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의 백년전쟁-유로 2004 프랑스 vs 잉글랜드 ①
축구판의 백년전쟁-유로 2004 프랑스 vs 잉글랜드 ①
  • 이근형
  • 승인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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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과 지단의 축구공 대결 / 이근형



[인터뷰365 이근형] 2008년 6월,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오스트리아, 스위스 개최)는, 무관의 제왕 스페인이 독일을 1-0으로 꺾고 왕좌에 오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유로 2008은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러시아의 돌풍, 그리고 매 경기마다 인저리 타임에 승부를 갈라놓았던 터키의 역전 드라마가 어우러지며 역시 ‘브라질, 아르헨티나 없는 월드컵’ 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 나사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로아티아의 영리한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토트넘)의 발견, 그리고 이제는 월드 스타의 반열에 오른 포르투갈 공격의 선봉장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존재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한 세기를 풍미하는 축구 스타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미하엘 발라크 (첼시), 잔루이지 부폰 (유벤투스)이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심지어 스페인 우승 잔치에 라울 곤잘레스 (레알 마드리드)도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생뚱맞게 2004년 6월 포르투갈에서 펼쳐진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의 한 경기를 되짚어보려 한다. 그 대회는 아마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를 지나며 세계 축구의 축을 이루었던 세계적인 스타들의 절정판이자, 어쩌면 그들의 마지막 결전이었을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유로 2004에서 빛냈던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인테르 밀란), 데이비드 베컴(LA 갤럭시) 모두 다 2년 뒤인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활약했다는 것을. 하지만 유로 2004 대회에서 이들 수퍼스타의 기량은 ‘퇴물’ 보다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이들의 은퇴 시기가 점쳐졌을 뿐, 이들의 세계 축구 영향력은 그 이름 그대로였다는 말이다.


유로 2004의 조별리그를 관여했던 승리의 여신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훌륭한 대진표를 우리에게 마련해주었다. 지네딘 지단과 데이비드 베컴의 맞대결! 축구 팬이라면 한번쯤은 꿈꿔봤던 대결인 것이다. 물론 이들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맞붙은 것은 아니다. 이미 1998-1999 챔피언스리그에서 베컴(당시 맨유), 지단(당시 유벤투스) 은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하지만 서로 같은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에 속해있으면서 이렇게 큰 대회에서 맞붙은 적은 아마 전무후무했을 것이다. 2004년 6월, 리스본에서 펼쳐진 세계 축구의 별들인 베컴과 지단의 대결을 반추해본다.



프랑스 지단과 영국 베컴의 맞대결


앞서 언급했듯이 유로 2004는 90년대와 2000년대를 가로지르며 맹위를 떨친 축구계의 수퍼스타들이 대거 참석하며 빛을 발했다. 세계 축구의 강호 이탈리아가 승점 쌓기에 방심한 탓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사실은 그 찬란한 빛을 약간 떨어트리게 만드는 요소였지만 말이다. 어쨌건 월드컵보다 적은 참가국, 그리고 유럽에 국한되어 있는 한계특성상 유럽축구선수권대회는 매 경기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2004년 여름, 유로 2004의 B조를 유심히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B조는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잉글랜드, 스위스, 크로아티아가 포진되어 있었다.


1라운드 대진표는 스위스 대 크로아티아, 그리고 프랑스 대 잉글랜드로 결정되었다. 이때 수많은 외신과 축구 관련 언론은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맞대결에 주목했다. 이 얼마나 나오기 힘든 대진표란 말인가. 유로 2004 예선전에서 페널티킥을 날리는 등 체면을 구긴 베컴이지만, 어쨌거나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주장이자 그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지단은 말할 필요 없는 우승 청부사였다. 각각의 대표팀은 신구 조화가 잘 어우러져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프랑스는 이전 대회인 유로 2000 우승 멤버들이 대거 참석했고, 잉글랜드는 당시 두려울게 없었던 축구의 신동 웨인 루니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바로 데이비드 베컴과 지네딘 지단이다.


또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좌우 윙 미드필더를 책임진다. 지단은 주지하다시피 본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왼쪽 윙 미드필더로 자주 배치되곤 한다. 베컴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오른쪽 날개 요원이다. 좌우 날개들의 대결이자, 세계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들이 진검을 가리는 승부였다. 많은 축구팬들은 베컴이 맨유를 박차고 레알 마드리드로 날아왔을 때, 드디어 세계 축구를 책임지는 수퍼스타들이 레알 마드리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쳤다고 말하며 그들을 주시했었다. 더 이상 각자를 향해 활시위를 겨누지 않을 것 같았지만, 베컴과 지단은 B조의 1위를 향해, 그리고 나아가 앙리 들로네 컵(유로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려야만 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B조 1라운드 경기는 2004년 6월 13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에스타디오 다 루스(벤피카의 홈 구장)에서 펼쳐졌다. ‘Estadio da Luz(빛의 구장)’ 라는 이름답게, 경기장의 화려한 불빛은 프랑스, 잉글랜드 팬들에게, 그리고 축구 전투사들이 싸움을 벌일 초록 그라운드를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그 경기가 유로 2004의 조별리그 경기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와 티켓 판매를 기록했다고 전해지며, 언론은 이 경기를 일컬어 ‘미리 보는 유로 2004 결승전’, ‘21세기판 백년전쟁’ 이라 칭했었다. 이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았던 문구는 다름아닌 ‘백년전쟁’ 이 되겠다. 110년 이상 지겹도록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지역 분쟁이 이번에는 축구공으로 되살아난 격이겠다. 이런 세계 역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언론과 팬의 호들갑은 동일했다.



베컴의 오른발에서 비롯된 램퍼드의 선취골


당시 경기의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주요 포메이션을 살펴보겠다. 먼저 프랑스는 앙리 (바르셀로나), 트레제게 (유벤투스) 의 투톱 형태에 지단이 왼쪽 윙, 피레스 (비야레알) 가 오른쪽 윙으로 나섰다. 중앙의 더블 볼란테는 비에라 (인테르 밀란) - 마켈레레 (파리 생제르망) 듀오가 철사슬처럼 묶여 있었다. 잉글랜드는 마이클 오언 (뉴캐슬), 루니 (맨유) 투톱에, 스콜스와 베컴이 각각 좌우 날개를 맡았으며 중앙 미드필더에는 제라드 (리버풀) - 램퍼드 (첼시) 듀오가 버티고 있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골키퍼는 각각 바르테즈 (은퇴), 데이비드 제임스 (포츠머스) 가 골문을 지켰다.


전반전 초반부터 프랑스의 공격이 매서웠다. 지단은 왼쪽 날개와 중앙을 부지런히 오가며 공격진에게 양질의 패스를 찔러줬고, 주로 트레제게가 선봉장이 되어 잉글랜드 골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트레제게는 이 시점에서 한 순간의 결정력이 부족했다. 패스를 받아 논스톱 형태로 헤딩 공격하거나, 패스의 흐름을 이용해서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를 속이는 슈팅으로 완성시켰지만, 모두 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지단 또한 여차하면 슈팅을 날렸지만, 그것 또한 별 효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잉글랜드가 공격에 성공적이었다는 것도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지단과 비슷한 형태인 스콜스도 헛발에 그쳤다.


결론적으로 프랑스와 잉글랜드에게 공통적이었던 것은 바로 문전에서의 아쉬운 마무리였다. 잉글랜드는 중앙 더블 볼란테 비에라 - 마켈렐레 듀오의 엄청난 아우라에 못 이겨 자꾸 헛발질만 했고, 프랑스는 센터백 솔 캠벨 (포츠머스) 의 장악력에 뒤따른 완벽한 클리어링과 데이비드 제임스 골키퍼의 유연한 선방에 숨이 탁탁 끊겼다. 근데 또 이들은 비슷한 상황이 서로에게 벌어지곤 했었다. 이들은 각자의 내공을 알기에 원터치 패스보다는 중원에서 만들어나가는 형태를 띠였는데, 중원에서 프랑스 선수 한 명이 잉글랜드 선수를 걸고 넘어지면 한쪽 스탠드에서 “우우~” 하는 소리가, 또 잉글랜드 선수가 프랑스 골문에서 좋은 기회를 잡으면 다른편 스탠드에서 똑같이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진풍경이었다.


이런 공방전을 한 순간에 갈라놓은 자가 있었으니, 바로 베컴 되겠다. 시원하게 밀어버린 스킨 헤드,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반팔 저지를 착용한 베컴은 전반 38분, 프랑스 쪽에서 바라본 왼쪽 사이드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베컴이 유로 2004 공인구 로테이로를 들고 그 쪽으로 향하자, 수많은 프랑스 관중들은 베컴에게 야유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베컴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볼을 땅에 댄 다음 조금 멀리 떨어져 킥 준비를 했고, 프랑스 골문에는 어느새 프랑스 수비진과 잉글랜드 공격진의 몸싸움이 치열해졌다. 베컴은 침착하게 달려가 두 팔의 회전에 탄력을 얻어 오른발을 작렬했고, 그 볼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양팀 선수들의 각축전에 다가갔다. 이때, 베컴의 킥을 선사받은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프랭크 램퍼드가 되겠다. 램퍼드는 높게 뛰어올라 머리만 살짝 비트는 형식을 취했고, 램퍼드의 머리에 닿은 볼은 그대로 프랑스 골문 지붕을 강타했다. GK 바르테즈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득점에 성공한 잉글랜드는 말 그대로 잔칫집이었고, 반대로 프랑스는 초상집이었다. 베컴은 달려나오는 잉글랜드 동료들과 함께 잉글랜드 팬들이 집결된 지점에서 서로를 포옹해주며 독려해줬다. 전반전 내내 그렇게 잘 막았던 바르테즈 골키퍼는 고개를 떨구며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고, 승리의 추는 이렇게 잉글랜드 쪽으로 가는 듯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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