디’를 탄생시켰다. 이 멜로디에 대해 어느 유력 음악 잡지에서는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멜로디’ 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어쩌면 스매싱 펌킨스 밴드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파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Today는 빌리 코건의 울적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명곡이다. 스매싱 펌킨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이 무엇인가.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가는 사람의 우울한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게 바로 스매싱 펌킨스의 음악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Today의 뮤직비디오 또한 러닝 타임 내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축 처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예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빌리 코건은 그런 예상을 단박에 깨트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Today의 뮤직비디오는 원색의 색채가 잘 물들여진, 아름다운 풍광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들을 다룬 내용이다. 우울한 요소를 찾기는 좀 힘들다.


빌리 코건은 스테판 세드나위(Stephane Sednaoui)라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 및 감독과 함께 손을 맞잡고, 1993년 9월 미국의 어느 황량한 벌판에서 Today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빌리 코건은 세드나위 감독에게 이 뮤직비디오의 전체적 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콘티 몇 가지를 제안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스크림 트럭’이었다. 빌리 코건은 머릿속에서 아이스크림 트럭이 떠올랐고, 그 트럭을 쫓아가 고사리 손을 내밀며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는 아이들의 그림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트럭을 중심으로 해서 황량한 벌판을 달리는 장면을 넣자고 제안했고, 세드나위 감독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의 인트로 부분에 하얀색 아이스크림 트럭이 등장하고 빌리 코건은 아이스크림 판매자로 연기하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가려고 졸졸 좇아오는 것이다.



이후부터 빌리 코건이 아이스크림 트럭을 운전하면서 황량한 벌판을 신나게 달리며, 운전석에서 두 다리를 운전대에 올려놓고 Today의 가사를 읊는다. 이때 어느 긴 생머리의 여인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빌리 코건은 자신이 쓰고 있던 흰 모자(아이스크림 판매자가 착용하는)를 던져버리더니, 이내 그 여인을 차에 태운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스매싱 펌킨스의 멤버 제임스 이하(James Iha)다. 놀랍게도 제임스 이하가 여장을 하고 출연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터져나오는 약간의 웃음, 그리고 시각적 충격은 빌리 코건이 삽입해놓은 작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이들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계속 향하는데, 그 사이에 제임스 이하는 기둥 잡고 서서 차 문을 열고 장난감 물총을 들고 바깥을 향해 쏘는 시늉을 하는 등, 장난끼 있는 여자(?) 역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이 더 키치적일지도 모르겠다. 여장한 제임스 이하가 차 앞에 섰을 때, 빌리 코건은 갑자기 드러눕더니 거꾸로 그녀(?)의 몸을 눈으로 훑는다. 제임스 이하의 볼륨있는 몸매 (!)를 카메라가 잡고 있으니 코웃음밖에는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장면 곳곳에 불편하면서도 키득키득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집어넣었다.


아이스크림 트럭은 오색 빛이 찬란한 벌판을 지나 인적 드문 주유소 쪽으로 향하는데, 그곳에는 드러머 지미 체임벌린(Jimmy Chamberlin), 그리고 베이시스트 디아시 레츠키(D'Arcy Wretzky)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각각 페인트 붓과 페인트 통들을 소유하고 있는데, 아이스크림 차가 기름을 넣기 위해 정차했을 때 어느새 제임스 이하는 여장을 벗어던지고 노란색으로 코디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나와 페인트 붓을 들고 있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페인트 붓으로 하얀 외관의 아이스크림 트럭을 제각각 색칠한다.


빌리 코건은 노란색 페인트를 자신의 다리에다가 색칠하더니, 다음에는 빨간색 페인트로 아이스크림 트럭 문 앞쪽에다가 엑스(X) 자를 그린다. 디아시는 차 유리 옆면을 칠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얼굴에다가 노란색 페인트로 화장(?)을 하고. 카메라 무빙은 스피디하게 진행되며, 종국에는 페인트 통을 아예 차 전면에 뿌리는 식으로 절정에 다다른다. 형형색색의 페인트들이 흰 아이스크림 트럭에 덕지덕지 묻혀지는 이 모습은 시각적으로 굉장한 효과를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전혀 신경 안쓰고 서로 페인트 칠해주는 놀이에 푹 빠진다. 옷들은 페인트로 심하게 더럽혀진다. 페인트 칠하기 놀이를 끝낸 멤버들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떠나는데, 그 와중에 빌리 코건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운전석에다가 부었다가, 멤버들의 지탄만 받고 차에서 쫓겨난다. 빌리 코건이 가지고 있던 짐이나 가방 모두 다 밖으로 내던져 버린다. 빌리 코건은 혼자 그 황량한 벌판에 남아 멍하니 서서, 무심히 떠나가는 멤버들에게 손 인사를 하면서 뮤직비디오는 끝을 맺는다.



여기까지가 Today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이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해석할 때, 빌리 코건이 자신의 우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황량한 벌판을 자동차 드라이브로 풀고 싶고, 또한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과 같이 모여서 그 자동차를 페인트로 칠하는 일종의 그래피티 놀이를 하며 우울한 마음을 싹 가시게 만들고 싶다고 풀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빌리 코건이 짐이나 가방 모두 내던지는 동시에 쫓겨나는데, 그것은 어쩌면 어떤 방법을 써도 결국엔 우울증을 이겨낼 수 없다는 빌리 코건의 소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 뮤직비디오에는 정말 중요한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절묘한 타이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청춘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고 키스하고, 성행위 비슷하게 뒹구는 모습이 뮤직비디오 내내 빌리 코건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트럭 한 대가 등장하는 이 뮤직비디오의 인트로에서도, Today의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 어느 남녀가 벽에 기대 격렬한 키스를 하고 있다. 빌리 코건은 그 장면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는데, 그 후엔 그 남녀가 화면에서 싹 사라진다. 빌리 코건이 아이스크림 판매를 마치고 트럭을 운전할 때도, 그 황량한 벌판에는 수많은 남녀가 서로 부둥켜 안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특히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이 트럭에다가 페인트 칠을 할 때, 카메라 워크는 사랑을 나누는 남녀들로 집중 조명하면서, 원색으로 칠해지는 트럭과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을 절묘하게 일치시켜 놓았다. 어느새 들판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수의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고, 그 들판에서 빌리 코건은 트럭에서 쫓겨나고 만다.


빌리 코건이 어떤 사유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고, 그리고 그 어떤 우울증으로 Today라는 곡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빌리 코건 및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만이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우리들은 노래의 가사나 이런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물을 통해, 아니면 빌리 코건이 어느 인터뷰에서 몇 개 던져놓은 ‘떡밥’을 통해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이 Today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빌리 코건의 의도를 추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 뮤직비디오에서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는 ‘남녀간 사랑 나누는 행위’, 그리고 빌리 코건이 ‘우울할 때 만든 노래가 Today' 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빌리 코건은 당시 2집 Siamese Dream을 만들고 있을 때, 사랑에 가슴앓이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당시 스매싱 펌킨스 내에서도 제임스 이하와 디아시 레츠키는 연인 사이였고, 빌리 코건은 록그룹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의 아내 커트니 러브를 흠모하고 있었다. 빌리 코건은 이런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자신 또한 사랑을 하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우울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매싱 펌킨스 멤버들이 빌리 코건만 남겨두고 홀연히 트럭을 타고 떠난 것은, 바로 그 장소가 수많은 남녀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연인의 공간’ 이기 때문에,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외로워하는 빌리 코건을 생각해서 거기에 내려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실제 뮤직비디오에서도 빌리 코건이 내린 곳에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의 연인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빌리 코건은 카우보이 모자를 고쳐 쓰고, 굳은 심지를 드러내는 듯한 굳은 표정으로 그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그 평야에 터벅터벅 걸어간다. 빌리 코건도 그 들판에서 아리따운 여성과 함께 키스를 하고 싶은가 보다. 이렇게 유추해보면, 빌리 코건이 괴로워했던 바로 그 문제점이 ‘사랑’ 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이 뮤직비디오를 본 필자의 유추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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