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④
“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④
  • 송명호
  • 승인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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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의 배경 / 송명호



[인터뷰365 송명호] 오후에 있을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 행렬, 그리고 매년 재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은 일본 행사라기보다는 한국 행사일지도 모른다. 그 배경을 거슬러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때는 마침 1404년(태종 4), 조선왕국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맺어졌다. 이를 계기로 조선국왕과 일본의 막부장군은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라고 했고,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가리켜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통신이라는 의미는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사절단 이름을 조선통신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보빙사(報聘使)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통신관(通信官) ·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조선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朴瑞生)을 파견할 때부터였다. 조선통신사 파견을 통해 왜구 금지요청, 일본국정의 탐색,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등을 축하했다.

세종대왕 때에는 이종무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의 토벌로 노략질이 어렵게 되자 왜구는 조선에 교역을 요청하였고 조선은 일본의 간청으로 3개의 항구를 개항하여 식량과 옷감, 구리 등으로 바꾸어 주는 등 선린의 배려를 베풀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양국 국교가 단절되었으나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게 되자, 그 후 일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의 침략을 깊이 반성하고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고자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여 임진왜란 때에 끌려간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였고, 양국간에 신뢰를 다지고 또 조선의 발달된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수하기도 하였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방문 목적의 따라 300~500명에 달했으며, 정사 , 부사 , 종사관, 통역, 군관, 병사 ,의원, 화가 ,인쇄공 , 악공 , 뱃사공, 등으로 구성되어 학문, 기술, 예술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하여 파견하였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를 타고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이즈하라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오사카의 요도우라(淀浦), 육로로 교토로 갔다가 도쿄에 도착하여 조선왕국의 국서를 전달하였는데 그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기도 하였고, 통과 지역마다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접대 예의가 너무나 화려하고 장엄하여 그 경비가 엄청나서 1711년 아라리 하구세키는 통신사 접대에 관한 규정을 바꾸기도 하였으나 1719년에는 다시 환원되었다. 이런 통신사의 파견에도 불구하고 1592년부터 7년간에 걸친 히데요시(秀吉) 침략의 임진ㆍ정유왜란은, 일본군에 의해 대살육이 일어나, 방화, 약탈, 기아, 연행 등의 참상을 빚기도 하였다. 어쨌든 예전에는 조선이 일본보다 사회 문화적으로 우위었지만 19세기 중반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면서 급격한 근대화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세계 경제 강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역사적 근거로 대마도에서는 이즈하라항 아리랑 축제와 함께 올해는 401회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다. 당초에는 ‘이즈하라항 축제’였으나 한일 민간교류를 더 활성화하기 위해 이곳 향토학자의 제의로 ‘아리랑’이란 단어를 추가하여 ‘이즈하라항 아리랑 축제’로 명명했다고 한다. 도심을 길게 흐르는 수로의 다리 난간에 조선통신사의 삽화로 장식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마도는 확실히 조선통신사의 섬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나로서는 만감이 교차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교과서에 독도의 영토를 일본이라고 주장한 단서로 한일 양국이 팽팽하게 냉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마도의 일상은 독도 문제와는 별게라는 듯 축제에만 열중한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한국 정서로는 행사를 당장 취소할 법 한데 의외로 거리마다 온통 축제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이런 대마도의 현지 사정을 지켜 본 한국 사람의 일부에서는 속셈을 감춘 일본 사람의 근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일부에서는 돈이라면 쓸개까지 빼주는 일본 사람의 경제 근성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유야 어쨌든 나의 견해로는 냄비처럼 금방 뜨거웠다가 얼음보다 더 차가워지는 한국 사람들보다는 지진과 파도에 단련된 일본 사람들이 더 차분하고 냉정한 것 같았다.



우리 숙소의 일행은 발길을 재촉하여 점심시간이 예약된 금석관으로 향했다. 아침에 비가 온 탓인지 날씨가 조금 서늘해졌다. 다행스러웠다. 어제와 같은 뙤약볕이라면 오늘 행사가 난감했을 것이다. 금석관 가는 길에 주점인 듯한 벽에서 이상한 표지판을 보았다. 여행을 온 한국 사람이 이곳에서 큰 행패를 부린 듯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출입을 삼가달라는 경고 표지판이었다. 창피하고 분했다. 우리는 한일 관계의 역사적 감정으로 일본을 이겨야 한다고 떼를 지어 팔팔 뛴다. 하지만 팔팔 뛰어서 이길 일은 아니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전쟁이 아니라, 수준 높은 문화의식을 키워야 한다. 일본 사람보다 더 친절해야하고, 일본의 거리보다 더 깨끗해야 하고, 일본보다 더 한수 위인 관광 마케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지 일본만 하는가. 밤새 흥청망청 마시고 이성을 잃어버린 흔적들을 길바닥에 남겨 놓으려는 듯 여기 저기 전 부치듯 토해 놓고, 또 얌체처럼 버린 쓰레기들로 마치 태풍이 스쳐간 험상궂은 형국으로 과연 일본을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산하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다. 서울과 수도권만 벗어나면 땅도 넓고 관광지로 개발할만한 곳도 너무 많다. 그중에 제주도는 천혜의 비경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일본 관광객을 눈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한번 온 일본 관광객이 두 번 다시 오겠느냐면서 불친절은 말 할 것도 없고 음식값이며 관광 상품에 바가지를 몽땅 씌운다니 누가 제주도 관광을 오겠는가. 비단 제주도 뿐만 아니다. 전국 도처가 그런 실정이라는 것을 결코 부인하고 싶지 않다.


대마도나 일본을 관광 온 한국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거리가 너무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깔끔하고, 항상 ‘쓰미마셍(미안 합니다)’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걸 느끼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아와서는 언제 그런 것을 보고 느꼈느냔 식으로 까맣게 잊어버리니 비싼 돈 들여서 일본을 관광한 보람은 한낱 낭비로 그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찌 일본을 이기겠다고 덤비는지 한숨만 터진다. 이런 저런 착잡한 생각을 하다 보니 점심 생각조차 내키지 않아 대충 때우고 금석관을 나왔다. 수로길 양쪽 골목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둘 셋 어울려 나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오후에 있을 조선통신사행렬 행사 요원 같다. 책에서만 읽어 왔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이번에 비로소 내가 직접 대마도 현지에서 참여한다니 그 웅장함을 서둘러 보고 싶어진다. <계속>



■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 송명호(시인)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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