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의 백년전쟁 - 유로 2004 프랑스 vs 잉글랜드 ②
축구판의 백년전쟁 - 유로 2004 프랑스 vs 잉글랜드 ②
  • 이근형
  • 승인 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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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과 지단의 축구공 대결 / 이근형



후반전 1편 - 비운의 잉글랜드, 프랑스의 기사회생


[인터뷰365 이근형] 프랑스는 전반 막판에 램퍼드에게 내준 골을 만회하기 위해 후반전부터 바싹 공격진에 힘을 주었다. 트레제게 - 앙리 듀오는 전반전의 실수를 잊은 듯, 잉글랜드 골문에 상당히 많은 터치를 가했고, 그것을 도와주는 역할은 역시 지네딘 지단이었다. 지단은 왼쪽 사이드를 무수히 공략하면서 약간 처진 앙리에게 패스를 찔러줬고, 앙리는 그것을 최전방의 트레제게에게 연결해주거나, 아니면 자기가 직접 잡아서 때리는 등 프랑스의 3단계 공격은 회를 거듭할수록 절정에 다다랐다.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잉글랜드의 전체적 커버링은 앞쪽에서는 약간 느슨해지더라도, 최후방에서는 탄탄했다. 프랑스는 공격하면서 계속 그것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왼쪽 사이드백 리자라쥐가 오버래핑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잉글랜드는 최후방의 수비를 탄탄히 구축하면서 프랑스가 스스로 지치게끔 만들었고, 그것의 빛을 발하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10대의 돌풍 웨인 루니의 급습이었다. 잉글랜드는 수비에서 걸러낸 볼을 미드필드가 제조해서 루니에게 돌려줬고, 루니는 엄청난 속도를 가하며 프랑스의 센터라인을 지나 어느새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진입했다. 이때, 2004-2005 시즌부터 맨유에서 한솥밥을 먹게 될 실베스트리가 루니를 넘어뜨렸다. 그것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말이다. 아까부터 계속 코를 만지작 거리며 긴장했던 자크 상티니 프랑스 감독의 마음은 선수들 못잖게 더욱 더 타들어갔을 것이다.


잉글랜드는 그렇게 해서 페널티킥을 얻었다. 시각은 약 후반 27분, 페널티킥 키커는 데이비드 베컴으로 정해졌다. 사실 베컴이 페널티킥을 맡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4년전 승부차기의 패배를 설욕한 베컴의 페널티킥 결승골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베컴의 킥력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하지만 베컴이 유로 2004 예선전 터키에서 보여준 그 악명 높은 페널티킥 실축, 그리고 큰 경기에서 빅 스타가 꼭 저지른다는 그런 실수 징크스는 베컴의 목을 점점 옥죄어왔다. 베컴은 집중을 하며 공에 다가갔고, GK 바르테즈는 쇼트를 바짝 허벅지로 당기며 선방할 자세를 취했다. 베컴은 바르테즈의 오른쪽 사이드로 찼고, 바르테즈는 비호처럼 날아 펀칭으로 볼을 멀리 쳐냈다.


아마 그때 당시 에스타디오 다 루스에 모인 잉글랜드 팬들, 그리고 TV로 축구를 시청하는 많은 영국인들과 잉글랜드 축구 팬들은 이 장면에 엄청난 아쉬움과 탄식을 남겼을 것이다. B조의 거물 프랑스를 2-0으로 잠재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프랑스는 바르테즈의 선방에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 팔짝 뛰고 기뻐했으며, 이 페널티킥 실축의 장본인 베컴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 하더라도, 트집 잡기 좋아하는 타블로이드 신문들에게 베컴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싶었다. 게다가 이것은 잉글랜드에게 있어서 상당한 결과를 초래했다. 프랑스에겐 ‘승부사’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



프랑스는 베컴의 독기 어린 공격력 때문에 하마터면 골문을 내주는 상황도 초래했었다. (다행히도 수비진의 뒤엉킴은 바르테즈의 클리어링으로 해결되었다) 여기서 지단은 천운의 기회를 승부의 마침표로 정해놓았다. 잉글랜드가 종료 직전에 프랑스의 막판 공세를 우습게 보고 문전 앞에서 파울을 범한 것이, 그만 프랑스에게 좋은 프리킥을 내주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전후반 90분이 모두 끝나고, 인저리 타임이 10초대로 진입하던 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가 이 프리킥을 성공시키라는 철칙 같은 건 없었다. 넣으면 말 그대로 드라마고, 못 넣으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런데 축구의 스타 지단은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정교한 포물선을 자랑하며 날린 오른발 프리킥이 잉글랜드 골망 오른쪽을 정확히 갈랐다. 지단은 포효하며 그라운드를 달렸다. 두말할 필요 없이 승부는 1대1.



프랑스의 영웅 지단, 그리고 프랑스의 승리


프랑스는 동점골을 넣었음에도 침착하게 남은 인저리 타임을 보냈다. 잉글랜드는 승부사 지단의 신기(神技)에 놀란 듯, 전체적인 선수들이 어영부영 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잉글랜드의 무너진 조직력은 결국 프랑스, 정확히 얘기해서 앙리로 하여금 절묘한 시간대에 승부를 내주는 비극으로 치닿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잉글랜드의 중앙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는 자기네 미드필드 하부 지역에서 몸싸움으로 점철된 프랑스와 잉글랜드 선수들 간의 싸움을 한 숨 돌리기 위해 볼을 빼앗아 GK 데이비드 제임스에게 길게 넘겨주었다. 이 문장으로만 봐서는 잉글랜드가 1-1 무승부로 승부를 끝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해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앙리가 있었다.


앙리는 제라드의 백패스를 놓치지 않고 잡아 날쌔게 잉글랜드 골문으로 직진했고, 놀란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는 몸을 낮게 숙이고 달려와 앙리에게 태클을 걸었다. 데이비드 제임스의 태클은 상당히 큰 스파클을 냈기에, 앙리는 거의 공중부양 하듯이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주심은 지체 없이 휘슬을 불고는 손으로 잉글랜드 골문으로 가리켰다. 페널티킥을 선언한 것이다. 주변의 프랑스 선수들은 모두 만세를 외치며 경기장 내의 프랑스 팬들의 함성을 더욱 더 절정으로 만들었고, 앙리는 마치 개가를 울린 장군마냥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페널티킥을 찰 선수는 지단으로 정해졌다. 아까 후반전에는 잉글랜드의 주장 베컴이 페널티킥을 찼다. 이번에는 이에 질 수 없는 프랑스 주장 지단의 몫이었다.


지단은 공을 가운데에 찍더니 축구화 스파이크를 양지바른 곳에 계속 문지르며 특유의 준비를 마쳤고, 데이비드 제임스는 자신의 큰 키와 유연한 몸놀림을 지단 앞에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누구보다 유리한 것은 차는 사람인 지단일 것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제임스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야유 소리의 잉글랜드 팬들을 등에 업고 있었다. 지단은 숨을 고르더니 그대로 볼을 향해 달려가 오른발 인사이드로 찼고, 그 볼은 아까 프리킥으로 넣었던 그 지점인 잉글랜드 골망 오른쪽이었다. 데이비드 제임스의 선택은? 주지하다시피 왼쪽 사이드로 다이빙하는 것이었다. 90분 이상 혈투를 벌였던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21세기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믿지 못할 극적인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사실 이 경기는 B조의 판도를 바꾸는 데 큰 공헌을 하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는 크로아티아와 2-2 무승부, 그리고 스위스를 3-1로 잡고 2승 1무로 B조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각고의 노력으로 스위스와 크로아티아를 각각 잡고 2승 1패로 B조 2위, 두 나라가 사이좋게 8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특히 매 조별리그 경기마다 잉글랜드는 웨인 루니의 파워에 화색이 만연했다. 물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빅 매치는 이렇게 유로 2004 조별리그에서 각자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제공해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지단과 베컴의 대결을 만나볼 수 없으며 (기껏해야 자선 경기 정도?), 종료 직전에 두 골이나 나는 이런 짜릿한 드라마를 또 언제 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 2004년 6월 13일, 포르투갈 리스본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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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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