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 정종화
  • 승인 200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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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번 38번만 고집, 야구의 모든 장르 섭렵 / 정종화



[인터뷰365 정종화] 빨간 장갑의 마술사라 불리던 야구감독 김동엽은 1997년 4월 10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숱한 화제를 낳았다.

법조계에서 이른바 3륜(三輪)이라면 판사, 검사, 변호사를 거친 사람을 일컫는데, 김동엽을 가리켜 ‘야구인 3륜’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는 경복고를 스타트로 성균관대, 해군을 거쳐 조흥은행과 한국전력에서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67년부터 69년까지 3년간은 주심을 보면서 성동원두가 떠나갈 듯한 호령으로 당시 조용하기만 한 아마추어 야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건국대 성균관대 한양대 감독, 공군과 아마추어 롯데의 창단감독을 했다.


스스로 “조용하게 사는 성격이 아닌 듯하다”고 할 만큼 가는 곳마다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맹장 김동엽. 그는 타협을 모르는 불같은 사나이였다. 롯데(아마 팀) 창단 시 체력과 인내심 강훈을 위해 선수들과 함께 ‘경부(京釜)천리길’을 함께 뛰어 야구계를 경악시켰던 적도 있다.

그렇게 강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과 투지를 기르는 한편 과학적인 야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미국서는 1루까지 달려가는데 평균 3.8초가 걸린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르다는 이해창이나 김재박도 4.2에서 4.3초가 걸립니다. 우리 대표선수들의 기초체력은 미국 고교야구 선수들의 그것과 비슷한 상태예요.”


김동엽은 프로야구 원년 해태 타어거즈의 창단 감독을 맡으면서 프로팀과 인연을 맺었다. 조창수와 유남호를 코치로 하여 15명의 선수들로 팀웍을 이뤘으나 그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 창단(1982년 1월 30일) 3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1985년부터 MBC청룡(LG 트윈스의 전신)에서 다시 감독을 맡았지만 87년 7월 10일, 유백만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덕 아웃을 떠났다.

이후 야구해설과 TV게스트로 나오면서 브라운관의 명사로 이름을 떨쳤다. 늘 빨간 장갑을 끼고 그라운드에 나타나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리던 그는 배번 38번만 고집했다. 황해도가 고향이라 스스로를 ‘삼팔따라지’로 칭한 까닭이다.



호탕한 맹장으로 그라운드를 호령하던 김동엽은 쓸쓸하게 저세상으로 갔다. 사인은 심장마비. “아파트 청소원이 211호에서 TV소리가 크게 나고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는 연락을 해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김씨가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는 것이 당시 김동엽이 살던 아파트 관리인의 말이다.

한국야구의 모든 장르를 섭렵한 김동엽은 천국에서도 야구의 폭풍전야에 살고 있을 불멸의 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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