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정영일 선생을 기억하십니까
영화평론가 정영일 선생을 기억하십니까
  • 정중헌
  • 승인 2008.08.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애정과 독설로 영화를 평하던 그의 20주기 / 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화 좋아하는 중장년 팬이나 조선일보 독자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KBS <명화극장> 해설자로 나와 “놓치면 아까운 영화”를 강조하던 검은 뿔테의 모습, 신문 영화평란에 거침없는 독설과 트레이드마크처럼 사족을 달았던 열정의 로맨티스트 정영일.

8월 25일은 그가 세상을 뜬 지 20주기 되는 날이다.

가족들과도 소원해지고 석래명 감독 등 지인들마저 없는 상황에서 솔직히 말해 그 분의 기일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며칠 전 ‘영화에 미친 남자’로 불리는 영화자료 연구가 정종화 선생이 전화를 했다. 98년 10주기 모임을 충무로 한 음식점에서 가졌는데 20주기 모임을 가까운 사람들끼리 가졌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10주기 때 참석자 명단까지 알려주었다. 유족으로 동생 정완재 선생이 나왔고, 평론가 안병섭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다. 평론가 김종원 변인식 선생,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된 강한섭 교수, 정인엽 감독, 정영일 선생이 생전에 아꼈던 배창호 감독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정종화 선생은 고인과 관련된 영화포스터를 식당 벽에 걸었고,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영화 기획을 하는 채윤희씨, 그리고 스포츠조선의 이창세 기자가 참석했다.

정영일 선생과 필자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

1975년 문화부로 발령 받아 부장으로 모시면서 1988년 작고하실 때까지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4년 영화평과 음악에 관한 고인의 글을 엮어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영일-그가 쓴 영화 ▪ 음악 ▪ 세상 이야기>(미세기 간행)라는 평론집을 냈다. 스포츠조선 문화연예부장 시절 부활시킨 청룡영화상에 정영일 영화 평론상을 제정했으나 네 번의 수상자를 내고 중도하차한 것이 못내 아쉽다.

정영일 선생은 서울올림픽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1988년 8월 25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그날 밤 억수처럼 비가 쏟아졌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뜨고 나면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마련인데, 그래도 영화계에서는 정영일을 기리는 인정을 보여주었다. 1주기 추모행사를 영화인들과 가족이 주축이 되어 충무로에서 격식을 갖춰 가졌으나 매년 모이지는 못했다.

1992년 4주기 기일 날, 지금은 고인이 된 <고교 얄개>의 석래명 감독이 추모모임을 마련했다. 원로 유현목 감독을 비롯해 평론가 변인식 선생, 고인의 동생 정완재 님과 소년조선일보 편집국장 이준우 선배 등이 술잔을 기울이며 정영일 선생 생전의 일화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 절정기에서 막을 내린 그의 영화인생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주기 모임에 이어 이번에 20주기 모임을 갖게 되니 세월의 흐름이 화살처럼 빠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4주기 추모모임의 소회를 필자는 스포츠조선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정영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검은 안경테 안에서 소년처럼 빛나던 눈빛, 넥타이를 매지 않은 수수한 차림의 매무새뿐 아니라, KBS <명화극장> 해설자로 나와 “놓치면 안될 영화”를 강조하던 낭랑한 목소리도 떠오를 것이다. <사랑방 중계>에서 원종배 아나운서와 호흡이 맞던 모습도 생생할 것이다.

조선일보 독자들은 그의 영화평 말미에 붙던 별점과 사족도 뇌리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는 30년 가까이 언론에 몸 담았지만 한 번도 영화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영화인이자, 자신의 개성을 한껏 담은 날카로운 평문으로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스타일리스트였다.

예전의 평문들을 지금 다시 읽어봐도 문장에 리듬이 실렸을 뿐 아니라 행간에서 스크린을 꿰뚫어 보는 그의 예리한 안목과 해박한 상식을 엿볼 수 있다.

배창호 감독의 표현을 빌면 그는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평론가”였다. 항시 애정어린 눈으로 영화를 지켜보며 함께 울고 웃던 그였지만, 본인의 눈에 차지 않으면 독설도 불사했던 고집불통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음악, 삶과 인생 이야기를 즐긴 고인은 애주가이기도 했다. 과음이 그의 건강을 상하게 했지만, 실향민에다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그에게는 술이 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계 일각에 그에 대한 비판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진정성과 실체를 아는 영화인들은 ‘살아있는 영화-음악의 백과사전’ 정영일의 타계를 지금도 애석해 하고 있다.

요즘처럼 영화계가 혼란스럽고 인정도 메말라가는 걸 보면서 정영일 선생 같은 분의 존재가 새삼 아쉬워진다. 철학도 있고 낭만도 있고 바른말도 서슴지 않는 영화인의 표상으로 정영일 선생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 20주기를 맞아 모두가 일상 속에서 망각했던 영화평론가인자 언론인 정영일 선생을 서울 한 모퉁이에서 다시 생각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우리 영화계가 아직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정영일을 생각하는 20주기 모임은 8월 24일(일요일) 저녁 6시 30분 대중음식점 ‘단호박’(02.749.8253)에서 갖는다.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중헌
정중헌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