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록볼록 글자 맛 되살릴 활판인쇄의 부활
올록볼록 글자 맛 되살릴 활판인쇄의 부활
  • 김희준
  • 승인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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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한 자씩 손으로 뽑아 만들던 장인의 손길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어제, 반가운 뉴스가 전해졌다.

앞으로 10년에 걸쳐 중견 및 작고 시인 100명의 시선집을 활판인쇄로 낸다는 계획 아래 우선 ‘활판공방 시인 100선’ 시리즈 첫 두 권이 출간됐다는 것이다. 이는 활판인쇄를 되살리려는 문학계 인사들이 뜻을 모은 일로 우리나라의 인쇄문화 보존을 위해 의미있는 일이다.

신구 세대를 통틀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활판인쇄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 것이다.

활판인쇄는 지금 같은 컴퓨터 시스템이 인쇄업계의 주종을 이루기 한참 전 단계로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 글자를 뽑고 판을 만들어 인쇄하던 수공업 시스템이다. 80년까지 모든 인쇄물은 이 활판인쇄로 찍었다.

그때는 아직 컴퓨터가 도입되지 않은 시기라 모든 책이나 잡지 원고나 신문 기사는 기자들이나 저자들이 원고지에 일일이 손으로 썼다. 기사 쓰는 작업이 끝나면 이 원고들은 조판소로 넘겨져 문선공들이 글자 한 자씩을 손으로 뽑아 판을 만들었다. 글자들은 옛 방식 그대로 양각으로 한 자씩 만들어진 것이다. 원고도 한 자씩 손으로 써야 하고 그것을 찍어내기 위한 글자도 일일이 손으로 뽑아야 하는 1백 퍼센트 수작업인 것이다.

문선공이 판을 짜면 일단 다시 원고를 쓴 이에게 보내져 교정을 거치게 된다. 이때 일급 문선공들은 잘못 쓴 글자까지 아예 수정을 해서 짜보내는 실력을 보여줘 쓴 필자들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단행본 출판인 경우 세 번 정도 교정을 하게 되는데, 교정지에 따라 매번 사람 손을 거쳐 다시 글자를 뽑거나 수정을 해야 했다. 때로는 오래 써서 깨진 글자들도 있어 이것 역시 교정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활자들로 짠 판으로 만든 지형을 만든 후 거기에 납을 부어 글자판을 만들고 이것을 기계에 붙여 인쇄하는 것이 활판인쇄다. 덜커덩, 철컥 하며 기계가 돌아갈 때마다 한 장씩 인쇄물이 나와 시간당 2천장 정도를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바쁘게 만들어야 하는 책들은 인쇄소에서 며칠을 새워 기한을 맞추기 일쑤였다.

당시 인쇄소에서 쓰이는 말들은 거의가 일본식 조어로 도비라, 게라, 혼스리 등의 말들이 쓰여져 초보 기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이 출판, 인쇄용 단어들을 입에 붙이기 위해 애를 먹기도 했다.

인쇄가 끝난 후에 활자판들은 해체되어 다시 낱낱의 글자로 돌아가고 지형은 출판사의 재산으로 남아있게 된다. 이 지형은 몹시 무겁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 보관이 만만치 않다.

활판인쇄로 찍혀져 나온 책들은 올록볼록한 인쇄 자국이 그대로 살아있어 글자를 뽑은 장인들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오랫동안 봐도 눈의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은 수천 글자도 컴퓨터의 delete 한 번 누르면 다 없어지지만 활판인쇄로 찍혀진 책들은 글자 하나하나에 쓴 사람의 수고와 그것을 판으로 짠 전문가의 땀방울이 찍혀 있었다. 그러니 더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활판인쇄는 90년대 들어 옵셋인쇄에 밀려 모두 자취를 감췄다. 옵셋인쇄는 시간당 1만8천장을 찍어내는 속도감으로 활판인쇄를 밀어냈다. 따라서 글자를 짜는 조판소 등도 모두 사라졌다.

2004년 KBS는 특별히 2대째 활판인쇄의 맥을 잇고 있는 조봉래(봉덕인쇄소 실장)씨를 취재했는데 당시 조 실장은 “이익이 남거나 이런 부분들은 벌써 생각을 버린 거고, 이걸 통해서라도 활판인쇄가 있구나, 이런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것만 바라요”라며 사라진 활판인쇄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표현한 바 있다. 이어 방송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의 맥이 끊기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 아쉬움이 어제 풀리게 됐다.

일정 부수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활판인쇄 시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집 발간에 즈음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80년대부터 유명했던, 국내 출판계에 편집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북 디자이너 정병규씨는 “활판인쇄를 되살리는 건 우리 문화의 뿌리를 확인하는 일이자 책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쾌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활판인쇄 설비가 오래전에 고철로 팔려나가 기계와 부속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는 일화도 회견을 통해 전해졌다. 활판인쇄가 자취를 감추면서 주조나 식자, 문선을 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양성되지 않아 옛날 기술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이제 70, 80대 고령이 됐다. 회견을 통해 제안됐듯이 더 늦기 전에 이들을 근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젊은 세대에게 기술이 전수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참에 관계당국이 앞서야 할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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