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②
“아리랑 아리랑 대마도 태극기요” ②
  • 송명호
  • 승인 200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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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 혼을 빼놓은 진도북춤 공연 / 송명호

[인터뷰365 송명호] 대마도 첫날밤을 기라쿠나야도 민박집에서 보낸 아침이었다. 후덥지근했다. 온몸이 끈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밤에 샤워 순서를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잠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샤워실은 하나인데 열여섯 명이 주어진 시간 안에 사용하려니 성질 급한 사람은 숨 넘어 갈 것 같고, 굼뜬 사람은 자기 순서 한번 못 챙길 일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샤워하기는 영 틀린 것 같았다.

오늘 일정이 만만치 않았다. 오전에는 예술단 전원이 한 곳에 모여 연습을 하고 오후에는 이즈하라항에 마련된 무대에서 두 차례나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는 민박집에서 먹기로 했다. 일본 여행을 몇 차례 했었고 또 작년 가을에 대마도를 와 본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호텔에서 묵었기 때문에 민박집에서 아침 식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몹시 궁금했다. 대마도는 일본이라 해도 시골이니 어떤 밥상이 차려질까, 반찬은 무엇이며,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는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탁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나의 기대가 너무 컸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네모 쟁반이며, 단무지 두 쪽의 작은 접시, 손가락 두 개를 합친 너비의 김조각, 날달걀 한 개, 연 두부 반조각, 얇은 연어구이 한 토막, 미소 시루라고 하는 연한 된장국과 쌀밥이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국 한 그릇에 반찬 5개를 1즙(汁) 5채(菜)라고 하는데, 일본을 여행을 올 때마다 흔히 보고 먹었던 낯익은 상차림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삶은 달걀보다는 날달걀을 즐겨 먹는다. 생선구이는 한국의 김치처럼 매끼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주로 연어구이 아니면 고등어구이가 나온다. 식탁에 둘러앉은 일행들은 이런 상차림을 앞에 놓고 자기의 소감을 늘어놓는다. 일본 사람들은 소식하기 때문에 양이 적다느니, 이렇게 먹으니 키가 작다느니, 음식 찌꺼기가 나올 수 없다느니, 먹다가 부족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 한마디씩 꺼내며 한 점씩 집어서 맛본다. 쟁반 귀퉁이에 엄지손가락만한 열매가 하나 놓여 있는데, 우메차즈케라는 매실절임이다. 일본 사람들은 식사 끝에 후식으로 꼭 먹는다. 매실의 신맛은 소화기관에 영향을 주어 위장, 십이지장 등에서 소화액을 내보내게 하고, 독성물질을 분해하는 효능이 있어서 식중독, 배탈을 막는다. 물이 좋지 않은 일본에서는 식사를 하고 나서는 습관처럼 매실절임 한 개를 꼭 먹는다.


한국에서 이런 밥상을 차렸다가는 욕만 잔뜩 얻어먹고 딱 망하기 알맞겠지만, 일본은 소식하고 아끼는 습성이니 탓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국그릇이 넘치듯 퍼 담은 얼큰한 된장국이며, 얼굴을 가릴 만큼 큰 접시 위로 수북하게 올려놓은 김치며, 먹든지 말든지 차려 놓은 여러 종류의 젓갈 접시며, 한 마리는 정이 없다면서 서너 마리 포개서 내 놓은 생선구이며, 뚝배기 가득 부풀어 올랐다가 스르르 꺼지는 달걀찜, 고추장, 쌈장, 상추, 매운 고추와 맵지 않은 고추, 오이냉국, 손바닥만한 김, 깻잎 절임, 고사리며 도라지나물, 이름도 모른 장아찌 반찬들이 순서 없이 식탁을 가득 채우다 보니 맨 나중에 나오는 밥과 국은 어디다 놓아야 좋을지 난감해지는 푸짐한 한국 식탁에 비하면 일본의 식탁은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예술단원들은 각자 악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태극기를 챙겼다. 예정대로 공연에 앞서 단원 전체가 모여서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도보로 5분 거리인 쥬하찌은행 앞으로 갔다. 대마도에서 약속하기 좋은 장소로는 이즈하라 쇼핑센타와 쥬하찌은행이었다. 그중 쥬하찌은행은 그 표기가 ‘18은행’이라서 한 눈에 기억되어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약속 장소로 선호하는 것 같았다.



우리 숙소 일행과 쯔쯔 민박집 예술단원들은 약속된 시간에 만나 버스에 올랐다. 공연 연습장은 버스로 이십 여분 거리에 있는 아오시오노사또 해수욕장이었다. 해수욕장은 너무 조용했다. 한국의 해수욕장 같았으면, 발 딛을 틈도 없이 와글와글 거렸을 터인데, 어른 아이해서 열 명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너무나 깨끗했다.

한쪽 숲이 우거진 곳에는 방갈로가 있었는데 학생인 듯한 청소년들이 캠프 중이었다. 방갈로와 조금 떨어진 반대편에 그늘막 한 채가 있었다. 예술단원들은 폭염의 뙤약볕을 피해 그늘막 안으로 들어가 정해진 위치에 앉았다. 북, 장구, 징은 앉고, 소고잡이들은 뒤에 섰다. 그늘막 밖 앞에는 꽹과리를 잡은 박단장, 태평소 서영훈 악장, 장구 정진이가 자리를 잡았다. 꽹과리는 가장 작은 타악기지만 소리의 기운이 천둥소리에 비유되어 풍물굿판에서는 사물을 주도하는 지휘자 역할로 상쇠라고 불러왔다.

“자, 주목하세요!”

박단장이 입을 열자 모두들 바짝 긴장된 얼굴들이었다. 박단장은 계속해서 “대마도까지 와서 우리 예술단 공연이 잘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연습 밖에 없습니다. 오후에 두 차례나 무대에 오르려면 시간이 없으니 오전 중에 열심히 맞춰 봅시다!”라고 단원들 사기를 북돋웠다.

모두들 “예!”라고 크게 대답하자, 박단장이 꽹과리를 두드렸다. 이어서 태평소가 삐이이 하고 가락을 뽑고, 덩달아 단원들의 북이며, 장구며, 중간 중간 징이 울리면서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단장이 연습을 정지 시켰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연주 중에 엇나간 단원 몇 명을 지적하면서 장구 치는 몸짓, 북채 잡는 자세를 바로 잡도록 하고 다시 시작하지만 또 얼마가지 않아서 중지시키곤 하는 것이었다. 사실 단원들 중에는 수년 동안 사물악기를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겨우 몇 달 밖에 배우지 못한 단원도 있는 것 같았다.

단원들이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오후 공연 때 무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할 생각으로 키만한 막대를 구하러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가까스로 낡고 조금 휘어진 대나무 한 개를 주었다.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 이만한 대나무 막대가 어디 있겠냐 싶어서, 껍질에 묻은 검은 때를 싹싹 문지른 다음에 태극기를 묶으니 그런대로 모양새가 났다. 이걸 본 단원들이 환호했다.

이후로도 연습을 단원들의 온몸이 땀에 흥건하게 젖도록 계속됐다. 연습이 반복되면서 장단 가락이 척척 맞아지자 우리 소리가 저리도 좋은 지 가슴으로 찡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습은 한식 식당에 주문했던 도시락 배달이 오고서야 끝났다.

박 단장은 “내 맘에는 아직 멀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 성질들이 있으니, 연습은 이만하겠습니다.”며 연습 종요를 알렸다.

모두들 자축과 격려의 박수를 치고 나서 도시락 한 개씩을 받아 들었다. 도시락을 빨리 비운 사람들은 바닷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하여 마치 바다 거울을 보는 듯했다. 그늘막 옆 잔디밭에서는 도시락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춤 연습이 한창이었다.



우리 예술단의 오후 첫 공연은 5시에 예정되어 있어서, 4시 30분까지 이즈하라항 대합실에 모두 집결하였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얼굴 화장과 옷매무새를 정리한 다음 무대 뒤로 자리를 옮겨 대기하였다. 나는 태극기 깃대를 들고 무대 앞 광장 중앙으로 나와 서 있었다. 공연 동안에 태극기를 힘껏 흔들며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가면 캐릭터 쇼가 끝나자 사회자가 우리 예술단이 소개되었다. 우리 예술단이 무대에 나타나자 박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무대에 앉아서 하는 북장단 공연 순서였다. 자리가 정리되자 박단장의 꽹과리가 울리고 이어서 태평소의 애끓는 소리와 함께 북장단이 덩더덩 덩더꿍 울리고 거기에 경쾌한 장구 소리가 같은 박자로 끼어들고, 중간 중간에 때려주는 징소리의 여운이 한데 어울려 이즈하라항을 온통 들뜨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사물악기는 각각 소리의 특징이 있는데, 이를테면 꽹과리는 천지를 흔드는 천둥소리요, 북소리는 구름처럼 둥둥 뜨게 하고, 장구는 마치 세찬 비를 몰고 오는 듯하고, 징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태평소는 애절한 음색으로 아주 길고 멀리 울리는 특징 때문에 흥을 돋우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사물놀이에서 태평소가 있고 없는 차이란 흥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하게 된다. 사물 장단이 침체될만하면 꽹과리 상쇠가 던지는 얼씨구 얼쑤 한마디 추임새에 힘을 얻어 북이 찢어져도 좋고 장구채가 부러져도 좋다는 식으로 연주에만 몰입하는데, 이때 구경꾼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어깨를 들썩들썩하기 마련이다. 그 흥에 겨워 죽었던 귀신도 벌떡 일어나 눈을 뜨게 한다는 우리나라의 사물놀이 연주다. 나는 무대의 예술단을 바라보며 행여나 사기라도 떨어질까봐 태극기 깃대를 높이 들어 위로 아래로 흔들며 춤을 추었다.



“워매 태극기도 왔네. 여기서 보니께 겁나게 반갑네. 어디서 왔다요?”

때마침 이곳을 관광 온 일행이 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진도북춤공연단이라고 말하자, “잉, 어쩐지 잘 허구만. 근디 저 아저씨 볼딱지 터지면 어쩔까. 징상스럽게도 불어 재끼네.” 한다.



태평소를 부는 서영훈 악장의 터질 듯한 양 볼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연습할 때도 보았지만 태평소 부는 힘이 어찌나 센지 입안에 두꺼비를 몇 마리 넣고 부는 줄 알았었다. 홍색, 청색, 황색 끈을 끝에 매단 북채를 양 손에 쥐고 오른손은 북 아래를 치고, 왼손은 번개보다 더 빠르게 북 양쪽을 오가며 칠 때는 고개까지 신들리듯 흔드는데 저 정도면 지구도 멀미할 지경이었다. 그런가하면 중간 틈에 양쪽을 벌려 덩더덩 가벼운 춤사위를 하다가도 소나기 퍼붓듯 정신없이 북채를 두드려대는 모습이란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재주였다.

북장단 공연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사이 관중들의 아쉬운 환호와 함께 끝났다. 그리고 40분 뒤에 진도북춤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관중들은 다시 환호했다. 무대 왼쪽의 악사석에서 태평소가 구성지게 터지자 그 흐름에 맞춰 얼씨구 추임새와 함께 깨개갱깽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비녀 머리 한식 무용복에 북을 맨 단원들이 쌍북채로 북 한번 치고서 두 팔을 하늘로 향해 크게 벌리며 덩실덩실 경쾌한 걸음으로 등장하자 관중석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이때다 싶어 태극기 깃대를 높이 치켜들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제 18호로 지정된 진도북춤은 쌍북채를 이용하여 사물악기에 맞추어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가락을 타면서 큰 손짓과 박진감 넘치는 몸짓으로 북가락이 갖는 시간적 소리와 율동이 갖는 공간적 조화가 무대를 통째로 뜨겁게 하는 흥겨운 춤판이다. 살풀이 같은 마당에 치마 밑으로 슬쩍슬쩍 비치는 버선발 까치새 발사위를 보고 안 미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게 북춤인교? 나는 첨 보는데 환장하겠심더.”

“거 보소. 잘 왔제?”

아마도 이즈하라항 축제를 보자고 제안했던 부산 관광객의 말이었다.

사실 나도 진도북춤을 실제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 등의 화려한 무궁화 그림에 쌍북채로 양북을 치며, 발로는 땅을 다지고, 양 팔로는 하늘을 열고, 또한 경쾌한 몸짓으로 세상을 아우르려는 천진난만한 끼는 한국 사람만이 다스릴 수 있는 예술이었다. 저런 춤을 보면서 자칫 정신을 놓으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오줌마저 질금질금 흘리고 말 것이다. 속이 후련하도록 무대를 한바탕 종횡무진하던 진도북춤은 모든 관중들의 혼을 쏘옥 빼 놓고서야 막을 내렸다. 그렇게도 푹푹 찌던 대마도의 폭염도 진도북춤의 신명났던 여운과 함께 서서히 노을의 휘장을 닫고 있었다. <계속>



■ 태극기선양운동중앙회 상임고문 송명호(시인)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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