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15년은 가문의 자랑”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15년은 가문의 자랑”
  • 신일하
  • 승인 20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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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치는 선생님’ 작곡가 임종수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KBS의 ‘전국노래자랑’이 재미있는 건 온 국민이 한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이 프로를 통해) 확 풀어버릴 수 있어서고 (방송 28년) 장수를 한 건 탈락자도 인기상을 받아서죠. 그게 없으면 가요제 프로로 방송사에 남았을 거예요. 노래 잘 하는 사람만 나와 잘 하는 사람 위주 상을 주는 걸로.”


<전국노래자랑> 탄생의 1등 공신으로 15년 동안 심사위원을 해온 작곡가 임종수씨(66). 이 프로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그가 심사위원을 장기 집권(?)해온 데는 사연이 있었다. 올 들어 ‘교수님’ 직함도 얻은 그를 만나 오래 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지난 3월 전국 대학 최초로 생긴 ‘트로트 전공’(충청대 음악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늦었지만 축하 인사부터 드립니다.

지난해 충청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음대를 신설하는데 (내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집중 육성해 저급 문화로 전락한 우리 대중가요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를 바꿔줄 수 있는지 의중을 들어보고 싶다며. 경험을 살려 대중가요의 중추적 역할을 할 인재를 키운다면 그것 이상 보람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승낙을 했죠. 올 들어 학기가 시작되었고 일주일에 2일 가르치러 가는데 실용음악, 싱어 송 라이터, 실용가창 등 3과목을 맡았어요.



작곡가 조운파씨 사무실 ‘소리그림’에서 해후한 그의 명함 앞면에는 ‘작곡가 임종수 / KBS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13년’으로, 뒤에는 ‘고향 역’ ‘대동강 편지’ ‘분교’(나훈아) ‘모르리’ ‘빈 지게’ (남진) ‘옥경이’(태진아) ‘어머니’ ‘가져가’ ‘여정’(최진희)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하수영) ‘부초’(박윤경) ‘착한여자’(인순이) ‘남자라는 이유로’(조광조) ‘당신께 넘어갔나봐’(한서경) ‘사랑이 남아있을 때’(문희옥) ‘사랑해 말도 못하는’(이창용) 등 주옥같은 그의 대표곡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교수 직함은 왜 안보이나요?

학교에 갔을 때는 교수이지만 캠퍼스를 벗어나면 그냥 작곡가 호칭이 좋아 그전 명함을 바꾸지 않은 거예요.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터미널이 여기 반포동(소리그림)에서 멀지 않아 강의 있는 날은 끝나고 올라와 사람들을 만나러 들러요.





명함에 ‘KBS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13년’이란 경력이 인쇄되어 있는데 실제 그것밖에 안 됩니까.

이 프로가 전파를 타고 첫 발사 된 건 1980년 11월9일인데 지난 1993년까지 심사위원을 맡다가 후배에게 바통을 물려주었어요. 그 후 몇 번 교체된 PD들이 “임 선생님 몇 개월만 해주셨으면...”하고 애걸하면 거절 못해 다시 맡아 한 걸 합쳐 15년 넘어요. 2000년이 넘으면서 완전 손을 뗐죠.



매주 일요일 낮 12시 10분이면 방송되는 <전국노래자랑>이 KBS 최장수 간판 프로가 되었으니 잊혀지지 않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얼마 전에 타계한 윤재경 위원이 <전국노래자랑> 창설 PD였는데 그분이 전화를 했어요. 당시 새로 부임한 이원홍사장이 불러 사장실에 갔더니 온 국민이 한 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오락 프로를 만들어 보라는 특별 임무를 맡았다며. 그 당시 시대 상황이 <전국노래자랑> 탄생에 한 몫을 했다고 봐요. 5.18광주민주화운동(당시 ‘광주사태’)의 여파로 국민들이 입이 있어도 함부로 열지 못하고 불만조차 털어놓지 못하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때라 그런 가슴 답답한 상황을 잠시 잊고 남녀노소와 연령차를 불문하고 TV시청자들이 함께 보며 즐길 오락 프로의 출현이 절실하였던 거죠.



그럼 음악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이원홍사장이 낸 거고 프로그램 포맷과 콘텐츠로 어떠한 걸 담느냐는 임작곡가와 PD, 구성작가의 몫이었나요?

“출연자와 시청자가 함께 까르르 웃으며 박수치면서 흥이 나 게 만들자”, “온 국민이 안방극장에서 보는 것만으로 엔돌핀이 솟구칠 만큼 재미난 음악프로를 만들어보자”는 게 그때 기획의도였어요. 포맷을 만들어 놓고 그 내용물을 담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가 여러 날 진행되었고 어느 날 MC로 송해 선생님이 적격이라는 고위층 승낙이 떨어지며 타이틀도 ‘전국노래자랑’으로 정해졌어요.



얼마 전 시청률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KBS <전국노래자랑>이 음악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차지, 청소년 대상 ‘쇼음악중심’(MBC) ‘뮤직뱅크’(kBS) ‘인기가요’(SBS)와 성인층 대상인 ‘가요무대’ ‘도전1000곡 한소절 노래방’ ‘도전주부가요열창’ 등 프로들이 의외로 시청률 경쟁에서 크게 뒤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이 방송 28년의 최장수 프로로 인기를 유지해온 비결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송해 선생님의 열정적인 진행 수완도 공헌해온 건 사실이지만 <전국노래자랑>에는 다른 프로가 흉내 낼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인데. 그건 예비심사이죠. 예비심사하면서 땡 쳐야할 사람(낙선자)을 뽑는 거예요. 심사위원 혼자만 알고 어디서 땡을 쳐야할지 체크해 놓았다 PD와 악단장에게 알려줘요. 그러면 PD는 행사장의 카메라맨에게 지시, 땡 소리에 연주가 멈추었는데도 열창하는 모습을 그대로 영상에 담아 보여주는 거죠. 초기에는 이런 낙선자의 실수가 리얼하게 TV에서 보여지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배꼽을 잡으며 웃음보를 터뜨렸어요. 여과 없이 NG 같은 장면들을 편집, 방송하면 시청자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에 그런 걸 어떻게 콘티를 짜 연출해야 할지 PD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죠.





본심에서 떨어뜨릴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진행 하다니. 그 사람들이 알면 항의해 올 수 있을 텐데.

예비심사 때 보통 300~400명의 신청자가 몰려와요. 그 중 15~20명을 뽑아 본선에 나오게 하는데 예선 통과한 사람들 노래 실력은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요. 어떤 때는 땡 칠 사람을 정해놓았는데 의외로 본심에서 잘 불러 ‘땡’이 아닌 ‘딩동댕’ 합격 시킨 적도 있죠. <전국노래자랑>은 노래 수준이 높은 사람만 나오는 게 아니고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가 자신 보다 훨씬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나와 합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하는데 고민이 있는 겁니다. 그래야 나도 한번 나가 보자며 신청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노래 잘하는 사람들만 나와 실력을 보여주면 그건 가요제나 다름없는 거니 연령, 계층을 가리지 않고 출연자들이 나와 춤과 노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자는 뜻에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땡 당 하는 사람 중 몇 명을 뽑아 인기상을 주자고 했어요. 떨어지고도 상을 받으니 신청자들의 불만이 있을 수 없는 거고 <전국노래자랑>이 오래 되었지만 인기가 식지 않는 건 이처럼 출연자를 배려해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임종수 작곡가의 남다른 선곡 능력이 프로를 재미있게 만드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15년 넘게 장기간 심사위원을 한 비결을 이젠 털어놓을 수 있을 텐데요.

초창기에는 PD가 함께 예비 심사장에 나타났지만 얼마 지나면서 혼자 했어요. 지역 선정이 되면 혼자 전날 내려가요. 본선에는 악단이 나와 괜찮지만 예심까지 악단을 대동할 예산이 부족해 혼자 가서 심사하는데 현장에서 신청자가 어느 곡을 부르겠다고 하면 악보를 찾아보고 반주해 줄 여유가 없어요. 수백 명을 모이게 해놓고 그 자리에서 한 사람씩 불러 테스트 하는데 악보를 찾아, 반주해준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즉석에서 악보 없이 피아노와 기타로 반주해줘야 하는데 머리에 1930년대 이후의 노래 수백 곡을 메모리 해놓은 작곡가가 없었던 관계로 장기간 나 혼자 심사위원을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거죠. 90년 이후 노래방 기기의 보급이 확대되어 버튼만 누르면 반주가 나오게 됐죠.



<전국노래자랑>은 지난해 1400회를 넘어 최장수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이 프로를 거쳐 간 PD만도 120명이 넘고 해외 교포들도 KBS홈피를 통해 즐겨 보는 프로가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예비심사 다 해놓고 본선이 있는 날이었어요. 날씨가 안 좋아 비행기 예약이 최소 되어 PD가 못 내려온다는 전화가 왔어요. 촬영 팀은 전날 내려와 괜찮았는데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펑크 낼 수 없는 거라 PD가 나 보고 연출을 대신해 달라며. 그런 일이 있고 “임종수 선생님만 있으면 전국노래자랑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죠.


이런 일도 있어요. 경기도 문산에서 녹화가 끝나 촬영 스태프들이 철수하려는데 무대 뒤에서 웬 아가씨가 가지 않고 서성이고 있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죠. 본심에서 땡 당한 아가씨로 다음 주 결혼하는데 남편 될 사람한테 얘기를 않고 나왔다는 거예요. 본심에서 떨어진 걸 남자가 알면 실망할 것 같고 시댁 식구 보기 민망할 것 같아 고민이니 빼줄 수 없느냐는 거예요. 펑펑 눈물을 쏟는 걸 보고 PD에게 부탁하여 편집해 주었는데 그 아가씨를 위해서 잘 해준 일 같아요.





올해로 25년째 진행자로 팔순을 넘겨 국민MC로 자리 매김한 송해 선생님의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데 녹화하며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여름 피서 철이 되면 해안가 해수욕장을 찾아 가는 데 출연자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나오는 걸 허용해요. 공개방송 무대를 물가에 설치하는 때도 많은데 일부 출연자는 노래가 끝나고 그냥 물속에 첨벙 뛰어들지요. 그런 걸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기도 하는 데 어느 날 송해 선생님이 갑자기 바지를 훌렁 벗어요. 그리고 출연자를 따라 물속에 첨벙 뛰어 들어드는 걸 보고 PD는 물론 스태프들이 난데없는 일에 ‘어! 어!’하며 놀랐어요. 무대 주변 관람객도 송 선생님의 돌발적인 행동에 비명을 지르고. 나중에 물속에서 나온 송 선생님은 팬티가 아닌 수영복 차림이었어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려는 선생님의 열정에 모두 혀를 휘두르고 말았죠.




지방 음식점에 가면 요즘도 ‘딩동댕 아저씨’ ‘땡 치는 선생님’ 등 애칭으로 불리는 임종수씨는 “KBS가 있는 한 <전국노래자랑>은 없어지지 않을 프로다”고 장담한다. 그래서 심사위원을 한 게 자랑스러워 그는 명함에 경력을 표시하고 다니는지 모른다. ‘고향역’에 나오는 황등역에 노래비가 세워졌으면 하는 게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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